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삶이고, 깨달음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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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하고 사는 일
한때는 깨달음이 오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는 줄 알았다. 내면의 분노가 증발하고 서운함이 말라, 사는 일이 눈에 띄게 수월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살아보니 깨달음은 사람을 개조하기보다, 같은 삶을 조금 다른 태도로 견디게 할 뿐이었다.
산다는 것은 왜 이리 고단할까.
이 질문을 오래 붙들고 살았다.
별일 없어도 지치고, 누가 괴롭히지 않아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날들을 건너며 알아차린 것이 있다. 고통이라 부르는 것들의 실체는 대개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생각 속에서 몸집을 불린다는 사실이다.
사건에 생각이 달라붙으면 고통은 배가 된다. 반대로 생각을 놓아주면, 상황은 의외로 견딜 만해진다. 그 이치를 처음 깨달았을 때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혼자 속으로 되뇌었다. ‘아, 이것이 깨달음이구나.’
하지만 사람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아무리 귀한 자각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진다. 처음의 경이로움은 사라지고, 어느새 익숙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과정을 몇 번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깨달음은 번개처럼,
한 번 번쩍이고 나면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성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급한 사람은 여전히 급하고, 예민한 사람은 여전히 예민하다. 깨달음이 사람을 전혀 다른 재질로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간격’이다.
예전 같으면 며칠을 붙잡고 끙끙댈 일을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린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끝까지 끌려가기 전에 멈춰 선다. 억울함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기 전에, “그렇구나” 하며 한발 먼저 인정한다.
그 차이는 아주 작아 겉으로는 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보면 안다.
그 한 뼘의 여유가 삶의 거친 모서리를 얼마나 둥글게 깎아내는지 말이다.
깨달음 뒤에 특별한 표식이 생기지는 않는다. 얼굴빛이 성스러워지지도 않고, 말끝마다
도기(道氣)가 서리지도 않는다.
여전히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몸은 피곤하며, 사람 때문에 서운할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결국 깨달음은 삶 바깥에서 빛나는 무엇이 아니라, 삶 안에서 작동하는 태도다.
문제가 없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무언가에 부딪히는 순간 비로소 드러난다.
‘내가 또 생각에 매달렸구나’,
하지만‘이 일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하며 예전처럼 요란하지 않고 그저 속으로 인정할 뿐이다.
“그렇구나.”
어쩌면 깨달음은 대단한 진리를 거머쥐는 일이 아니라, 그렇구나 그 한마디가 조금 더 빨리 생각나게 하는 숙련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을 성실히 살아내는 방식이다.
부딪히고 흔들리며 서운해하다가도 다시 마음을 돌리는 것. 넘어지더라도 예전보다 조금 덜 다치며 걸어가는 것. 거창한 진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매일 밥을 안치고, 길을 걷고, 인내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었다.
일상이 삶이고,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