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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 시어머니 1

by 황갑연

25년 전 그날 남편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시댁에 다녀온 길이다. 잘 다녀왔냐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은 발코니로 곧장 향했다. 그리고는 펑펑 울었다.


시어머니 댁은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다. 한 시간도 채 안돼 돌아왔다.

왕복만 해도 40분이다. 그곳에 몇 분 머물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 짧은 시간에 저리도 서럽게 울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몸까지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저 남편의 흔들리는 등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한참 동안 울고 나서야 눈물을 그친 남편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 엄마집 현관 입구에서 쫓겨났어. 엄마가 돈 이야기 하려거든 신발도 벗지 말고 돌아가라 했어. 나 돈 때문에 엄마집 갔던 거 아닌데. 흐 ~끄어 ~으 "


남편은 서럽고 억울한 듯 또 한 번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난 마음이 아팠다. 서럽게 울고 있는 남편의 마음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나도 많이 아팠다.


남편은 또다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갈 곳 없던 엄마를 받아 줬는데. 오갈 때 없던 여동생도 키워 줬는데. 내가 사업이 망했다고 돈이 없으니 모두 나를 외면하더라. 그 자리에 작은 형이랑 여동생 모두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니 내가 돈 구걸하러 온 줄 알고... 엄마가 신발도 벗지 말라는 말에 누구도 내게 들어오라고 안 하더라. 난 걔들한테 그러지 않았는데..."



그때 남편은 작은 가내 공업을 운영하다 1년 만에 실패한 상태였다. 누구나 그렇듯 사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성공" 할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졌다. 경험과 경영부족으로 1년 만에 1억이라는 빛을 남기고 문을 닫았을 때 많이 힘들어했다. 집에서 한숨만 쉬며 나날이 우울해했다. 아내인 나의 위로와 별개로 가족들에게도 위로를 받으면 좋을 것 같아 바람도 쐴 겸 내가 남편에게 시댁에 다녀오라고 한 것이다.


"성공"이라는 기대만큼 충격도 컸다.


그날 이후 남편은 집 밖을 아예 나가려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날 그 사람 등을 떠밀며 시댁에 바람 쐬러 다녀오라고 한 건 나였으니 한동안 내 잘못인 것 마냥 그에게 많이 미안했다.

처음부터 잘 맞지 않았던 시어머니는 매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40대 젊은 나이에 사별을 했던 그녀는 자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혼을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막내 시누이는 고아가 아닌 고아가 되었고, 그런 동생을 외면하지 못했던 남편은 함께 살자고 했다. 잘 살 줄 만 알았던 시어머니는 무슨 이유인지 몇 년을 살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재혼을 위해 7남매의 의사는 무시한 체 냉정하게 떠났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형제들은 모두 외면했다. 마음이 여린 남편은 엄마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받아주었다. 막내며느리였던 나로서는 불만이 많았다.


"형들도 있는데 우리가 왜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책임져야 해? "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가족이잖아 "라고 했다.


시어머니댁을 다녀온 후 발코니에서 펑펑 울던 남편은 "이 시간 이후부터 나에게 부모 형제라는 가족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다. 우리가 5년 만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연락해야 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전글 (남편의 교통사고)에서 말했듯 남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꺼려했다. 부모와 자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내 아들 어쩌나 하며 슬퍼하는 모습 대신 행여나 본인에게 짐이 될까 짜증을 낼 그녀의 모습을 혹시나 보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친정 엄마는 나를 설득하셨다.


"자식이 다쳐서 저렇게 누워 있는데 당연히 부모한테 알려야지 너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아니더냐"


죽음의 문턱을 다녀와 진통제의 힘으로 잠들어 있는 남편을 보니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다. 정말 죽을 만큼 싫었지만 남편을 위한 마음으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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