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희 지음『인문 라이더를 위한 상상력 사전』

진화론, 음양오행, 구천에 관한 이야기

by 안서조

이 책은 다른 책에서 추천해서 읽었다.


“생각하는 힘이 없다면 책을 아무리 읽어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 생각하는 힘은 당장 자신에게 소용되는 점수와 다르다. 상상력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하고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게 하여 더 넓고 깊은 사고의 통찰력을 가지게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릇이 커지고 몸 안의 장기를 단단하게 하여 몸 전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지은이의 말이다.


생각(상상력)의 시작은 어디일까? 서양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925년 7월 21일 미국 테네시주 데이턴에서 열린 버틀러법을 위반한 이 마을의 생물 교사 존 스콥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버틀러법은 세계기독교근본주의협회의 테네시 주 회장이었던 버틀러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법이다.

이 법의 내용은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였다.라는 것에 근거하여 이단의 논리인 진화론은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재판은 존 스콥스의 유죄로 판결되었다.

이 재판은 서양의 사상에 관한 논쟁, 즉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두 세계관의 충돌을 보여준다.


고대 서양사상은 그리스 철학에 바탕을 둔 헬레니즘과 구약에 근원한 헤브라이즘에 의해 형성되었다.

창조론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논리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했고 사람들은 창조론 보다 진화론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위기에 빠진 창조론은 19세기 초 월리엄 페일리의 ‘자연 신학’에서 ‘시계공 논증’을 꺼낸다. 이 논증은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시계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길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는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되었을까? 돌멩이도 시계처럼 생각한다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 시계라면 시계공이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인 돌멩이는 누가 만들었나? 그것은 성경에 해답이 있다. 하나님이 만들었다.


이와같이 세상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두 가지 논리에 따라 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세계를 다르게 인식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세상을 만들어낸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했다. 아나시메네스는 ‘공기’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꼽았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공기, 불, 흙이 흩어지고 모이는 배합에 의해 만물이 이루어진다는 4원소설을 주장했다.


동양에서는 ‘음양오행’ 설이다. 음양과 오행은 기원이 다르다. 중국의 《상서》에 따르면 오행의 첫 번째는 수(물), 두 번째는 화(불), 세 번째는 목(나무), 네 번째는 금(쇠), 다섯 번째는 토(흙)이다. 오행은 각각의 방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 水는 흑색과 북쪽, 짠맛이다. 火는 적색과 남쪽, 쓴맛이다. 木은 청색과 동쪽, 신맛, 金은 백색과 서쪽, 매운맛, 土는 황색과 중앙, 단맛을 상징한다.


오행은 서로 돕는 상생과 서로 충돌하는 상극의 원리가 숨어있다. 상생은 수생목, 화생토, 목생화, 금생수, 토생금이다. 상극은 수극화, 화극금, 목극토, 금극목, 토극수다.

오행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사람의 운명,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사용했다. 점은 사람의 생년월일시에 부여되어있는 오행과 띠를 상징하는 십이간지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서 주술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주술은 ‘유감주술’과 ‘접촉주술’이 있다. 유감주술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라는 원리다. 해구신이 남자의 정력에 좋다. 뇌의 모습과 비슷한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 등이다.


접촉주술은 ‘접촉하고 있던 것은 분리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친다’라는 원리다. 상대의 옷 조각, 손톱, 머리카락 등으로 허수아비나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면 상대가 아프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 은유다. 은유는 직유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사물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관념적 유사성이 서로 다른 사물을 연결하는 것이다. 때로는 유사성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은유가 유감주술의 원리를 따른다면 접촉주술의 원리를 따르는 것은 메토니미metonymy, 즉 환유다.


환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밀접한 관계는 일종의 접촉을 의미한다. 안경을 쓴 사람을 안경잡이라고 하는 것도 안경과 사람이 접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한잔 마신다’도 ‘한잔’은 잔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신다는 표현을 쓴다. ‘잔’이 술이나 물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법칙은 닮아있다. 주술의 법칙은 언어와 연결되고 언어와 사회는 또다시 연결된다. 우리는 거대한 그물망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떻게 대할지가 결정된다. 그것은 일종의 관계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 사람과 사람, 말과 사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마다 달랐다. 인식은 변해왔다. 인식의 변화는 또한 세계관의 변화였다.


예전 사람들은 하늘에도 층이 있다고 믿었다. 동쪽은 蒼天(봄), 북동쪽은 變天, 북쪽은 玄天, 북서쪽은 幽天, 서쪽은 昊天, 남서쪽은 朱天, 남쪽은 炎天, 남동쪽은 陽天의 九天이다.


사람이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 망자는

첫 번째 지옥의 왕인 진광대왕을 만나게 된다. 이 지옥은 검수劍樹지옥이다. 칼과 창에 찔리고 칼의 숲에 갇힌다. 칼과 몽둥이로 사람을 괴롭힌 업보다. 다시 7일이 지나면, 망자가 나하강을 건너야 하는데

두 번째 지옥의 왕 초강대왕이다. 초강대왕은 나하강을 감시한다. 지옥은 확탕鑊湯지옥이다. 확탕은 끓는 가마솥이다. 죄인은 가마솥에 삶아진다.


다시 7일이 지나면.

