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요즘 세상은 ‘말’이 대세다. 말을 잘해야 인정받는다. ‘내가 아무리 훌륭하다. 정직하다. 능력 있다.’라고 해도 ‘말’로 표현해서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닌 것’이 된다. 평소 내가 하는 ‘말’에 한계를 느낀다. 내 생각을 말하는데,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과 말귀 못 알아듣게 말하는 사람이 만나서 말해봐야 복장 터질 일밖에 없다. 이 경우 어휘력이 부족한 것인데 ‘그 인간 문제 있다’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한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휘력’-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어휘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조건,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 어휘를 만나는 즐거움을 설명한다. 그래서 책 부제목이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이다.
어휘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나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해가 안 돼도 읽으라고 한다. 사람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한다.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같다. 사물과 대상에 관심이 없다면 어휘력을 늘리기 쉽지 않다. 이해하지 못하면, 못해서 기억에 남고 잊고 살다 어느 순간 찾아온다. 그때 다시 읽으면 기막힌 내 이야기가 된다.
어휘력은 문장을 낱말로 서술을 명사나 형용사로 줄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세상의 사물과 현상은 저마다 명칭을 가졌고 소소해 보이는 것들마저 가지고 있다. 사전에 실린 풀이는 평소 말로 풀어 서술한 내용보다 명확하다. 사물과 현상은 맞춤한 이름을 알면 거의 아는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아는게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아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간단한 표현이라도 고도의 두뇌활동이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온갖 정보를 종합해 인지하고 분석하고 추리하고 통찰하고 판단해 언어로 표현하는데 1초 도 걸리지 않는다.
좌뇌와 우뇌에 흩어져 있는 언어 관련 중추와 신경계가 가히 폭발적인 힘으로 동시에 반응하고 서로 연계한다. 무엇보다 언어 자체가 정밀한 신호 체계다.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남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은 남이 하는 말과 글에 숨은 맥락을 알아차리고 남을 설득할 수 있도록 언어를 조율하는 인간 고유의 선천적 능력이지만 오랜 학습을 통해 길러지고 강화된다.
체험한 낱말과 체험하지 못한 낱말은 간극이 크다. 자신이 몸과 정신으로 체험한 낱말을 사용해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고 자유자재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이란 당신에게 체험해서 잘 아는 것인가, 아직 체험하지 못해 잘 모르는 것인가. 인간뿐 아니라 낱말 하나도 소우주다.
‘나무가 말을 한다.’라는 문장이 어떻게 뜻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에 대해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 이는 언어적 직관으로 스스로 획득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적 직관이 부족한 사람에게 시적 상상력, 은유, 함축, 의인화라고 해봐야 난해한 소리로 들린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언어적 직관이 통한다는 의미다.
지역의 언어가 있고 남성의 언어가 있고 계층의 언어가 있고 이념의 언어가 있고 인종의 언어가 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지역의 언어, 또 다른 성의 언어, 또 다른 계층, 이념, 세대, 인종 따위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런 언어는 바이러스와 같다.
말과 글은 주어가 목적어를 하게 하는 것을 기본 구조로 한다. 그래야 목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타인의 상처와 아픔, 고통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는 선과 윤리를 가늠하는 주요한 기준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표시다. 왜냐하면 그 사람 역시 아파하는 한 명의 가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호흡에 읽기 어려운 문장은 분리하고 입에 붙지 않는 어색한 조사는 수정하거나 삭제한다. 구조가 같은 문장이 연달아 반복되는 것도 피할 수 있다면 좋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혼자 쓰거나 말하고 있어도 교감해야 한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건네는 느낌이라면 좋다. 강력한 지지를 호소하느라 이글거리는 눈빛이든, 안부를 염려하며 은은히 바라보는 눈길이든,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하는 개구쟁이 같은 눈길이든, 나와 당신 사이에 마음의 길을 내야 한다. 주어는 문장의 주인이다.
대나무를 그릴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인다. 그때 급히 서둘러서 붓을 휘둘러 그려내어 보인 것을 따라잡아야 한다. 마음속 생각이 충분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
‘당신은 사람입니까?’ 캡차(CAPTHA-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컴퓨터와 사람을 식별하는 완전 자동화된 튜링 테스트는 지능을 갖춘 사물이 컴퓨터에 침투하는 악성 프로그램이나 스팸을 막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사람은 머리로 안다 해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변화하지 않는다. 내용이 아무리 옳아도 가슴을 울리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가슴만 둥둥 울려댈 뿐 머리에 닿지 않으면 개꿈처럼 공허하다.올바른 논거, 적확한 낱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표현이 아름다워야하고 가슴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말을 잘할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하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잘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책 소개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지음. 2020.08.15. 앤의서재. 342쪽. 16,500원.
유선경. 방송작가. 월간 미술 연재. 저서 『문득, 묻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