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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던진 뱀이 친구 얼굴에 맞았던 날

난 여자 골목대장

by 황갑연

동네 어귀에 들어 서면 나는 제일 먼저 우리 집 굴뚝을 쳐다본다.


오늘은 우리 집 굴뚝 세 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이 시간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것은 엄마가 부엌에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나는 해가 지는 저녁이면 우리 집 굴뚝에서 매일 연기가 나왔으면 바랬다. 그러나 나의 희망 일 뿐이었다. 평상시 엄마는 이 시간에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연기를 보는 날이면 가슴이 요동쳤던 것이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면서도 가끔은 비가 왔으면 했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와 부침개는 비 오는 날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온 가족을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있게 만드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해가 어스름 해 질 때면 우리는 모두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누가 부르지 않아도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날, 엄마는 나의 예상 대로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뭐 하다 이제 오나. 외양간에 가서 달걀 꺼내 오너라"


"응.. 히히 " 오늘 엄마의 심부름은 기분이 좋았다. 난 엉덩이를 실룩실룩 두 다리를 폴짝폴짝 번갈아 뛰며 외양간으로 향했다. 저녁 반찬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찜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외양간에는 소와 닭이 함께 산다. 외양간 중앙에는 소가 누워 있었고 한쪽 구석에 비스듬히 걸쳐 놓은 통나무 위에는 닭들이 나란히 앉아 잠을 자고 있다. 통나무 위쪽에 짚으로 똬리를 틀어 놓은 곳에 닭들이 달걀을 낳는다. 난 배꼽이 보이도록 티셔츠를 감아올려 임시 바구니처럼 만든다. 달걀을 그곳에 넣은 뒤 조심스레 마당을 지나 부엌에 있는 엄마께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밥을 짓는 큰 가마솥에 뜸을 들일 때 스테인리스 그릇에 달걀을 풀어 올려서 계란찜을 만들어 주신다. 큰 가마솥 옆 작은 가마솥에는 무슨 국을 끓이는지 몰라도 구수한 냄새가 났다.

반대쪽 할머니가 머무는 사랑방 가마솥에는 소죽이 펄펄 끊고 있었다. 난 붉게 활활 타고 있는 장작불이 너무 좋아 아궁이 앞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았다. 참 따뜻하고 행복했다.


"엄마! 불 다 타고나면 잿불에 고구마 구워줘. 저녁 먹고 배 꺼지면 먹을 수 있게. 난 숙제하러 간다."


"알았다 아직 저녁밥도 안 먹었는데.. 참 ~나"


난 엄마께 투박스러운 말을 던지고 할머니가 계시는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연아 오늘 저녁 반찬은 뭐 하더나. 국은 무슨 국을 끓이더나"


"계란찜. 그리고~ 국은 끓이기는 하던데 무슨 국인지 잘 몰라"


난 귀찮은 듯 매번 할머니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우리 할머니는 안은 뱅이다.

할머니는 막내 삼촌을 낳은 후 산후풍으로 손과 발이 오그라 들어 안은 뱅이가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사랑방에서 한 발자국도 혼자서 나갈 수가 없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궁금증을 매번 이렇게 물어보신다.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유일일한 친구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할머니 옆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지매요 아지매요 연이 액시 안에 있니껴?"

(아주머니요 아주머니요 연이 아가씨 있어요)


"어~이 어서 오게. 이 시간에 연이는 왜 찾나? 방금 숙제한다고 사랑방으로 들어가던데 "


아! 6촌 올케가 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할매 내 찾거든 없다 해라"


"왜? 니 뭐 잘못한 거 있나? "


"나중에 말해 줄 테니까 일단 없다 해라. 방문 열어 주면 안 된다"


엄마와 6촌 올케는 부엌에서 시끌시끌했다. 난 방문에 귀를 대고 무슨 말들을 하는지 엿들었다. 구멍 난 문풍지 사이로 한쪽눈을 감은 애꾸눈으로 두 사람의 표정도 살펴보았다. 6촌 올케가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아~~ 하 문고리를 잡은 체 무릎을 끊은 다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난 쥐를 없애기 위해 손가락으로 입안에 고여있던 침을 코에 바르는 미신 스런 행동을 해보았다. 쥐는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소죽을 끊이기 위해 활활 타는 장작불에 데워진 방바닥은 어느새 찜질방이 되었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렸다. 문고리를 두 손으로 잡은 체 비스듬히 누운 몸은 애기를 놓는 산모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아! 힘이 빠져 지칠 때쯤 6촌 올케가 간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띄었다.


