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

시작을 위한 마음가짐이란 바로 시작 그 자체

by 재즈트리


무엇을 쓸지 고민할 시간에 그저 손을 타자기에 올리고 아무 말이나 한번 적어봐.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으로부터 빠져나온 잡생각이 글로 변하는 순간

다음 단어가 생각나고 말할 거리가 생각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

단어들이 모여 생각을 만들고 의도를 갖기 시작해.

그 의도에 느낌과 살이 붙으면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괜찮은 글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

어떤 이유가 숨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항상 미루기만 하고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데에 도가 튼 나 같은 사람에겐

이런 방법이 매우 효과가 있다는 거야.


스무 살 대학교. 흙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

미국에서 온 캐리라는 교수님은 이런 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더 나은 창작으로 이끌어준 분이셨어.

아이디어 스케치 시간, 항상 비어있는 종이를 보며

고민하고 있는 나를 말없이 지켜보시고는

어떤 말도, 혼을 내지도, 점수를 깎지도 않으셨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흙을 만지기 시작했어.

꼬집기도 해보고 비틀고 비비고 반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어느 순간 나의 머릿속엔 무언가 떠오르기 시작했나 봐.

작은 실마리나 영감 같은 것, 혹은

어떤 형상이나 결과물을 상상하게 하는 어떤 추상적 이미지가 떠올라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어.

마침표를 찍은 결과물은 만족스러움 이상이었고 뿌듯함도 느껴졌어.

무언가 내 능력 밖의 것을 해낸 느낌이랄까.

처음의 의도나 계획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나 봐.


하지만 이런 방식이 계속될수록

마음속에선 남들과 다른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항상 결과물을 내는 내가 이상하고

비정상 적인 것 같아서 선생님께 솔직한 내 마음을 말했어.


'작품에 대한 의미가 생기는 시점이 결과물이 나왔을 때이거나

만드는 중간에 생기는 경우, 혹은 의도했던 것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마치 내 작업은 거짓말을 만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셨어.

자신도 애초에 의도했던 주제가 무언가를 만드는 중간에 변하기도 하고

그 변화는 더 나은 의도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Just create 하라고.


그 말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몰라.

그때부터 날개를 단 듯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

내가 만든 과제나 결과물은 항상 테이블 중앙에 옮겨지며

다른 학우들의 본보기가 되는 예시가 되었어.

밤을 새 가며 즐기고 창작한 덕분에 학기말 A+를 받은 사람은 나뿐이었어.( 대부분 절대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대학교와는 다르게 신기하게도 상대평가 시스템이었어)


얼마 전 온라인으로 프로페서 캐리에게 오랜만의 안부를 물었어.

화면을 통해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였어.


그리고 내게 ‘넌 매우 특별했던 학생이었고

한국에서 많은 좋은 기억이 남게 했던 소중한 학생이었어”


라고 말씀하셨을 땐 뭉클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


아마도 선생님은 내가 ADHD라는 걸 알고 계시거나

그런 비슷한 학생을 경험하셨거나 아니면

본인도 그런 것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분이 아니셨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

일단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일인지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무언가 떠오르지 않을 땐 그저 펜을 들고 아무것이나 끄적여봐.

그림을 그리거나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펜을 왔다 갔다 하며 낙서를 해도 좋아.

그런 행위에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해.

실마리가 보이고 앞으로 갈 길이 보이기 시작해.

신기한 일이야.

창작의 고난함으로 어려움을 겪는 다면 너희도 꼭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

그냥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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