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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pr 07. 2023

아나가키 히데히로 저 『전략가, 잡초』

아나가키 히데히로 저 『전략가, 잡초』      


제주도는 습기가 많아서 사시사철 풀과의 전쟁이다. ‘풀’이란 잡초를 말한다. 

작가는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라고 말한다. 


잡초는 지구상의 식물 중 하나일 뿐인데 잡초라는 테두리에 들어갔다고 해서 미움을 받곤 한다. 

잡초라는 테두리 자체를 인간이 규정지었으니 잡초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다. 

잡초는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하다. 잡초가 자라난 곳을 유심히 살펴보자. 


잡초는 길이나 밭이나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곳에서 자라난다. 이런 곳은 자연계에 없는 특수한 환경이다. 사실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특수한 진화를 이룬 특수한 식물이다.     


매실 밭에 잡초가 자고 나면 무성하다. 처음에는 제초제도 뿌려보고, 예초기로 관리도 해봤다. 

지금은 나무가 풀보다 커서 가끔 예초기로 한 번 베어주면 나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에 그냥 놔둔다. 

이 책에는 제초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결국 제초제의 남용으로 ‘슈퍼잡초’가 생겨났다. 

인간이 제초제 남용한 결과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인간과 지구상의 생물이 공존 할 수 있는 방법 인 것 같다.     


작가는 잡초를 없애는 방법으로 뽑지 않으면 경쟁에 강한 대형식물이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잡초는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잡초는 사라지지만 덤불과 울창한 숲이 만들어질 것이다. 잡초가 변화하는 모습은 작은 식물이 큰 식물로 변화는 과정, 즉 ‘천이’를 거친다고 한다. “맨땅-초원-관목림-양수림-혼합림-음수림” 순서로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작물은 발아와 수확이 일정하다. 그러나 잡초는 다양하다. 오래전 다윈은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닐뿐더러 가장 현명한 자가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변화하는 자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라고 말했다.  

    

진화는 ‘유전적 변이’와 환경에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 ‘도태’로 일어난다. 베이커는 잡초가 불량한 환경에서도 씨앗을 남기지만 좋은 환경에서는 씨앗을 많이 남긴다. 고 했다. 식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잡초는 어떤 환경에서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잡초의 이런 생존방식은 인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바꿔도 좋은 것과 바꾸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꿔도 되는 것을 고집해서 괜히 에너지를 허비하기보다는 바꿔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을 지키면 된다.     

인간은 정리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생물이라서 스스로 이과와 문과, 예능과 체능 등으로 구별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잡초의 자유로움을 보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의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자연계는 인간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환경은 언제든 바뀌므로 식물이 늘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땅은 없다. 

그러니 항상 새로운 곳을 찾아야만 한다. 널리 퍼뜨리기를 게을리한 식물은 이미 멸종했을 테고, 분포를 넓히려고 노력한 식물만 살아남았다. 도전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변할 수도 있다. “도전하면 변화한다.” 잡초도 곱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잡초는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잡초는 밟히고 또 밟혀도 반드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삶,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잡초의 혼이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소중한가?     


우리는 흔히 ‘보통’이라는 말을 하는데 보통이라 대체 무엇일까? 평균값이 보통이라면 보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은 환상 속 존재일 뿐이다. 인간세계서는 보통이라고 하면 반드시 따라야 할 상식을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반드시 따라야 할 상식이 똘똘 뭉쳐 덩어리가 된 것이 바로 보통이다. 그러나 잡초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 곳에서 싸워 성공하고 있다.     


자연에는 어떤 법률도 도덕도 없다. 법이 통하지 않는 무법지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움이 펼쳐진다. 

그 누구도 서로 도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생물들은 서로 돕고 균형을 유지하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식물의 꽃과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은 서로 돕는 것이 아니다. 곤충은 자신을 위해 꿀을 모을 뿐이고, 식물도 꽃가루를 옮기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독주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서로 도와야 이득이다.” 이것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35억 년 동안 생물이 진화하면서 이끌어낸 답이다. 오로지 인간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할 뿐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잡초는 모두 선택받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잡초는 행운아다. 

실제로 몇만, 몇십만이나 되는 씨앗 가운데 무사히 싹을 틔워 성장하는 잡초는 몇 알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태어날 확률은 어떤가. 남성의 정자는 한 번 사정할 때 수억 개나 방출된다. 그 수억 개 중 뽑힌 단 하나의 정자가 200만 개 중 뽑힌 난자와 만나서 만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당신이 태어났다. 당신 부모가 태어날 확률도 한없이 낮다. 당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 부모님은 태어나지 않을 테고, 정자와 난자의 조합으로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태어날 확률도 아주 낮다.      


우리 유전자는 머나먼 유인원의 조상이나 척추동물의 조상이나 단세포 동물로 이어져 있다. 기적과 같은 유전자 조합이 연속, 35억 년이라는 생명의 역사에서 조합을 한 끗만 잘못했어도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만큼 행운아다.      


우리는 삶을 부여받지 못한 다른 수많은 존재를 대표해 이 세상을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대단한 우연으로 지금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쉬운 이야기를 깊게, 깊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꼼꼼하게, 꼼꼼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유쾌하게” 일본의 잡초학 박사가 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일본의 기초과학에 대한 깊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기초과학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한 것보다 변화에 능한 것을 추구하려면 기본이 중요하다.     


책 소개     

아나가키 히데히로 저 『전략가, 잡초』 김소영 옮김. 2021.03.26. 도서출판 더숲. 14,000원. 


이나가키 히데히로 – 1968년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나 오카야마대학 대학원 농학 연구관에서 잡초생태학을 전공시즈오카대학 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자 농학박사 대중 과학 저술가.    

 

김소영 –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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