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에 일어나는 이 세상 이야기
사랑은 완성된 사랑도 아름답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이 이야기가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해진다. 주인공‘이비’는 미국 상류층에서 태어나 자랐다. 개인보다는 체면과 가문의 명예가 더 중요한 분위기 속에서 항상 자유로운 삶을 상상한다. 1년이라는 시간을 엄마에게 허락받아 독립생활이 시작되고 사랑은 그렇게 찾아온다. 거리의 바이올린 연주자 ‘빈센트’를 만나 사랑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끝이다. 어릴 때부터 결혼할 것으로 예정된 오랜 친구 ‘짐’과 결혼하고 아들, 딸을 낳고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래도 잊지 못할 사랑 빈센트를 결국 만나게 된다는 이 소설을 읽고 삶보다는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 그들의 상황이 이해된다.
소설은 이야기다. 그럴듯해야 더 재미있다. ‘세상 저편으로 가는 문’이라는 제목에서 삶을 마감한 뒤 저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죽은 뒤에 일어나는 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 ‘이비’는 여든두 살의 나이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27세로 변하여 그 나이 때 살던 아파트로 돌아간다.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파트 관리인을 했던 ‘리프’는 죽어서도 아파트 관리를 한다. “이비, 이 건물, 이 복도들은 이비의 대기실이야. 각자의 천국이 다르듯 각자의 연옥도 다 달라. 나는 내 인생이 너무 비참해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 행복을 찾았어 남들의 인생사를 알아내고 때때로 끼어들면서, 여기가 사후 세계의 대기실이고 사람들이 잔짜 사후 세계로 넘어가지 못해서 여기 갇혀 있는 거야.” 죽은 뒤 사후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영혼이 너무 무거워서 그렇다고 한다. ‘무거운 것’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본다는 건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본다는 거고, 그럼 수많은 소소한 부분들을 놓치기 쉬워요. 상대방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배우는 것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는 것, 적어도 그 이상을 알려고 하는 의지라도 있는 것”, “산 자들이 우리 세계를 더 예민하게 감지하는 때가 있어. 마음을 열고 불가능한 일을 믿으려고 할 때지. 꿈에 세상을 뜬 사람들이 나오거나 그 사람들이 생전에 한 번도 안 했던 말을 꿈속에서 한다.”며 영혼은 산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다만 산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옳은 것과 쉬운 것 중에 선택을 해야 할 때 보통 우리는 나중에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옳은 쪽을 택하라는 격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옳은 선택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옳은 선택이 눈앞에 있는데, 둘 다 쉬운 게 아닌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옳은 선택이 자신에게도 옳은 선택이다.” 동생의 커밍아웃을 애둘러 이해하고 존중한다. 약점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우리는 나 자신과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감추고 싶은 것에 관해 진심으로 존중해본 적이 있는가?
결국 동화 같은 이야기는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사후 세계에서 첫사랑 빈센트를 만난다. 살아있을 때 법적인 남편 ‘짐’은 아내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일방적인 희생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런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의문이다. 그래서 소설이다. 세상의 사랑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다음부터 이런 소설은 없을 것이다.
책 소개
세상 저편으로 가는 문. 캐리 호프 플레처 저. 허형은 옮김. 2021.02.15. ㈜문학동네. 351쪽. 1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