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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Sep 08. 2022

김초엽, 김원영 공저 ‘사이보그가 되다’

청각장애와 보행장애 작가들의 장애-이야기

청각장애와 보행장애를 가진 사람-작가들의 장애-이야기

책 제목에서 ‘사이보그’라는 단어가 있어서 슈퍼맨이나 로봇 팔같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짐작했다. 그러나 내용은 장애를 겪는 특히 청각장애와 보행장애를 가진 사람-작가들의 장애-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됐다.      


사람은 선천적이 아니라도 누구나 다 장애로 돌봄이 필요하게 되어있다.

한 마디로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돌봄은 우리 삶의 근본 조건이다.

어린아이 시절 우리는 전적으로 어른의 돌봄에 의존했다. 나이가 많이 들면 다시 누군가에게 의지할 것이다. 젊은 시기에도 병에 걸리면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돕는 일은 어렵고 힘들며, 긴 시간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행위에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이 언제나 비극은 아니며 누군가를 돌보는 삶도 그저 동정의 대상이나 숭고한 예찬의 조건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돌봄은 관계의 문제이므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기술이 아니라, 돌보는 일을 돕고 돌봄을 받는 사람이 더 잘 돌봄을 받도록 돕는 기술도 가능할 것이다.     


사이보그 cyborg 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를 일컫는 용어다.

현대의 첨단 기술문명이 낳은 새로운 존재의 상징처럼 쓰인다.

어쩌면 대다 수의 인간이 ‘사이보그’로 살아가고 있다. 눈이 잘 안 보이면 ‘안경’을 착용한다.

이빨이 부실하면 ‘임플란트’를 한다. 휠체어를 타고, 보청기를 하는 것, 의족을 달고 인공심장을 달고 있는 사람 모두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아이언 맨의 슈트처럼 멋진 존재자가 아니라도 이미 생체가 아닌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고 산다.     


기술은 해방일까, 혹은 억압일까. 사이보그는 현실일까, 아니면 비유일까.

장애인을 위한 ‘따뜻한 기술’은 정말로 장애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까.

기술의 발전 속에서 장애는 언젠가 사라지고 말 제거의 대상일까.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은 현재에 관한 이야기이자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예전보다 더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시대에 누구도 기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미래는 언젠가 노화하고 취약해지고 병들고 의존하게 될 모든 사람이 마주할 미래이기도 하다. 현실의 우리는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 A씨는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이후 의족을 착용한 채 일했다. 어느 날 근무하던 아파트 단지의 눈을 치우다 넘어졌고 그 일로 의족이 파손되고 말았다. 업무 중 의족이 부서졌기에 A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요양급여를 신청했다. 복지공단은 A씨가 의족이 파손되었을뿐 부상당한 것은 아니라면서 요양급여 지급을 거절했다. A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의족은 단순히 신체를 보조하는 기구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인 다리를 기능적, 물리적,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장치로서,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가 장착한 의족이 파손된 경우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대상인 근로자의 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질서 안에서 살아가며, 그 질서는 정치권력, 지배적 문화, 종교, 언어, 미디어, 거대 자본의 영향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강력한 힘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과학이다. 과학 지식은 어떤 질서들을 부수지만 그 또한 새로운 질서가 된다. 현재의 과학은 인간을 특정하게 설명하고 규정하는 데 합리적으로 보인다. 인간의 정체성 물음을 더 이상 종교나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 답변하게 된 바로 그 시대에 장애는 병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한 양상이자 차이의 문제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등록 장애인 인구는 2018년 기준 2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한다. 유튜브에서 ‘굴러라 구르님’ 체널을 운영하는 김지우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기, 뇌병변장애인 구르님,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농인 유튜버 하개월은 청각장애인의 삶,농문화와 수어에 대한 영상을 주로 제작한다. 농인들의 일상, 차별의 경험,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이담긴 영상들이다. 하개월이 수어로만 진행한 영상에는 “소리가 없는 영상은 처음 보는데 인상적이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인간과 다른 지각 세계를 가진 동물을 이야기 할 때 움벨트umwelt라는 말을 쓴다.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체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세계 그 개체가 살아온 또한 지각하는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이 각자 너무나 고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잊는다. 어떤 주관적 세계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 보편의 삶에 대한 해석이 수도 없이 주어져 있지만 각자 해석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설명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사이보그’라는 말은 결국 인간의 장애 극복에 필요한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인명은 재천이다.’라는 말이 ‘인명은 과학이다.’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연명의료’를 신청하고 하늘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다가오는 미래에 그냥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으로 살기로 했다.     


책 소개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공저. 2021.01.15. ㈜사계절출판사. 367. 17,800원.

     

김초엽.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     


김원영. 대학에서 사회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로스쿨 졸업 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다. 작가, 배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이 있다. 휠체어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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