"아지매요 이제 가니데이.. 연이 액시한테 다시는 그러지 마라 하소.. 부탁이시더"


"알았네 이년의 가시나를 쯧쯧~ 허~~ 내가 많이 뭐라 하겠네 O국이 코뼈가 괜찮아야 할 텐데 "


"연아! 연아! "


"왜? ~~ 왜? (방문을 쾅 열면서 짜증 썩인 대답을 했다)


"니 O국이 코피 터잖나? "


"그래 그 새끼가 맞을 짓 했다고 "


"시끄럽다 네가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니보다 큰 머슴아를 저래 패서 코뼈가 내려앉은 것 같다는데.."


"엄마는 내 말은 안 들어 보고 짜증 나 죽겠네 "


"시끄럽다 저녁에 너희 아버지 오면 다 일려 줄란다 각오해라 "


"다 말해라 겁 안 난다 씨~이 "


난 방문을 쾅 닫으며 고함을 질렸다

매번 어떠한 일들이 생길 때면 나의 말은 무시한 체 일방적으로 야단만 치는 엄마가 싫었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와 온 가족 (할머니 아버지 엄마 오빠 여동생 ) 이 모여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 밥상은 항상 3곳에 나누어 차려졌다. 할머니 밥상 하나, 아버지와 오빠의 겸상 하나, 엄마와 여자들이 함께 먹는 둥근 밥상이 작은 사랑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매번 우리 집 밥상에 불만이 많았다. 할머니와 아버지 밥상 위에 올려진 그릇과 반찬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먹는 밥상 위에는 그릇이 아닌 양푼이에 밥이 담겨 있었다. 오늘 내가 외양간에서 꺼내어온 달걀로 만든 계란찜과 활활 타고 남은 장작숯불 위에 노릇노릇 구워진 고등어자반도 없었다. 여자들이 먹는 밥상 위에는 김치와 나물 반찬만 그득했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빈 숟가락을 입에 물고 눈은 아버지 밥상 위에 놓인 계란찜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의 마음을 눈치챈 듯 곁눈짓을 하며 빨리 밥을 먹으라고 했다.


" 뭐 먹을 것이 있어야 먹지 "라며 발끈 짜증을 부렸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밥상 위에 있던 계란찜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5남매 중 본인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나를 유난히 좋아했던 아버지가 나도 좋았다. 엄마는 언니 오빠 동생과 다르게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고 할 말 다하는 나를 다루기 힘들다며 버겁다며 매번 윽박을 지르고 기를 꺾으려고만 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나를 무시할 때면 나도 엄마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했던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했다. 엄마는 오늘도 나의 행동이 못 마땅하다는 듯 가자미 눈으로 곁눈질을 하며 6촌 올케가 다녀간 이야기를 아버지께 고자질했다.



"연이 아버지요 연이 좀 뭐라 하소. 오늘 O국이 엄마가 와서 난리가 났니다 "


"왜? 무슨 일 있었나?"


