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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an 10. 2023

에리히 프롬 지음 『The Art Of Loving』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저마다 개인적인 사랑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이는, 그리고 진정한 겸손과 용기, 신념과 철저한 훈련이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처럼 근원적이고 인격의 계발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저서는 드물 것이다. 각 장에서 저자는 어떻게 하면 사랑을 인생의 가장 유쾌하고 흥분되는 경험이 되게 할 수 있는가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조언해 준다.     


제1장 사랑은 기술인가?

사랑에서는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다.     


1. 사랑, 인간의 존재 문제에 대한 해답

 확실한 것은 오직 과거에 대해서 뿐이고, 미래에 대해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자신이 분리를 극복하려는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려는 욕구이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곧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리되어 있다는 경험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확실히 그것은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이처럼 분리는 격렬한 불안이 근원이다. 그것을 넘어서 분리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시킨다. 분리된 상태에서 느끼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 표현되어 있다.     


 독재적인 체제는 이러한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위협과 공포를 사용하며 민주주의 국가는 암시와 선전을 사용한다.     

‘정신에는 성(性)이 없다’는 계몽 철학의 명제는 이제 일반적인 관습이 되었다 성의 양극성은 사라지고 그 양극성에 바탕을 둔 성적인 사랑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대립적인 극으로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되었다.


 분리를 극복하기 위한 일치-‘황홀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치’, ‘동조에 의한 일치’, ‘창조에 의한 일치’가 있지만 완전한 해답은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타인과의 융합, 즉 ‘사랑’의 성취인 것이다. 인간 상호간의 융합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며, 인류와 집단, 가족, 사회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발광이나 파괴를 의미한다. 사랑이 없이 인간성은 단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     


 공서적 융합의 ‘능동적’인 형태는 지배, 또는 피학대 음란증에 대응하는 심리학적 용어로 ‘학대 음란증’이다. 학대 음란증적 인간은 타인을 자기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고독감에서 갇혀 있다는 감정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는 자기를 숭배하는 사람을 흡수함으로써 자신을 팽창시키고 강화한다. 피학대 음란증적 인간이 가학성 음란증적 인간에 의존하듯 학대 음란증적 인간도 복종적인 사람에게 의존한다. 양자는 한쪽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공서적(共棲的) 일치와 대비하여 성숙한 사랑은 개인의 통합성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일치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능동적인 감정과 수동적인 감정, 즉 행위와 열정으로 구분한다. 능동적인 감정을 행사하는 사람은 자유롭고 자기감정의 지배자이다. 반면에 수동적인 감정이 나타날 때 인간은 충동을 느끼며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동기에 좌우되는 대상이 된다. 따리서 덕과 힘은 하나이며 동일하다는 명제에 도달한다. 시기와 질투와 야망 등 모든 종류의 욕심은 열정이다. 반면 사랑은 행위이며 오직 자유로운 상황에서만 행할 수 있고 억압의 결과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인간의 힘의 행사이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능동적인 특징을 나타낸다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생산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 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준다는 것은 잠재력의 최고의 표현이다. 준다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해서 나는 나의 힘과 부와 능력을 경험한다.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는 것은 나를 희열로 가득 채워 준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왜냐하면 주는 것은 박탈이 아닐 뿐 아니라 주는 행위를 통해서 나의 생동감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는 주는 행위가 애인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기능에서 다시 나타난다어머니는 자기 안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유아에게 젖을 먹이고 체온을 준다주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기 안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자신이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지식, 자신의 유머, 슬픔을 준다. 이것들은 자기 안에 살이 있는 것의 표현이며 명시이다. 따라서 그는 생명을 줌으로써 타인을 부유하게 하며 자신의 생동감을 강화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강화한다. 그는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기쁨이다. 하지만 주는 것을 통해서 그는 타인의 삶에 무엇인가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렇게 가져온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진실로 주게 될 때 그는 그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주는 것은 타인을 역시 주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며그들은 서로의 삶에 가져온 것을 함께 즐기게 된다주는 행위 속에서 무엇인가 탄생하며 관계된 두 사람은 새로 태어난 생명에 감사하게 된다사랑은 사랑을 낳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즉 무능력은 사랑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을 특별히 마르크스가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인간의 세계에 대한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사랑을 사랑으로써만, 신뢰를 신뢰로써만 바꾸게 될 것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존재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보살핌과 관심은 사랑의 또 다른 측면, 책임을 함축하고 있다. 책임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위이다. 책임은 다른 인간 존재의욕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할 수 있고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은 사랑이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쉽게 지배와 소유로 전락할 수 있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며, 착취가 없는 상태이다.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그를 알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하다. 보살핌과 책임, 존경, 지식은 상호 의존적이다. 이 네 가지는 성숙한 인간, 즉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계발하고 스스로 일한 결과만을 갖고자 하며 전지전능이라는 자아도취적 망상을 포기하고 오직 진실로 생산적인 활동만이 제공할 수 있는 내적 힘에 바탕을 둔 겸손을 획득한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일련의 태도이다.     


