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틈에벌써

by 한준희

“너는 내게 수많은 꼬마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아. 나 또한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한 마리일 뿐이지. 그러니까 나한테는 네가 꼭 필요하지 않아. 물론 너도 마찬가지로 내가 필요하지 않을 거고. 왜냐하면 너한테 나는 수많은 여우 중 한 마리일 뿐이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해지는 거야. 너는 내게 있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둘도 없는 여우가 되는 거지”



이 독립서점은 작은 소리 작은 문자라는 뜻을 지녔다. 소설 책을 사러 서점에 가본 것은 31일 전이 처음이다. 24년, 아니 22년 동안 교재나 사러 가봤지. 그리고 두 번째가, 20일 전 ‘小里小文’이었다. 호스트형-앞으론 희형이 형이라고 하겠다-이 내게 추천해준 서점이었다. 9일 차의 나는 달콤한 사탕을 처음 맛 본 3살의 꼬마 아이였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그곳에서 책방지기-이 말도 너무 재밌었다-가 추천하는 ‘오! 윌리엄’이라는 소설책을 한 권 들고 독서기록스티커를 다음에 와서 꼭 사겠다는 다짐과 함께 빠져나왔다. 그렇게 오늘 또 온 것이다-원래는 여자친구가 제주도에 잠시 놀러왔을 때 같이 와서 독서 기록 스티커를 선물로 줄 계획이었는데 그 잠시 동안 책방이 휴무여서. 독서 기록 스티커와 안녕이 목적이었다. 나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주의 시 한 편을 읽고 독서 기록 스티커를 향해 돌진했다. 근데 웬일, 그때는 샘플이 없었는데 오늘은 샘플이 있었다. 근데 웬일, 내가 생각하던 독서 기록 스티커가 아니었다. 책에 나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스티커인 줄 알았건만, 한 달에 몇 권 읽었는지 기록하는 스티커였다. 그렇게 나는 10분도 채 안돼서 가방끈을 질끈 잡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자그마한 삼거리와 사거리를 여러 번 지나 인도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를 조금 걸어 말에게 갔다. 이 말은 21일 전에 저지 예술인 마을을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말이다. 무심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는데 저 멀리서 그가 나를 고개 쳐들고 바라보고 있었다-미어캣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다가갔다. 무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뒷발만 조심하면 싸우게 되면 내가 이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강아지에게 하는 것처럼 손을 주어 먼저 냄새를 맡게 하고 다가가 우린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같이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의 식사 시간이 찾아 오기 전까지 함께 했다. 오늘은 세 번째 만나러 온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해주러 잠깐 놀러 왔었던 일이다. 그래도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만남에서는 얘기 좀 나누다 밥을 먹으러 떠났었는데 오늘은 웬일, 냄새 킁킁 맡더니 곧장 밥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내 말을 무시하고 신나게 풀을 뜯어먹는 것을 보고 5분도 채 안되어 그 자리도 떠났다.


이 동네는 정말 시골이다. 1층짜리 집들이 내 어깨에 못 미치는 돌담을 믿고 방충망만을 남기고 모든 구멍을 열고 땀을 배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안은 20년 전 수원 할머니 집에서 봤을 듯한 가구와 인테리어가 가득했다. 그리고 왕복 2차선 도로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이 고개 숙인 나무들은 아마도 주인 없는 귤나무인 것 같다. 그래도 숙소 주변에는 올레길이라고 제주스러운 식당과 감성 카페들, 한 달 살이 전용 숙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저기 보이는 얼핏 보면 가정집처럼 보이는 건물은 우리 게스트하우스이다. 친구들이 얘기하던 ‘동물의 왕국’이 아닌 휴식을 찾는 이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작가나 음악가를 위한 숙소였다. 하얀색 벽들을 배경으로 진한 갈색과 밝은 갈색의 가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피아노와 기타가 영화관과 책방을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의 첫날 밤에는 숙소와 턴테이블의 기능을 지닌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거실에 진열된 책들 그리고 향기에 매료되어 4권 분량의 숙소의 방명록을 일류 소설 작가의 책을 읽듯 향유하기도 하였었다. 지난 29일 동안 나는 이 게스트하우스의 터줏대감이었다-어떤 게스트는 나보고 호스트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차가 없으면 오기도 힘들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저 1박 하러 온 게스트일 뿐이다.