"연이가 O국이를 패서 코뼈가 내려앉았는지 코피를 줄줄 흘리고 아가 들어 누워 있는데 열이 펄펄 난다니더"


"연아! 니 왜 그랬나 아를 얼마나 패서 그 모양을 만들어 놓았나 "


일방적인 엄마와 다르게 자초지종을 들어 보시려는 아버지께 나는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해 드렸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였어요.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앞에 가고 있었고 나와 여자 친구들은 배도 고프고 해서 찔레순을 꺾어 먹으며 걸어오는데 길 중앙에 죽은 뱀이 쫙 펴져있었어요. 우리가 못 지나오게 남자아이들이 길을 막은 것 같았어요. 여자 친구들과 내가 깜짝 놀라서 으~아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렸어요. 우리를 지켜보던 남자애들이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고함을 막 질렸어요


"야 누가 이래 놓았나 너희 미쳤나"


"우리가 그런 거 아니다 O국이가 그랬다. 조금 전에 O국이가 돌로 찍어서 뱀을 잡았다 "


"미친 새끼"


나는 지고는 못 사는 당돌한 아이였다. 약자의 편에서 강자를 위해 싸우는 나름 의리가 있었던 겁 없는 아이였다.


우리가 놀란 만큼 그 아이들한테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어요. 난 주변에 있던 막대기로 뱀을 돌돌 말아서 남자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획 던졌어요. 아!! 그런데 O국이 얼굴에 정확히 탁 맞아 버렸어요. 나도 깜짝 놀랐어요. 그 새끼 얼굴에 그렇게 탁 맞을 줄 몰랐어요 흐~히 이 히히 크크....


저녁을 먹던 식구들도 순간 입안에 든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었다. 하하하 흐흐흐 크크크 히히 이


그 새끼가 뱀에 맞아서 열이 받았는지 내 어깨를 먼저 때렸어요. 나도 주먹을 날렸는데 그 새끼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그리고 둘이 막 뒹굴며 싸웠어요. 치사한 새끼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저그 엄마한테 일러바치기나 하고.. 허~어.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했다. 그놈이 맞을 짓을 했네 담에 또 그런 짓을 하거든 더 세게 때려 줘라 "라고 하셨다.


"예 ~~ 히히"


난 기분이 좋았다.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며 잘했다고 응원까지 해주시는 아버지가 너무 좋았다.

엄마는 또 못 마땅하다는 듯 짜증 썩인 말투로 아버지께 말했다.


"가시나를 저래 키워서 어쩌려고 그래요. 야단을 치라고 했더니만 기를 살려서.."


" 무슨 잘못한 것이 있어야 야단을 치지"


엄마 기분은 아랑곳없이 나는 계란찜에 밥을 맛있게 비벼 먹었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아궁이에 묻혀있는 고구마를 먹으러 부엌으로 나왔다. 오빠가 나의 뒤를 따라 나왔다. 오빠와 나는 아궁이에서 꺼낸 고구마를 먹으며 신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연아 니 내한테서 배운 대로 O국이 때렸나?"


"응.. 오빠가 가르쳐 준 대로 팍 때렸는데 그 새끼 코에서 코피가 줄줄 나오더라 ~흐 히 "


" 잘했다 히히 " 오빠도 신이 난 듯 웃으며 말했다.


" 또 다른 것 가르쳐 줄 테니까 고야나무(토종 자두) 있는 데로 가자"


우리 집 뒷 뜰에는 고야 나무가 있었다. 오빠는 운동을 하기 위해 비료 포대에 모래를 담아 고야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요즘 말하면 복싱을 하기 위한 샌드백이다. 오빠가 운동을 할 때 나도 따라서 주먹으로 모래주머니를 때리곤 했다. 오빠는 혹여 내가 맞고 다닐까 걱정스레 싸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오빠가 동생인 나를 위한 마음은 오늘의 결과였다. 오빠가 고마웠다. 엄마는 아버지와 오빠한테 매번 잔소리처럼 말한다.


"가시나를 저렇게 키워서 어쩌나 "라고 하셨다.


그 시절 엄마가 (커서 뭐가 되려고..)했던 나는 요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낮에는 피부 관리실을 운영하는 원장, 저녁에는 사주 명리학 상담사, 취미로 그리는 그림은 지인들 집들이 선물로 최고, 1시간 일찍 일어나고 점심시간 30분을 쪼개어 브런치 글을 쓰는 작가이다.


엄마는 요즘 나에게 자주 말씀 하신다.


"너에게 이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다. 잘 가르쳤다면 뭐가 돼도 됐으려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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