 더욱 발전된 심리 분석에서는 프로이트의 통찰력을 생리학적인 것에서 생물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으로 전환함으로써 프로이트의 개념을 수정하고 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2.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성인이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단계에 까지 이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성숙한 인간은 어머니다운 양심과 아버지다운 양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성숙한 인간은 자기 내부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형성한 사람이다.


3. 사랑의 대상

 사랑은 근본적으로 어떤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전체로서의 세계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태도이며 성격의 방향이다. 만약 어떤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이다.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이라는 것.


가. 형제애 ; 모든 유형의 사랑의 바탕에 깔려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사랑은 형제애이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한 책임과 보살핌 존경, 지식과 더불어 그의 삶을 심화시키려는 소망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서에서 말하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형태이다.


나. 모성애 ;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불안과 마찬가지로 감염된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어린이의 전인격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젖’만 받은 사람과 ‘젖과 꿀’을 받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자아도취적이며 독재적이고 소유욕이 강한 여자는 어린이가 어릴 때만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오직 진실로 사랑을 주는 여자, 받는 것보다 주는 데서 더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바탕으로 확고히 서 있는 여자만이 분리의 과정을 밟고 있는 어린이에게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다. 육체적 사랑 ; 형제애는 동등한 사람 사이의 사랑이고, 모성애는 무기력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 양자는 서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사랑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성애’이다. 이것은 완전한 융합, 다른 한 사람과의 일치를 갈구하는 것이다. 성격상 배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기만적인 형태일 것이다.


라. 자기애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끊어질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당신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덜 사랑하는 한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데 진실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포함해서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한 사람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 사람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위대하고도 공정한 사람이다.’


마. 신에 대한 사랑 ; 그것은 분리를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려는 욕구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여기서 부모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 사이의 중요한 평행관계로 되돌아올 수 있다. 아이는‘전존재의 근거’로서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무력하다고 느끼며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기 애정의 새로운 중심으로서 아버지로 전환하며 아버지는 사고와 행위의 지도 원리가 된다. 아이는 아버지의 칭찬을 듣고 아버지의 불쾌감을 피하려는 욕구에 의해 자극된다. 완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그는 자신을 보호하고 명령하는 힘으로서의 어머니라는 사람과 아버지라는 사람을 벗어난다. 신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제3장 사랑과 현대 서구사회에서의 사랑의 해체

 현대인은 자기 자신과 동료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 현대인은 사실상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린 인간상과 비슷하다. 잘 먹고 잘 입고 성적으로도 만족하고 있지만, 자아가 없고 동료들과는 피상적 접촉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으며, 헉슬리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나타낸 주장에 따른다. ‘인간이 감정을 가질 때 공동체는 흔들린다.’ 상호간의 성적 만족으로서의 사랑과 ‘팀워크’로서의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로서의 사랑은 현대 서구 사회에서의 사랑의 해체를 나타내는 사회적으로 유형화된 사랑의 병리학의 두 가지 표준적 형태이다.     


