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쓰는 사람 ㅡ
내가 쓰는 글은 어둡고 무겁다.
나도 안다.
왜 그렇게 죽음을 이야기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내 글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나는 한때,
생명이라는 것이 죽음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며 살았다.
죽는 것은 한 번의 결단이지만,
사는 것은 매일의 결단이었다.
어떤 날들은 숨 쉬는 일조차 아팠다.
수년을 그렇게 보냈다.
거의 날마다 죽음을 생각했다.
그 생각은 몸에 스며들었고,
죽는다는 생각과 산다는 생각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죽음 쪽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사는 일이 더 버거웠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에도 나는 글을 썼다.
어둡고, 무겁고, 깊이 가라앉은 문장들.
누군가 읽으면 숨이 막힐지도 모를 글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죽음을 쓰고 또 쓰다 보니
내 마음의 무게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생각이 삶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죽음을 이야기하는 글이
오히려 나를 죽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밝은 글을 쓰지 못한다.
여전히 무겁고, 여전히 침잠해 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
이제 나는 벗어나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추락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사람들은 밝은 문장에서 위로를 찾는다.
그러나 깊은 어둠을 지나온 문장은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니체를 읽고,
금강경을 읽었다.
언젠가 내 글이
같은 어둠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조용히 붙잡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죽음을 썼지만,
사실은 생명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