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창고와 고무신

by 박희정

연탄창고와 고무신

그 뜨겁고 시린 청춘의 훈장


고샅길에 몰아치는 바람을 따라 담쟁이 잎들이 우수수 달렸다.

코끝이 시렸다고 기억되는 것이 아마도 김장철 무렵이었을 게다.

시내 디스코텍의 번쩍이는 불빛과 길거리의 소음 속을 떠돌던 스물두 살의 밤. 우리는 그 객기를 끌고

친구 녀석의 집으로 스며들었다.

물론 잠잘 곳을 찾아든 것이다.

속옷 차림으로 방에 널브러져 잠든 사내놈 넷.

방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마당 한편에 있는 화장실에 오줌을 누었다.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찾지 못한 채,

아니 스윗치를 찾았지만 없었다.

우리는 입구에서 한 놈씩 차례로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비극의 서막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그날 밤 자다 말고 저승사자를 본 줄 알았다.

아니, 꿈인 줄 알았다.

꿈이라고 하기엔 나무 아팠다.

머리며 얼굴이며 가릴 것 없이 쩍 쩍 소리가 쏟아졌다.

정체는 친구의 어머니였고, 병기는 다름 아닌 당신의 고무신’이었다.

“이 문둥이 새끼들! 술 처먹고 지랄을 해 놨어!”

아팠다.

작고 마른 노인네의 고무신이 서슬 퍼런 칼날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속옷 바람으로 몰매를 맞던 우리는 마당에 끌려 나와 처참한 현장을 목도했다.


화장실인 줄 알고 차례로 볼일 봤던 그곳은

화장실이 아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쌓아둔 연탄 창고였다.

한 놈도 아니고 세 놈씩이나 쌓여진 연탄의 아랫도리를 겨냥했으니,

밤새 젖어든 연탄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고 신성한 월동 준비의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분노가 서린 고무신에 등을 얻어맞고,

무너진 연탄 더미 앞에서 반성해야 했다.

무너진 연탄과 깨진 연탄 부스러기, 그것은 그 시절 우리가 치러야 했던 가장 혹독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성인식이었다.

지금도 가끔 담쟁이 잎이 흩날리는 김장철이 되면 그날의 고무신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철없던 청춘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던 그 맵찬 손길. 이제는 그 어머니도, 그 연탄 창고도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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