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by 박희정

지금의 나

이제는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오롯이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멀리 두어야만 했고, 어쩌다 가까워지면 서둘러 고개를 돌리던 대상. 죽음이라는 말은 차마 입에 올리기 조심스러웠던 말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오히려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생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희망은 먼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닿지 못한 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미 가버린 과거를 붙들고 사느라 정작 곁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했다. 삶은 늘 다음 장에 행복을 미루어 두었을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은 언제나 발치에 있었다.

눈앞의 사람, 무심히 스치는 바람과 저녁의 고요.

그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삶이라는 거대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엇을 얻었느냐 보다 어떻게 이 세계를 바라볼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흔들렸으나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모든 길은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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