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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Sep 05. 2022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빵과 서커스’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물건이 그 사람을 말해주듯이 유산이 그 나라를 말해준다. 로마가 남긴, 지금은 세계 유산으로 보호되고 연구되는 수많은 건축물, 방대한 지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도서관 유물, 그 시대의 문화 정보가 담겨 있는 공공 욕장과 원형 극장, 원형 경기장 유적,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것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려 주는 수도와 가도 등 눈에 보이는 것들과 인문, 역사적 지식을 일치시키기 위해 저자는 로마제국 영역에 오늘날까지 2,000년을 견디며 남아 있는 세계 유산의 증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우직한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 책을 통해 문서화, 표준화와 같은 정보관리, 원천 기술의 개발과 전승 및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기술관리 측면에서 당시 로마가 이뤄낸 위업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2004년 로마를 1주일 동안 찬찬히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판테온(萬神殿)’을 처음 보게 되었다. 판테온은 서기 118~128년경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재건한 만신전으로 안지름 43m의 콘크리트 재질의 ‘돔(dom)' 구조다. 나는 이 책에서 로마제국의 역사를 그들이 남긴 성벽, 상하수도, 가도, 해도 공공 욕장, 원형 극장, 경기장, 신전, 도서관 같은 토목, 건축 유산과 연결해 살피면서 다음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로마는 왜 제국의 구석구석까지 대규모 시설을 지을 수 있었을까? 로마의 스승이라 불리던 그리스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에드워드 기번이 말한 것처럼 로마는 “세계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한 시대”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었을까? 또한 ‘빵과 서커스’, 이른바 포퓰리즘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나태해졌는데도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대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로마제국이 남긴 유산들

  고대 로마는 다민족 국가로,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753년 왕정 로마가 건국된 뒤 기원전 509년 공화정 기원전 27년 제정이 시작됐다. 96~180년 五賢帝 시대에 현재의 유럽연합을 능가하는 500만㎢의 영토를 확보했고, 395년 동과 서로 분열돼 476년 서로마제국이 먼저 멸망했다. 제국 시대만 따져도 500년 넘게 유지됐으며, 기원전 264~146년 포에니 전쟁을 포함하면 622년이나 지속한 장수 국가다. 2,000년 전에 인구 100만이 대도시를 운영하고 유지했다.

(영국이 1820년 100만 명이 넘는 최초의 근대 산업도시를 선보인 이래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는 전 세계를 통틀어 1900년에도 11개에 불과했다.)     


※‘세계 유산(World Heritage)' ; 1972년 제17회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의거 등록된 유형 유산을 말한다. “유적, 경관, 자연 등 인류가 공유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가진 것 가운데 이동이 불가능한 부동산과 그에 준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건축물이나 유적 등의 ’문화유산‘, 자형과 생물 다양성 및 경관미 등을 갖춘 지역의 ’자연유산‘, 문화와 자연 양쪽 모두에 해당하는 ’복합유산‘이라는 3개 분야로 분류되고 있다.     


빵과 서커스

고대 로마는 기원전 123년부터 시민들에게 저가 또는 무상으로 식량(밀)과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이른바 ‘빵과 서커스’다. 그라쿠스 형제의 정책은 훗날 포퓰리즘의 효시가 된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유명한 시인 오위디우스(기원전43~17)가 지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키르쿠스(전차 경주장)에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젊은 여자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최대한 그녀에게 접근하라. 이는 쉬운 일이다. 좌석은 좁다. 구실을 찾아 그녀에게 말을 걸어라. 어떤 말이 들어오는지, 당신은 어느 편을 좋아하는지 물어라. 그리고 그녀의 선택에 동의하라. 자주 있는 일이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먼지가 그녀의 무릎에 떨어지면 살짝 털어주어라. 설령 먼지가 떨어지지 않았어도, 떨어진 척을 해서라도 무릎을 살짝 털어주어라.”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한다. 여기서 아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가 정통교리로 인정되고 성자(예수)를 성부의 창조물로 본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결정된다. 아타나시우스파는 세력을 얻자 이단 배척에 열을 올렸는데, 아리우스파 성직자들은 쫓겨나 게르만족 거주지 등에서 포교에 힘썼다.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아타나시우스파 교리가 로마 가톨릭 정통교리가 된다. 이때 종래의 다신교는 이교라고 규정된다. 아울러 비기독교 신에게 바치는 희생을 금지하고 이교의 조각상들도 우상으로 여겨 숭배를 금지했다. 또한 이교도 신전 파괴와 해당 건축 자재를 교회 건축에 전용하도록 허락하고 장려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1487년경 완성한 소묘 작품[비트루비우스에 따른 인간 몸의 비례]은 위트루위우스 [건축십서]의 내용을 토대로 그린 것이다.

“손바닥은 손가락 4개의 폭과 같다. 발의 길이는 손바닥 폭의 4배와 같다.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의 길이는 손바닥 폭 6배와 같다. 두 걸음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이 길이의 4배와 같다. 키는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 길이의 4배와 같다.”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고 말했다.      

로마 이야기를 읽고 나서 오래전 지금도 통용되는 과학과 문명을 이뤄내고 멸망한 후 어떻게 중세의 암흑기가 1,000년이나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제의 핵심은 배척이다.

모든 것을 수용한 로마는 600여 년이 세월을 번영할 수 있었지만, 기독교가 -신권이 황권을 장악한- 국교로 자리 잡으면서 교리의 다툼이 중세 암흑기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확연해졌다.     


책 소개


빵과 서커스-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저, 임해성 옮김. 2019. 4. 18. (주)예문아카이브, 18,000원.


나카가와 요시타카(中川良隆) : 게이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 도쿄대학원에서 토목공학 석사 다이세이건설 토목기술사로 일하면서 세토대교 설계, 시공을 관장했다. 도요대학교에서 공학 박사 같은 대학교 환경건설공학과 교수로 재직 저서 “고대 로마 번영사 3부작”     


임해성 : 그로벌비지니스컨설팅 대표, 인덕대학교 교수,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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