보통 지인들에게 제주에 내려간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왜? 힐링? 쉬러?”

‘아니’

아니. 처음에는 그래도 설명하려고 해보았다. 그랬는데 이후의 지인들에게는


“한량의 삶을 살아보려고”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나는 준비된 재료들만으로도 음식의 종류를 상상하고 맛을 상상하고, 어떤 요리를 해야 가장 맛있는 맛이 날까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내려 왔다. 이것을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그거 제주도 아니어도 할 수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가 유난을 떨며 굳이 굳이 제주도로 온 것일 수도 있다. 청주 한 달 살이, 강원 한 달 살이는 못 들어봤어도 제주 한 달 살이는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보지 않았는가?. 근데, 나는 온전히 혼자 있고 싶었고, 바다. 큰 파도를 갖고 싶었다.


이를 온전히 전달함에 힘 쓴 것은 부모님에게였다. 엄마는 생신을 음력으로 챙기시는데, 하필 이번 년엔 7/8일에 생신이셨다. 7월 말부터는 방송국 일정이 있어 그 후로 한 달 살이를 미루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간 고사를 치르고 엄마에게 제주 살이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가~ 안 가라고 해도 갈 거잖아~”라시며 서운함을 톡톡히 표출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마음을 녹여야 했다. 그래서 정말 온힘을 다해서 내가 제주를 가는 목적을 설명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100만원을 빌리기 위해서. 그날은 형의 생일이었다. 작년부터 우리 가족은 생일 케이크를 하는 대신 고급 식당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었다-웃긴 건 이번 년부터 둘 다 하고 있다. 그때 주인공은 치킨에 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했기에 열린치과에 위치한 BBQ를 갔었다. 형의 생일 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2차-맞은편 작은 카페-에서 똑똑한 척을 했다. 아버지는 아메리카노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커피를 사시고 통장에 15만원 있다고 자랑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100만원을 송금해주셨다. 그리고 가족들이 7/8에 맞추어-운이 좋게 토요일이었다-제주에 놀러 오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근데 웬일, 아버지가 갑자기 돈을 안 갚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어쩔 줄 몰라, 아니라고 갚을 거라고 방송국 월급 모으면 갚을 수 있다고 말씀 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버지가 옛날부터 그랬지, 너네한테 도움 되는 거면 돈 안 아낀다고, 니네 닌텐도는 안 사줬어도……”

나는 아버지를 정말 사랑한다. 이 우주 만물 모든 것을 준다 해도 아버지와, 아버지의 털 한 가닥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근데 왜 나는 이 하찮은 100만원에 근육이 경직되고 동공이 흔들리는가.


아버지의 백 만원을 거의 다 썼다. 삼만삼천삼백삼십삼 원 정도 남았을까. 밤이면 TV 속에 들어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유리창을 통해 낯선 빛이 들어온다. 그간 잘 볼 수 없었던 햇빛이었다. 미련 없이 떠나야 하거늘.


이 공용 거실의 커피색 나무 책상에서 지난 29일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의자도 나무라 엉덩이가 자주 아팠다. 그 중의 대부분을 소설, 시, 영화를 접하는데 사용했다-시는 얼마 안된다. 책을 나열해볼까.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베니스의 상인>, <순수 박물관 1>, <아버지의 유산>, <노인과 바다>, <1984>, <어린 왕자>, <자기 앞의 생>.

