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잘 사용하던 사과 이어폰에
공간 입체음향이 업데이트 지원된다고 했을 때
딱히 감흥이 없었어.
소리에 예민한 나로선 이미 공간입체음향을
매우 잘 누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특히나 층간소음이 심했던 건물에 살 땐
윗집사람들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실린
공간이동 발망치 음향이,
온 집안의 천정을 이것 저곳 두드리며
풍부한 서라운드를 만끽하게 했지.
천정부터 벽과 바닥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8D이상의 입체적인 사운드를
온몸으로 전율하게 하는 그 팬시한 경험이란.
어떨 땐 발자국에
그들의 절박하거나 구슬픈 한이 서려있기도 했고
누군가를 향한 분노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했어.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청취자 고유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미적이론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인 감상일 뿐이야.
어떨 땐 마치,
나에게 절대음감이 있는 건지,
음이 조금이라도 둔탁하거나 높은 날엔
다른 연주자가 건반을 두드리는구나 하기도 했어.
청취자를 고려한 연주자의 다양한 라인업에
박수를 안 칠 수가 없었지.
그들의 연주에 빠지다 보면
내 정신 깊숙이 숨어 좀처럼 나오기 힘든 진솔한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허락되기도 해.
공간입체음향이 지원되기 오래전부터
난 이미 현존하는 기술을 뛰어넘어
음향의 감정까지 전달되는
공감각적이고 풍부한 사운드를 경험하고 있었던 거야.
가끔 콘서타를 못 먹거나 안 먹는 날엔
오히려 이어폰의 공간 입체음향은 나의 집중을 분산시키기도 해.
재즈의 보컬이 머리 위쪽에서 울리고
드럼이 내 목덜미 쪽에서 울리다
피아노의 건반소리가 왼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옮겨지는 게
느껴지기라도 하면
그 즉시 내가 하던 업무가 정지되고
그 음을 따라가는 놀이가 시작돼.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를 하는 술래가 되어
트럼펫과 색소폰 드럼을 따라가는 즐거운 놀이.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시간,
다른 방에서 약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기계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을 땐
나의 하이테크 센서에 많이 놀라시는 눈치였어.
“음악을 하셨으면 정말 잘하셨을 것 같네요”
그러게.
그렇다면 듣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의 많은 소리가
관계사고로 연결되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었을까?
그 소리들이 번뜩이는 영감이 되어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많은 곡들을 쓸 수 있게 해 주었을까?
뼛속부터 영혼까지 뮤지션 재질은
오늘 조금 센티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