 어머니에 대한 유아적 애착에 머물러 있는 남자는 여자가 항상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고 주장하며 자기도 사랑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다고 말하고 극단적인 경우에 그와 다른 여자와의 애정 행각을 용서하려 하지 않으면 그 남자는 심하게 상처받고 실망했다고 느끼며 흔히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며 이기적이고 건방지다는 생각으로 이러한 관념을 합리화한다. 자기들의 애정 행위, 쾌락을 얻으려는 소망과 진실한 사랑을 혼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들이 불공평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때로는 사랑과 의무라는 명목으로 어머니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된 자식을 자기품 안에 두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식은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도 없고, 모든 여인을 타락시켜 버리는 피상적인 성적 수준을 제외하고는 사랑할 수조차 없다.     


 사랑은 오직 두 사람이 자기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때만, 따라서 그들 각자가 자기 존재의 중심에서 자신을 경험할 때만 가능하다. 오직 이러한 ‘중심적 경험’속에 인간이 현실이 있고 생동감이 있으며 사랑의 기초가 있다. 그렇게 경험된 사랑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며 일하는 것이다.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관계의 깊이 관련된 두 사람 각자의 생기와 힘이다. 이것은 사랑을 인식하게 하는 열매이다.


제4장 사랑의 실천

 사랑의 기술에서 이는 사랑의 기술에 익숙해지고자 열망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생애의 모든 면을 통한 훈련과 정신 집중과 인내의 실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의 성취를 위한 중요한 조건은 자아도취의 극복이다. 자아도취와 정반대되는 것은 객관성이다. 모든 형태의 정신질환은 객관성을 결여함으로써 극단적인 무능을 보여 준다. 미친 사람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실재는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고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의 실재일 뿐이다. 그는 외부 세계를 자기의 내면세계의 상징으로, 자기의 창조물로 본다.


자아도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신념을 필요로 한다. 사랑의 기술의 실천은 신념의 실천을 필요로 한다. 신념은 합리적 신념과 비합리적 신념으로 구별된다. 비합리적 신념은 비합리적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의 혹은 사고의 믿음을 의미한다. 합리적 신념은 자신의 사고나 감정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확신이다.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한 가지 태도는 활동이다. 활동이란 자기 힘을 생산적으로 활용함을 뜻한다. 사랑은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잠자는 것은 비활동을 나타내는 적절한 상황이다. 사랑은 모든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도 실제적인 욕구를 말하는 것이다.     


 항상 유부녀하고만 연애할 수밖에 없는 남자는 일반적으로 착취적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가치란 단지 다른 누군가로부터 빼앗을 수 있을 때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생산적 오리엔테이션 즉 저축적, 수용적, 시장거래적, 착취적, 애사적 오래엔테이션


 자기중심성(egotism) 혹은‘자기애’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탐욕의 한 형식입니다. 탐욕 자체는 인간이 가장 기본적인 악덕 중의 하나며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love of self), 자기애(self love)


*자유에서의 도피, 건전한 사회,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려고 하면 막연하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 놓고 있다. 가족의 사랑, 이성의 사랑, 친구 간에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이 타당한 방법인지 말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읽고 사랑에 대하여 밀도 있는 생각을 해 볼 만하다.     


책 소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2015. 2. 15. 에리히 프롬저, 정성호 옮김, 종합출판 범우(주), 9,000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정신분석학자이며 사회학자이자 사상가이다.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졸업한 후, 1929년부터 32년 까지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강사, 나치가 대두하자 1934년 미국으로 망명`귀하한 후 컬럼비아 대학과 베닝턴 대학을 거쳐 52년 멕시코 국립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사회구조의 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연동시키는 ‘인간주의적 정신분석’을 주장, 신프로이트 학파의 이론적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저서 ‘건전한 사회’ ‘혁명적 인간’ ‘자유에서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의혹과 행동’ 등이 있다.


-정성호 -충남 출생, 카톨릭 대학 졸업, 고교 영어교사 역임, 번역 전문가로 활동 중, 신의 아그네스, 영원의 다리, 서로 사랑하며, 간디를 찾아서 등 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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