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 ㅡ
⸻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하다가 안 되면 시골 내려가서 농사짓지.”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을 듣기 어렵다.
농사 역시 장비와 기술의 전문화로,
아무나 간다고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통닭 가게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어서
퇴직금을 날리는 사례가 흔했다.
종교인들 역시 현실이 버겁고 고단할 때,
죽은 뒤 천국으로 간다는 믿음 속에서
일종의 도피처를 찾는다.
또 어떤 이는 “어디로 가면 피안(彼岸)의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에 기대어 현실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도피처란
현실을 피해 달아나는 곳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는 마음의 쉼터일지 모른다.
장소가 바뀌어도, 직업이 달라져도,
내면을 지탱할 힘이 없다면
도피는 끝내 또 다른 도피를 부른다.
진정한 도피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