세 번째 송제대왕의 한빙寒氷지옥으로 간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또 7일이 지나면,

네 번째 오관대왕을 만나게 된다. 그곳은 도산刀山지옥이다. 칼의 산이다. 여기에 저울이 있어 죄의 무게를 단다.


다섯 번째 염라대왕을 만난다. 염라대왕에게는 죽은 자의 죄를 비추는 업경대業鏡臺가 있다. 업경대에서 죄가 나타나면 혀를 뽑는 발설拔舌지옥의 벌을 받는다. 또 7일이 지나면,


여섯 번째 변성대왕을 만난다. 오관대왕의 업칭과 염라대왕의 업경대의 죄에 대한 벌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은 독사毒蛇지옥에서 뱀에게 잡아먹힌다. 다시 7일이 지나 49일이 되면,

일곱 번째 태산대왕의 대애碓磑지옥을 만난다. 방아로 머리를 짓이기는 지옥이다.

죽은 지 100일이 되면 죄와 복을 공평히 다스리는 평등대왕과 마주한다. 이곳은 몸이 잘리는 거해鋸解지옥이다. 죽은 지 1년이 되면 아홉 번 째 도시대왕의 철창 지옥에서 쇠의 탁자에서 망치질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죽어 3년이 되면 흑암黑巖지옥을 다스리는 오도전륜대왕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윤회를 상징하는 수레바퀴가 있다. 오도전륜대왕은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을 정한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업을 재판하는 열 명의 왕을 시왕(十王)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을 인도하는 무당(바리공주)의 역할은 불교에서는 지장보살이 한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구제받을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성불을 포기했다. 때문에 지장보살은 중생을 용서하고 지옥의 불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번뇌를 끊어야 한다. 번뇌를 끊고 해탈로 가는 첫 번째는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하는 加行道다. 다음은 無間, 즉 간격이나 걸림 없이 번뇌를 끊는 無間道다. 마지막으로 해탈에 이르는 해탈도를 지나 해탈의 완성을 이루는 勝進道에 도달하게 된다.


번뇌는 욕심에서 생긴다.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 할 때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리고 결국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세계, 그 세계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삶과 죽음의 과정에도 그런 세계가 있다. 불교에서 인간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극락의 육도를 윤회한다. 인간은 죽어서 살아 있을 때와는 다른 세계로 간다. 아귀는 굶주림과 갈증의 공간이다.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고 먹으려 하면 음식이 타버리고 먹어도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넘기지 못하고 넘기다 해도 곧 죽음 같은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는 곳이다. 축생은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축생 위에 수라는 귀신이 우글거리는 그곳에는 오직 싸움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이다. 인간 세상에서 복을 지으면 극락에 이를 수 있다.


죽음과 환생 사이에 시간이 있다. 보통 49일이다. 인간 세계를 벗어났지만, 아직 다른 세계에 편입되지 않은 영혼은 49일 동안 중간 상태에 놓인다. 49일이 지나면 윤회가 시작된다.


티베트의 라마승 중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죽으면 투명한 빛이 비춘다고 한다. 죽은 영혼은 그 빛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 빛을 따라가지 못한다. 또 다른 빛이 나타난다. 그 빛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 어둠에 빠지고 윤회의 세계에 다시 발을 담그게 된다.


빛을 따라가는 것은 해탈의 과정이다. 해탈은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죽음 이후를 결정하는 것은 살아 생전의 삶이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이듯 미래는 현재와 과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하루는 짧다 하루살이에게 하루는 일생이다. 인간의 일생도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짧다. 지구의 나이는 우주에 비하면 짧다. 모든 것은 그것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면 병이 생겨 죽는데,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사람이 높은 나무 위에 오르면 떨리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사람과 미꾸라지와 원숭이가 사는 세 자리 중 어느 것이 바른 자리인지 누가 알 수 있는가?”-장자-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그것도 자신의 좁은 시각으로.


너무 많은 것에 얽메이면 자연스러울 수 없다. 인의를 강조하는 것은 인의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정의로운 세상이라면 부정을 말할 이유가 없다. 인의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강조된다. 때문에 그것을 규제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럼 세상은 더 복잡하고 더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쿠르테스의 침대’가 있다. 프로쿠르테스는 여행자를 유인하여 자신의 쇠 침대에 눕혔다. 여행자를 침대에 맞게 재단했다. 침대보다 크면 잘라냈고, 작으면 늘렸다. 프로쿠르테스의 침대는 독단과 아집을 상징한다. 자신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고 진리로 받아들이고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은 무시한다. 자신과 다르면 옳지 않은 것이다. 현실의 대한민국도 자신이 옳다는 프로쿠르테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공자는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 했고 맹자는 나를 밀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라고 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싫어한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때 중심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


진나라 왕비가 된 여희는 처음에는 시집가기 싫어했다. 하지만 왕비가 된 후에 호화로운 침상과 산해진미를 맛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울면서 가기 싫어했던 것을 여희는 후회했다. 장자는 죽음도 여희의 경우와 같다고 말한다. 죽음 후를 모르면서 죽기 싫다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그토록 살려고 했던 사람이 죽은 후에 살려고 했던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에서 “모든 것은 변할 뿐이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든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리 많이 생각했을까? 신화의 세계를 보면서 인간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경외롭게 다가온다. 다시 또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책 소개

인문 라이더를 위한 상상력 사전. 임병희 지음. 2014.01.15. 생각정원. 399쪽. 14,000원.


임병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같은 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중국사회과학원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