책과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작가의 표현력, 플롯 구성, 구축한 세계관에 놀라며 감탄하며 향유하였다. 어떻게 이토록 섬세한 표현력을 지니는가? 어떻게 이러한 플롯을 생각해 냈는가? 어떻게 그토록 강력한 몽상력을 지니는가? 너무 재밌어! 근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몽상력만 키운다면?


영화를 나열해볼까.

<유쥬얼 서스펙트>, <비긴 어게인>, <러브레터>, <이터널 선샤인>, <분노의 주먹>, <시네마 천국>, <이웃집 토토로>, <펄프 픽션>, <대부>, <대부 2>, <대부 3>, <빅 피쉬>, <범죄도시 3>, <엘리멘탈>, <트루먼쇼>, <미드나잇 인 파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라랜드>, <극한 직업>, <마스터>-폴 토머스 앤더슨, <메멘토>, <붉은 돼지>, <기생충>, <어바웃 타임>, <헤어질 결심>.

영화는 꽤 본 것 같다. 올해 2분기까지만 해도 나는 영화가 재미 없다고 느껴도 그 이유를 모르기에 대부분 재밌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7월 22일 16시 32분의 나는 영화를 좀 더 깊게 볼 수 있게 되었다-물론,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기에 그들처럼 볼 순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섬세한 연출, 화면 전환을 하였는가? 어떻게 이렇게 플롯을 가지고 놀 수 있는가? 어떻게 그토록 강력한 몽상력을 지녔는가? 재밌다, 아름답다! 근데, 나도 잘하면 할 수 있겠는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메타 코미디 클럽이라는 유튜브 채널에는 ‘러브데스코미디’라는 콘텐츠가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 + 로봇>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나는 몰랐는데 여자친구가 알려줬다. 보통 주제를 하나 잡고 술과 함께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식의 형태이다. 메타 코미디 클럽의 메타 코미디 클럽이라는 스탠딩 코미디인 척하는 난장판 무대와는 색다른 재미다. 2주의 간격을 두고 두 콘텐츠가 번갈아서 업로드가 되는데 그때마다 개그맨들의 능력에 놀라곤 한다. 이제 2주를 또 어떻게 기다린담. 춤 추는 것도 싫어하는 나에게 그들의 무대들은 충격 그 자체이다. 이 콘텐츠들은 짧게 4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을 넘기는데 유튜브 영상은 10분에서 20분이 적당하다는 나의 관념을 바꿔버린 것들이다. 그저 넋 놓고 웃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제 러브 데스 코미디가 올라왔는데, 공채시험 준비할 때의 간절함을 이야기하던 도중 KBS의 마지막 공채개그맨이었던 이재율이 하는 말이


“별로 간절하지 않았어요,

그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쟤보다 더 잘 웃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뒤로 보이는 수평선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근데 뭐 어쩌겠어.

나도 하고 싶은데.


