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로 인정됐지만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ADHD환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2023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약이 부족해 처방을 받지 못하거나 대체 약으로 처방받아야 하는 상황도 생겨났다.
ADHD환자들은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마음속에 일종의 죄책감 같은 감정을 같고 있다.
발견이나 진단이 늦어진 환자인 경우엔 더 심해진다.
자신이 진짜 ADHD환자인지 아닌지 의심에서 오는 죄책감.
3-4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조용한 ADHD나 성인 ADHD 진단을 받기는 어려웠다.
의사 선생님들이 진단 잘 안 해줬다.
진단 분류 카테고리도 서너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되었고
매번 똑같은 말만 늘어놓는 의사들의 유튜브에선 얻을 수 있는 자료도 한정적이었다.
자신은 분명 ADHD 환자인 것 같은데 진단이 안되거나 우울증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같은
오진단을 받은 환자들도 많다.
환자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커뮤니티는 더욱 활발해졌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정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환자들의 아우성이 없었다면 진단시기는 더 늦어졌을 수도 있다.
ADHD대한 연구와 환자치료 대한 진보한 정책시행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미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진단기준을 12개 이상으로 분류했다.
거기엔 우리나라에서 ‘조용한 ADHD’라고 최근에 불리는 증상도 포함된다.
나도 영어 원문으로 된 10년 전 미국의사의 진단기준에 관한 영상을 보고 나서
스스로를 ADHD로 의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런 기준이 정책이 되고 환자들에게 적용되려면 그전까지는
기능의학으로 치부되거나 사이비 의술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에더럴이라는 약에 대한 인식만 봐도 알 수 있다.
ADHD에 대한 관심과 환자들의 증가 추이가 폭발적인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덕분에 가짜환자들도 넘쳐나게 되었고 진짜로 치료받아야 할 숨은 환자들은
더 진단을 피해 숨어들게 되는 괴이한 현상도 벌어지게 되었다.
진단이 세분화되고 점차 ‘환자로 인정’되기 시작한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진단을 받은 진짜 환자들은
일종의 죄책감 같은 걸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가짜환자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불안.
몇 년간을 우울증 및 다른 병으로으로 알고 살았는데 정말로 내가 ADHD가 맞는 걸까라는 의심.
예전엔 내가 ADHD가 아니라고 분명히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제 내가
ADHD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과 죄책감.
이런 이유들로
자신이 혹시라도 ADHD로 잘못진단받은 것은 아닌 건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환자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 정확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보낸 세월만큼
ADHD라는 병을 얼마만큼이나 더 앓아야 하는가인데도 말이다.
ADHD약을 먹는다는 죄책감.
내가 우울증을 약을 오랫동안 처방받았던 선생님께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좀처럼 프로젝트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의지가 부족하단 이야기를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선생님께서는 내가 좋아지고 있다고만 말씀하셨고
이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진 게 아니냐 라는 반문을 여러 번 들었다.
그동안 선생님과 쌓아온 메타포 안에서 기분과는 상관없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의지의 문제는 그저 나의 천성적 게으름이라고 밖에는 여길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이게 나의 병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도파민에 작용하는 부프로피온을 좀 처방해 주시는 것은 어떤지 말씀을 드렸을 때
선생님께서 보이신 그 반응은 좀처럼 설명하기가 힘들다.
마치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
마치 자신의 진단에 의문을 품은 비 전문가의 하극상처럼 여기는 듯한 느낌.
프로작만으로도 충분한데 이제 와서 도파민기전 약을 처방받으려는 이유가 뭔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듯한 이상한 분위기.
그날은 내가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뵀던 날이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읊으신 자신의 연구경력과 협회 자격에 대한 나열은 너무 괴상한 느낌이 들어
아직까지도 지울 수가 없다.
부프로피온 처방은 받았지만 이후로 얼마간
뭔가 내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부턴 부프로피온을 2알이나 처방해 주셨고
다시 몇 년간이나 치료가 이어졌지만
역시 나의 충동성이나 의지부족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때 내가 받을뻔한 진단이 양극성 장애다.
조증에피소드가 인생에 한 번이라고 있었다면 양극성 장애가 맞다며
꼭 있었는지 기억해 보라고 했던 날,
그날부터 며칠간은 내가 겪었던 열정적이었던 모든 날들,
소중히 여겼던 행복했던 모든 날들까지
조증환자의 병적행동으로 의심해야 했다.
잘못처방받은 약에 정신은 멍해지고 감각도 둔해지고
아빌리파이에 리튬까지 처방을 받았을 땐 여길 떠나야겠다는 확신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옮긴 병원에서
난 아주 간단하고도 확실하게 ADHD처방을 받았다.
그것도 ADHD를 앓고 계시는 의사 선생님께 말이다.
어안이 벙벙해서 며칠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콘서타를 먹고 경험한 그 고요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래. 내가 그토록 바랐던 이 고요함과 평화로움.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한 걸까 하며 세상과 스스로를 미워했던 그때 그 복잡했던 머릿속.
그런데 이렇게 내가 쉽게 ADHD처방을 받고 약을 먹어도 되는 것일까라는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게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부프로피온을 처방해 달라고 했을 때 의심스럽게 날 쳐다보던 첫 병원 선생님 때문이었을까.
아님 가짜환자들이 판을 치는 이 상황에서 진단을 받은 시가와 맞물린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마약이라고 떠들어대는 가짜뉴스나 비전문가들의 과장된 선동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
‘넌 치료받으면 안 돼, 너에게 치료는 사치야’라고 나도 모르는 말을 새겨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지금은 나도 세상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나마 감사한 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제 나를 더 이상 심각한 위험에 빠드리는 상황은
모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동과 주의력 부족으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일을 반복하는 인생인 건 변함없지만
그 정도는 매우 약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쉽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는 것.
나를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나도 시작하면 많은 노력을 쏟지 않고도 즐기며
다른 사람들 보다 월등해질 수 있는 무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환자에겐 죄가 없다.
한 유튜브에선 정신과 선생님께서 나와 현재 ADHD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많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말하는 환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한 SNS에 업로드되는 피드의 통계 중 20% 만이 전문가들의 말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콘서타 부족현상이나 가짜환자들이 넘쳐나는 루트엔 의사 선생님들의 처방이
있지 않고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전문가로서 책임의식은 갖고 계신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논란이 있기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소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알려진 메틸페니데이트가 암암리에 처방되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처방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는 충분히 궁금해할 만한 사실이다.
전문가가 말한 20%의 전문가들에 대해 말하자면 유튜브 몇 개만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떤 한의사는 유튜브에 나와 ADHD의 대부분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며 아스퍼거 증후군을 고칠 수 있는 한약판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떤 명상 전문가는 ADHD는 자신이 가둔 정신적 프레임일 뿐이며 자신의 명상코스를 끊으라 유도하기도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약은 중독현상을 유발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며 자신의 정신분석상담 코스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전문가가 말하는 전문가란 과연 무엇일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비전문가인 환자들이 나누는 증상에 대한 공유와 공감이 불러일으킨 일관된 목소리는 전문가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힘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환자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모른다 할지라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전문가를 뛰어넘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언어를 공부해 가면서까지 더 나은 전문가를 찾아낸다.
급변하는 진단 기준, 약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가짜 환자들을 걸러내는 시스템의 병약함은
진짜 고통받는 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AI가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수많은 전문가들을 대체하고 있는 이런 시대에서
전문가가 살아남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환자로선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환자는 죄가 없다. 그저 치료를 원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