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by 박희정

핑계. ㅡ


핑계라는 말을 들어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김건모 씨가 「핑계」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말을 어느 지방의 방언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살아오며 ‘핑계’라는 단어를 쓸 일이 별로 없었던 같다.

누군가를 다그칠 일도, 나 자신을 변명할 일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약속에 늦더라도 사정을 늘어놓기보다는,

미안하다는 한마디였다.

길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달라질 사정은 없기 때문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다.

구태여 핑계로 모면하려 하기보다는 담백하게 사과하고 끝낸다.

‘핑계’라는 말은 내 삶에서 낯선 단어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는 의외로 자주 만난다. 그것도 나라를 이끌던 사람들의 입에서 말이다.

권력의 자리에 있던 이들이 소시민조차 부끄러워할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권력이 벗겨지고 드러난 인품은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 위선은 민망할 정도다.

인간은 결국 벗겨봐야 알 수 있다.

권력이라는 옷을 벗었을 때, 그가 여전히 고매한 사람인지 아니면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


인재가 없어서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인재들은 권력 없이 우리 곁에 있다.

택배를 나르고, 기계를 돌리고,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드는 이들 속에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적표나 직함이 아닌 하루의 성실함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권력,

제도 속에서 길러졌다는 이유로 권력을 쥐고 추앙받는 모습이지만,

법관도 권력자도 애초에 더 고결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나약하기에 여럿이 모여 살았고,

그 안에서 중재자의 역할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들에게 역할을 맡겼다고 해서,

결코 더 높은 자리를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역할은 권력으로 굳어졌고 사람들은 그것에 길들여졌다.


실상은.

심판이 선수보다 위대한 것이 아니듯,

권력자 또한 대중보다 높이 있노라는 뜻은 아니다.

역할이 다를 뿐이다.


화 무 십일홍이요,

권 불 십 년이라 했다.

껍질이 아니라 알맹이는 실 한가.

결국 핑계로는 모양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한 세상 잘 살았다면 결과는 품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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