어느틈에벌써에는 방이 총 세 개다. ROOM A, B, C. 지금은 A, B 모두 손님이 있다. 손님이 없던 날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지난 29일 동안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희형이형, 그리고 이름 모를 형과 준하 형이 전부였다. 지금의 A, B 게스트들도 각자 방에서 무엇을 하는진 모르겠다. 사실 방에 안 계신 걸 수도 있다. 그들이 나 때문에 못 나오는 걸까 싶은 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그 형들은 7월 17일 16시부터 19일 11시까지의 ROOM A의 게스트였다. 이 형들도 17일 저녁 8시쯤에는 내가 거실에 있는 것을 보고 주방의 작은 식탁으로 가셨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어린 왕자>를 읽었다. 어린 왕자가 기차역에 도착 했을 쯤이었을까, 인기척이 들려 뒤를 바라보았더니 준하 형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 앉으셔도 돼요”-희형이 형한테 배운 멘트다. “아 그래요?”. 그렇게 그들은 제주 맥주 몇 캔과 과자 두 봉지, 크림 치즈 한 판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먼저 말을 건네볼까 싶었지만, 그들의 여행계획 짜는 데 방해될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준하 형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진짜 짜장면 말고는 뭐 없대요”, “근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 그들이 마라도 탐방에 관한 토론을 10분쯤 이어갔을까. 준하 형이 먼저 먼저 말을 건네주셨다. “언제부터 여기 머무신 거예요?” 내가 책 읽는 데 방해될까 선뜻 앉지 못하셨다고 한다. 맞긴 하다. 형들이 옆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내 어린 왕자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원래 10시면은 영화를 보는데, 그것도 포기했으니까. 29살인 준하 형은 9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반 년이 되었다고 했다. ‘이별보단 이혼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겠는데’. 이후에 다니시던 어느 한 광고 회사를 퇴사하고 오셨다고. 그 회사에서 이 형들은 서로 사수와 부사수였다고 한다. 사수였던 형이 1년 먼저 퇴사하고 다른 회사 다니다가 다시 퇴사하고 오신 거라고. 준하 형은 내 대각선 자리에 앉았는데 내 오른편에 앉은 형은 도무지 말이 없다. 원래 준하 형은 비행기는 편도 티켓만 끊고 혼자 오셨다고 한다. 갑자기 이름 모를 형이 따라 오신 거라고. 나는 준하 형이 담배 피러 가셨을 때 화장실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8일이 되었다.


그렇게 26일 차 저녁은 각종 회, 치킨, 피자, 한라산, 아사이 캔 맥주를 곁들인 밤이 되었다-나는 치킨을 샀다. 말 없는 형은 말이 많아졌다. 내가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을 꺼내자 명작들을 많이 보라고 영화를 추천해주시기도, 영화 감독이 가져야 할 자질도-사실 이건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 고민에 대한 해결책도, 그리고 첫사랑도 얘기해주셨다. 첫사랑 얘기는 준하 형이 해달라고 했는데, 조언의 시간이 길어지자 내가 언짢해 할까봐 분위기 돌리는 겸 물어본 것 같다. 준하 형은 내가 특별하다고 했다. 난생 처음 게스트 하우스의 친구라고. 나도 그렇다. 다만, 아직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말 없는 형은 게스트 하우스를 좀 많이 다녀보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준하 형처럼 특별한 인연이라고들 여겼는데, 돌아가 내륙에서 만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한 달 안에 찾아왔었다고. 그렇게 나보고도 한 달 안에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준하 형이 담배를 피우러 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 모를 형은 끝까지 이름을 알려주시지 않고-나이는 준하 형을 통해 들었다 86년생이라고-중간에 들어가 주무셨다. 준하 형과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조금 더 달래고 우리는 헤어졌다.


사실 다음 날 아침에 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11시까지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원래, 나는 아침에 한라산을 갈 참이었다. 비 때문에 몇 번이고 밀렸다가 드디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 6시의 나는 아직 취해있었다. 한라산 탐방 예약 후, 한라산을 탐방하지 않으면 몇 달간 한라산 탐방이 제한되는 것을 앎에도 그냥 더 잘 수밖에 없었다-사실 편도 4~5시간의 산행이 겁나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준하 형에게 DM이 왔었지만, 아직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마, 산책 중에 왔던 것 같다. 몇 시간 후에 답장을 보낼 생각이다. 동네에 안녕을 고하기 전에도 이 자리에서 <어바웃 타임>을 봤다. 영화의 초중반은 별로였지만, 중반 후반을 갈수록 내 감정은 격해져갔다. 아버지와 아들이 2~30년 전으로 돌아가 해변에서 산책을 하는 장면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이에 나는 4.5점의 별점과 함께 한 줄 평을 남겼다.


