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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Feb 02. 2023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부제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이 책은 다른 책을 읽다가 인용한 문구를 보고 읽게 됐다. 

책의 부제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성경 마태복음 13장 12절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개인의 이윤 추구가 동시에 공익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의혹에 싸였고 사실상 거짓으로 밝혀졌다.” -바우만-     


세계 최상위 부자들과 세계 최하위 빈자들 간의 간격은 계속 벌어지고 있고, 각국 내의 소득 격차도 계속 확대된다. 경제학자 에리크 오르세나는 “최근의 변화는 세계 인구의 극소수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기 때문에 상위 10%의 평균 소득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서는 변화의 크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메커니즘을 파악하려면 상위 1%, 아니 상위 0.1%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최근의 변화가 초래한 진정한 영향, 즉 중산계급의 ‘프리카리아트’로의 전락이라는 결과를 간과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프리카리아트-‘불안정한과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성한 조어불안정한 고용노동상황에 놓인 비정규직파견직실업자노숙자들을 총칭한다. 2003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상위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지만, 빈자들 특히 최하위 빈자들은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대적으로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며, 절대적으로도 갈수록 늘어나는 사례들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진보센터에 따르면, 30여 년 동안 하위 50%의 미국인들의 평균 소득은 6% 증가했지만 상위 1%의 소득은 229% 증가했다.      


유엔 대학 세계개발경제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전 세계 성인 인구 중 최상위 부자 1%가 전 세계자산의 40%를 소유하고 상위 10%의 부자가 전 세계 부의 8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가 차지하는 부의 양은 1%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우리의 선택, 우리의 생활 방식, 우리 삶의 궤적을 합작하는 독립적인 요소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운명’이다. 운명은 우리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종류의 영역이다. 태어난 곳, 부모의 사회적 위치, 태어난 시기처럼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일이다. 


다른 하나는 ‘품성’이다. 우리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우리의 품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품성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품성을 함양할 수 있다.     

현실적 선택지의 범위는 ‘운명’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 범위 내에서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품성이다.


우리는 ‘구조화된’ 사회 환경에서 살아간다. ‘구조화’는 확률의 조작으로 이루어진다. 즉 특정 선택의 확률을 훨씬 높이는 동시에 다른 선택의 확률은 훨씬 낮추는 식으로 보상과 처벌의 배치를 조정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적 비용이 큰 선택지일수록 선택될 확률은 낮다. 이 비용들은 불평등과 불평등의 공적, 사적 결과들에 대한 저항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한 채 얌전히 굴복거나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길을 시도하고 추구하게 하는 방향으로 조정된다.      


자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화 된 소비자 사회의 주민인 우리가 인생이라는 게임의 전부 혹은 대부분에서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는 주사위들은 대개 불평등에서 이익을 얻거나 혹은 이익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정해져 있다.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다. 그런데도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없고 불평등의 찬가, 현실긍정의 찬가가 유행한다. 오히려 불평등을 옹호하고 평등의 외침을 비웃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이 기이한 현상의 비밀을 우리가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거짓 믿음들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거짓 믿음을 버리면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구조화된 현실의 힘, ‘운명’의 힘은 막강하다. 

거짓 믿음에 근거한 잘못된 선택이 우리를 옥죄는 구조화된 현실을 만들고 공고히 하는 ‘고리’를 끊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 바로 이것이 ‘부정의’ 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책 소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2013.03.15. 도서출판 동녘. 144쪽.


지그문트 바우만(1925.11.19.~2017.01.09.)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 1971년 영국으로 망명, 리즈 대학교 사회학 교수. 저서 『액체 근대』 등     


안규남,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국가와 혁명』 『칼 마르크스』 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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