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는 최선의 인연
종종 '가지 않은 길'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아쉬움을 반추한다. 그때 그 사람과 맺어졌더라면, 그때 그 선택을 내렸더라면 지금의 이 고단함은 없었을까.
더 찬란하고 안온한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결코 그 평행우주의 고통을 추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선택하지 못한 과거는 미화된 환영으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면 그 어떤 선택도 완전한 낙원은 아니다.
그때 그 사람과 함께였다면 또 다른 교착점에서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갈등과 현재를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삶이 행복일지 고통일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관계란 독립적인 사건이다.
그때의 인연은 그때의 몫이고, 지금의 관계는 지금의 몫이다. 일도, 인연도 마찬가지다.
오대양을 누비는 선원이 물고기를 만나고,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가 바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의 실체다. 지금 내 곁의 인연들 또한 그들과 내가 동시대를 호흡하며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다.
가끔 화장장의 고요한 기다림 앞에 설 때면 삶의 덧없음을 목도한다. 뜨거웠던 생이 한 줌의 뼈와 재로 돌아가는 찰나, 문득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다시 돌아오는가.'
떠나는 것은 떠나는 대로의 길이 있다. 그러나 존재는 영멸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바람이 되어, 누군가는 비나 눈이 되어 이 대지를 다시 찾는다.
이것은 철학적 위안이기 이전에 물질보존의 법칙이다.
따뜻했던 체온도 본래 세상에서 빌려온 것이기에, 육신이 스러지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우주의 어딘가에서 제 자리를 찾는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도, 부부라는 맺어짐도 이 거대한 순환 속의 한 갈래일 뿐이다. 지상 어딘가를 부유하던 영혼이 인연의 끈을 따라 육신에 깃드는 것,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완성된 인연이다.
그러니 고개를 돌려 과거의 허상을 쫓을 필요는 없다. 지금 겪는 고통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도, 지금의 나 자신도 우주의 정교한 질서 속에서 만난 최선의 결과물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허락된 가장 완벽한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