“하루 하루를 두 번째, 세 번째 사는 것처럼

미련 없이”


방명록 1권에 있었던 어느 페이지의 글씨 주인이 제주 여행을 마치며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라던 <사라지는, 살아지는>의 어떠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왓챠 피디아라는 어플을 사용했다. 여자친구가 알려준 어플인데, 더위가 찾아왔을 때부터 쏠쏠히 사용 중이다. 나보고 별점을 후하게 주는 ‘인심파’란다. 영화를 평가한 김에 분야를 나누어서 지난 29일간 감상한 정말 좋았었던, 지금의 나로서는 흠잡을 데 없던, 영화를 말해보겠다.


첫 번째. 플롯. <메멘토>와 <펄프 픽션>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쿠엔틴 타란티노는 플롯을 가지고 노는 괴짜이다. “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지난 1학기 ‘문학 창작’이라는 수업에서 권정우 교수님-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시인이자 비평가 교수님-은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앞에 두고, 오르한 파묵이 “나는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이 적절할 것 같다. 그들은 “나는 이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두 번째, 연출. <헤어질 결심>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헤어질 결심>은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창의적이고 부드러운 장면 전환이 나를 사로 잡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완급조절은 정말이지 감탄스러웠다. 가끔 영화를 볼 때면 ‘왜 이렇게 대사와 배경 음악 없는 장면을 짧게 넣지? 몇 초만 더 넣으면 훨씬 좋을 텐데’라는 종종 생각이 들곤 하는데. 그것을 완벽하게 활용한 코엔 형제 감독이었다.


세 번째. 사랑. <이터널 션샤인>. 풋사과.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Okay” 한 마디에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러브 레터> 또한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까움만이 남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소설 원작이다. 근데 대단한 건, 이와이 슌지가 만든 소설이란다. 본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 그게 명작-명작의 기준이 무엇인가?-으로 남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인생.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훌륭한 것이라고 지난 학기 현대시론 수업에서 정효구 교수님-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시인이자 현대 시 전공 교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에겐 <빅 피쉬>였다. 앞서 영화들과 같이 따로 설명하진 않겠다. 나의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작품 해석을 간지럽히길 원하지 않는다.



“이래서 햄릿이 될 수 없는 거야”라는 정우샘의 말은 수업 시간에 종종 들었던 것이다. 1학기의 나는 그 위대함만 상상해볼 뿐이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부터 읽었다. 그중에서도 햄릿 먼저. 극본이라 인물들이 헷갈려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옛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그렇게 아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다.


<1984>와 <어린 왕자>를 제일 재밌게 읽었다. 가장 마지막에 읽은 두 책이라, 더 깊게 향유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1984>를 읽는데 정말 조지 오웰의 두뇌 구조가 궁금했다. 금서의 1장과 3장을 읽을 때는 도무지 감탄밖에는 할 수 없었다-너무 읽기 힘들었다. 30년 뒤의 제 2세계를 떠올린 것은 둘째 치고, 어떻게 혼자서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완벽하게 창조할 수 있었을까?. <어린 왕자>도 그렇다. 생텍 쥐 페리는 어떻게 유치원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만을 조합해-번역본만을 읽어본 것이지만, <1984>를 포함한 다른 책들에는 어려운 단어들이 많았기에 프랑스어로 쓰인 것도 단어 수준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토록 아름답게 전달하는가? 그리고 도대체 이러한 스토리는 어떻게 상상한 것인가?


“아, 어떻게”


책과 영화를 집중적으로 접하면서 창작자들의 몽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던데, 마법의 엉덩이인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의 표현력은 너무 아름다웠다. 놀라운 문장력과 놀라운 연출. 자연스러운 흥분이. 다시 보고,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고맙다.



