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이의 비무장지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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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에서 공포가 일렁이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지만 손바닥은 단 한 번도 얼굴을 완전히 밀봉하지 못했다.
중력에 이끌리듯, 혹은 금기된 것을 향한 갈망처럼,
손가락 사이로 두려움을 끌어들였다.
무서워하면서도 끝내 훔쳐보는
비겁하지만 짜릿한 긴장감을 탐닉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삶이라는 스크린 앞에서
손가락을 완전히 오므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중이다.
인간은 고통 없는 행복을 꿈꾼다.
상처 입지 않고,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평온의 상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통이 완전히 소거된 삶의 표면에는
‘권태’라는 이름의 황막한 바람이 분다.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완벽한 평화,
때로는 무기력이 되어.
그래서 안전한 공포를 찾는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자이로스코프에서,
궤도를 달리는 열차의 소음에서,
비명을 지르며 탐닉한다.
이때의 공포는 고통의 그림자인 동시에,
권태를 흔들어 깨우는 계획된 각성제다.
가끔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공포가 입에 쓴 약일 때가 있다.
없으면 권태로 워죽고,
너무 깊으면 고통에 죽고,
그 틈새를 통해 비로소 생존이 확인된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칠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이 세계에 실재함을 감각하게 된다.
결국 손가락 사이의 그 좁은 틈은
삶과 존재 사이의 비무장지대다.
완전한 안전도, 완전한 파멸도 허락되지 않는
그 팽팽한 경계 위에서
오늘도 두려움 섞인 숨을 내쉰 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