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과 옷깃을 여미는 마음
찬바람의 기세가 꺾였다 싶더니 목련이 피었다가 졌다. 계절은 늘 뜬금없이 지나는 것처럼 당도했다가 풍경의 채도를 바꾸어 놓고 간다.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하나 둘 봄의 기운이 물 들고. 저마다의 색으로 계절을 마중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조선 시대에는 인재를 등용하는 기준으로 신언서판을 말했다고 한다.
그중 ‘신(身)’을 으뜸에 두었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외모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몸가짐과 기색, 단정함과 절제된 태도 속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읽어내려 했던 시대의 감각.
겉모습은 마음의 통로라 여겼던 믿음.
시대가 달라졌어도 그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에 처음 건네는 소통은 결국 입은 옷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옷가게 거울 앞에 섰다.
“예뻐져라, 예뻐져라.”
코디 아가씨의 주문을
쑥스럽게 삼키며 옷 한 벌을 걸쳐 보았다.
거울 속엔 세월의 흔적을 훈장처럼 단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나는 남자다. 그리고 누군가의 할아버지다.
낯선 색과 질감의 옷을 입는 순간이 생경했다.
아무렇게나 걸치고 살던 익숙함을 벗어내자,
거울 속의 내가 조금은 달라 보였다.
외형이 변한 것도 변한 것이지만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옷 한 벌이 뜻밖의 관복의 효과를 내게 되었다.
옷이 인간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굽은 등을 펴게 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단정히 여미게는 한다. 거울 앞에서 고쳐 잡은 옷매무새가 마음의 주름까지도 펴 줄 것만 같은 것이,
존엄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