오늘은 구름이 얼마 없다. 노을이 정말 이쁠 것이다. 이따 희형이 형에게 시간 맞으면 수월봉 가자고 해볼 생각이다. 수월봉에 올라가면 제주의 서쪽을 전부 헤아릴 수 있고 노을도 구경할 수 있다. 수월봉 노을은 다른 것보다 몇 배는 더 밝다. 해의 발자국을 볼 때면 눈이 멀 것만 같다. 만약 여름에 수월봉을 간다면 당신은 노을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면 오징어 배들이 풀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일자로 흐트려져 줄지어 빛나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제의 그곳에는 구름이 많이 꼈었는데, 머리 위에는 말의 갈퀴를 지닌 주황빛 어룡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내게 수월봉을 추천해준 현지인 아저씨는 이 어룡을 보았을까? 수월봉은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고산 환승 정류장-종점-에서 내려 1.9km를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 주변의 서서히 낮아지는 건물들을 조금 지나치자 눈앞에는 건물 하나 없는 2차선 왕복도로,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논과 밭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평선이 펼쳐졌다. 나는 이곳을 반대로 걸어 올 때 뛰어올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몰 시간이 40분 정도 남았었기에 매걸음마다 멈춰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고개를 바삐 돌리며 그 거리를 걸어갔다. 도로는 잠자리의 것이었다. 맞다, 마지막 건물들은 저지리의 동네 주민들이 사는 1층짜리 집에서 돌담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곳을 지나가다가 집 앞에서 놀고 있는-손으로 요요 같은 것을 만지며 멀뚱히 서서 놀고 있었다, 동생은 멀뚱히 서서 그것을 구경했다-5~6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매와 눈이 마주쳤는데, 왜인진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그 남매와 집의 형태가 선명하다. 잊히지 못할 것 같다. 남매 뒤로는 방충망 사이에 비쳐진 옥색 기둥에 꽃무늬 이불이 덮혀져있는 침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수월봉은 내가 제주에 다시 오게 된다면 다시 꼭 갈 장소 중 하나이다. 구름이 없을 때 가보고 싶다. 오렌지 맛 막대사탕과 수월봉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있는 해안도로에 16시부터 18시 사이에 떼 지어 다닌다는 돌고래들을 봐야 한다.


그리고 주상절리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상절리는 아니고, 주상절리에서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축구장 오른편에 있는 비밀의 공간. 원래는 주상절리를 보러 갔었다. 어렸을 때 나는 교과서에서 주상절리를 보고는 언젠가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누가 제주도 와서 서귀포를 가겠는가. 24일 차에 2시간이 안되는 시간 동안 두 대의 버스를 타고, 시내 버스가 대기업 호텔 로비 앞까지 가 정차한다는 것에 놀라며 주상절리에 갔다. 공사 중이라고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주상절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교과서 속의 그곳은 한국판 그랜그 캐니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았고, 주변 난간에는 나무가 너무 많아 절벽은커녕 바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에 나는 무언가 나올 때까지 쭉 걸어 들어갔다. 거짓말처럼 비밀의 장소가 나타났다. 엘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메리가 토토로의 굴에 도착했을 때 느낌과 비슷했을까. 자연이 선물한 수영장을 거대한 돌로 지어진 울타리가 거친 파도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그곳의 몇 안되던 사람들은 각자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물은 밝은 하늘빛이었으며 거대한 파도는 울타리를 부서져라 때리고 있었다. 나는 청바지를 입었었지만, 바지를 무릎 위까지 올리고 울타리 위에 서기 위에, 복압을 주며 박혀있는 것인지 얹혀 있는 것인지 모를 둥근 돌들을 밟아 갔다. 하지만 결국 나는 울타리 바로 앞에서 강을 건너야 하는 아기 코끼리 한 마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깊이가 가늠이 가지 않는 바다에 이끼가 가득했던 돌들을 쉽사리 밟고 넘어갈 수 없었다-바로 옆에서 사람들은 수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청바지를 세탁할 각오-상당한 각오이다, 청바지는 사고 나서 한 번도 빨지 않고 입는 것이라고 배웠다-를 하고 바다에 빠져 그곳을 건너갔다. 그렇게 나는 울타리 끝에 앉아 고래와 문어가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바다를 바로 발 아래 두고 파도를 맞으며 바다를 만끽했다. 발을 헛디딘다면 알 수 없는 곳에 빨려 들어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금방 걸어 올 때까지만 해도 비가 와 우산을 썼어야만 했다. 하지만 울타리에 앉으니, 파란빛이 나를 감쌌다. 자그마한 게들도 상당히 많았다. 울타리에는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한두 번 옮겨가며 부모님과 영상통화도 하고 노래도 듣고 게들과 대화도 하며 이름 모를 곳에서 지난 29일 중 가장 황홀했던 시간을 보냈다. 약간의 전율이 돋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한 마리의 게 때문에 그곳을 떠나야만했다. 바다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노래이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를 듣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자꾸 시선이 느껴졌었다. 돌이 막 지난 아기의 손바닥만한 게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근데 그 게는 자꾸 내 발 위를 지나가고 싶어 했다. 슬금슬금 다가와 내 쪼리에 발을 걸치기까지 했다. 깜짝 놀라 발을 조심스레 올리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를 째려보고는 또 내 발로 오는 것이었다.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상절리도 30분쯤 구경했다.


