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 그 거룩한 뒷걸음질
어느 시절엔 체면이라는 것이 삶의 가장 앞자리에 놓여 있을 때가 있었다.
허기가 명치끝까지 차올라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나더라도, 타인보다 먼저 나를 채우자고 손을 내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몫이 줄어들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더 이상의 요구를 입안으로 삼키는 것,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도리이자 방식이라 믿던 때였다.
그 시절의 체면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는 더더욱 아니었다.
스스로의 영혼에 그어 둔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이었다.
체면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비루한 현실에서도 사람의 모양새가 무너지는 것만은 기어이 막아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풍경이 달라졌다.
체면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예의의 경계를 침범하더라도 실익이 보인다면 우선 제 것부터 챙기는 일이 영리함이 되었다.
이 변화는 개인의 성품이 타락해서라기보다,
시대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다독이던
사람됨의 숭고함이 기준이었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더 배부르고 풍족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정신은 예전보다 더 자주 허기져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굶주림을 택했던 거룩한 뒷걸음질.
그 체면의 무게가 가끔은 그리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