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스스로 지나가는 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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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가 내리면 새로운 물길이 생긴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보이던 흙바닥이
젖고 무너지면서
자신이 흐를 수 있는 곳을 찾아 길을 만든다.
그 길을 억지로 되돌려 놓지 않는다면
물은 한동안 새로 난 길을 따라 흐른다.
지형이 다시 뒤집힐 만큼 더 큰 물이 오기 전까지는.
고통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큰비가 내리면 삶에도 새로운 물길이 생긴다.
누군가는 그것을 상처라고 부르지만
본질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가 지나가는 길이다.
내가 원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고통은 내가 가진 마음의 지형을 따라 흐른다.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고통은
나눈다고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통이란
그렇게 간단히 조각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내 안에 파인 길을 따라 흐르다가
스스로 잦아들거나 더 큰 사건이 와
또 다른 길을 만들 때까지는 그대로다.
그렇다고 고통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물이 마르면 길도 의미를 잃듯
마음속의 물길도 어느 순간에는 무너질 것이고
생각보다 빠르게 뭉개질지도 모른다.
그만한 크기의 고통은 그만한 범위 안에서
스스로 해결되곤 한다.
이미 한 번 생겼던 길이기에 넘치지 않고,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지 마음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크고 작은 비를 반복하며
그때마다 마음의 지형을 바꾼다.
낯설지만 새롭게 생겨났다가 또 사라진다.
고통은 막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흐를 수 있을 만큼 흐르고 나면 다른 모습을 취한다.
그저
마음의 지형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