말한 김에 그간 들렸던 다른 여행지도 말해볼까 한다. 저지오름, 금오름, 판포포구, 금능 해수욕장, 우도, 김영 해수욕장, 저지예술인마을, 오설록, 그리고 이름 모를 제주 공항 뒤편의 해변 등을 갔다. 한라산은 다음에, 겨울에 가보는 걸로. 29일간 많진 않지만 적지 않게 돌아다녔다. 부모님과 여자친구가 오지 않았더라면 판포포구, 우도, 김영, 이름 모를 해변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저지오름과 금오름은 위 두 장소만큼은 아니지만 추천한다. 저지오름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 된 듯한 곳이었다. 저지오름 분화구 하나를 위해 올라갈 가치가 충분했다. 저지 오름은 여자친구와 한 번 더 올라갔다. 처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아름답긴 매한가지였다. 금오름도 아름다웠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곳들의 냄새와 풍경, 바람 소리가 선명하다.


아, 만약 당신이 제주 한 달 살이를 계획하고 이 글을 찾아 본 것이라면 혹은 앞선 6페이지 동안 제주 한 달 살이에 흥미가 생겼다면 당신은 내가 한 달 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궁금해 할 수 있을 것 같아 말해본다. 나는 극한의 짠돌이다. 줄일 수 있는 것에서는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먹는 것의 재미가 있는 건 알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가져 갔을 때 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뭘 먹었냐고? 햇반과 닭가슴살과 김치 그리고 젓갈을 먹었다.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햇반 12개입 4박스-6개 남았다, 닭가슴살 5kg-400g 남았다, 김치 두 통, 명란젓-명란젓은 2주차에 다 먹었다, 멸치젓-멸치젓은 한 입 먹고 너무 짜 먹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오징어젓-3주차부터 먹기 시작했다-등을 먹었다. 물론 이것과 라면 그리고 이것저것을 곁들여 먹었다. 평소-자취-처럼 말이다. 가끔 외식도 했다. 몇 번 사 먹기도 하고, 닭가슴살 먹는 게 안타까웠는지 희형이 형이 밥을 몇 번 사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유제품을 미친 듯이 먹고 싶었지만, 자제해가며 먹었다. 우유, 요플레, 불가리스 등등. 견과류도 매일 한 팩씩 챙겨 먹었다. 지금도 탁자에 물이 스며들어 색이 하얗게 뜰까봐 밑에 휴지를 받춰 둔 플라스틱인지 유리인지 모를 컵에 담긴 우유 한 잔과 함께다. 우유는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우유는 씹어먹는 것이다. 1주 차가 지났을까 입 안에는 20대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나는 구내염이 생기기도 했다. 1주 차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씹는 일이 많이 생겨서 그때문인 줄 알았으나, 엄마는 내가 야채를 먹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프로틴도 1kg 샀지만, 헬스장을 다니지 못해 먹지 않고 그대로 청주로 가져갈 생각이다. 자전거로 30분 거리면 매일 왔다 갔다 할 만하겠다 싶었지만, 도로는 모두 평지가 아니었다. 2일 차에 자전거를 사고 3일 차에 헬스장으로 출발한 지 10분 만에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다시 당근 마켓에 올렸다. 이 자전거는 아직도 팔리지 않았다. 어제 희형이 형이 관리비 안 받을 테니 숙소에 놓고 가라고 했다. 깔끔하게 포기해야했다. 피라미드 푸시업을 간간이 했다. 평소 근력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닭가슴살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빵만 먹었을 것이다. 이것을 희형이 형과 준하 형과 이름 모를 형 그리고 우리 친형 또한 안타깝게 여겼지만 나는 정말 문제 될 게 하나 없었다.


술도 먹었다. 혼자 소주는 절대 먹지 않았다. 맥주는 용인해줘도 소주는 안됐었다. 그렇지만, 혼자 두 번 먹었다. 한 번은 <비긴 어게인>을 보며, 한 번은 <극한 직업>을 보며. 나쁘지 않았다. <비긴 어게인>은 나빴다. 10대의 나는 <비긴 어게인>을 정말 재밌게 보았었다. 이번 년 4월에 있던 이지영 교수님-충북대학교 고전 문학 전공 교수님-과 식사 자리에서는 무슨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비긴 어게인>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기도 하였었다. 특히 ‘LOST STAR’이라는 영화의 삽입곡을 나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 술을 마신 탓일까 영화가 그때만큼의 것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아 아닌데, 이게 아닌데. 진짜로?” 급하고 오그라드는 연출에 한숨만 나왔다. 안주는 닭가슴살에 갈비양념 맛 도리토스였다. 둘이 같이 먹으면 정말 갈비 치킨을 먹는 것 같았다.


또 이렇게 보니까 막상 지난 날이 빠르게 흐른 것 같지만은 않다. 내가 감수성이 조금만 더 예민했다면 이 초콜릿 색 나무 책상에 물이 묻는 것이 무서워 휴지를 열심히 들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우리 아버지는 운전하시며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우리 형-바로 뒷자리-의 입장에 눈을 찡그리며 공감을 표하시며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이 해준 게 정말 없어. 그래서 아버지는 창희 네가 말하는 받은 것보다 더 해주는 게 쉬웠거든?

근데 너희는 또 아니잖아, 받은 것보다 잘해주기 힘들 거야”


정말이다. 지금도 엄마의 파란 신용카드를 들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100만원이고 1000만원이고 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기름값을 내고 가끔 동생들에게 여자친구에게 밥 사줄 일 있으면 쓰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낮에 산책하는 길에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지난 29일간 자주 남기신 말이다.


“우리 준희가 청춘을 제일 멋있게 즐긴다”


정말 어처구니 없다. 누구 때문인데? 나를 보며 만족하시는 엄마에게 죄송할 뿐이다. 그저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를 할 때면, 바쁘시거나 피곤하셔서 통화를 빨리 끊으려 하신다. 엄마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을 하고 계실 텐데, 몇십 년 동안 하셨을 텐데. 그 이유가 나이고, 나를 보며 만족한다는 것이. 한 달 푹 쉬는 게 내가 아니라 엄마 아버지여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 힘을 다해 고마워 하는 것, 얼른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 그리고 건강한 것이다.



“해외를 나가야 시야가 트인다”


무슨 색을 띄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당장만 해도 저기 지나가는 저지리에 평생 몸 담으신 듯한 할머니,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강아지만을 봐도 말이다.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꽃들이 존재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만, 내 떡은 어떠한가. 근데, 저 꽃이 내 꽃이면 얼마나 좋으련.



어느 틈에 벌써 마지막 오후의 반을 보냈다. 어제 나는 오늘 희형이 형이 게스트하우스에 청소하러 오지 않는 날인 것도 모르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신제주에 사신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오늘 오냐고부터 물어봤었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