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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pr 06. 2023

김훈 소설. 《저만치 혼자서》

김훈 작가의 단편 7편 모음집

이 소설집은 김훈 작가의 단편 7편 모음집이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 로 유명하다. 그래서 읽었다.     


「명태와 고래」 동해안 어촌마을에 살던 이춘개는 6.25 한국전쟁이 나자 남한으로 피난한다. 고향에서 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휴전선 이남에서 어부로 살아간다. 명태잡이를 하던 어느 날 기관 고장으로 월북하게 된다. 그리고 송환되었으나, 간첩 혐의로 13년을 복역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어촌에서 보름 만에 물에 빠져 죽는다.     


어느 시대나 민초들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한 죄 밖에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생업을 이어가는데 무슨 이념이 있을까. 기관 고장으로 보이지 않는 휴전선을 넘었다고 북에서 고초를 겪고 내려와서 남에서 간첩으로 죄인이 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자식은 간첩의 자식으로 살아간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삶은 끝난다.     


“바다에서 시간은 구획되지 않았고, 북서에서 남동으로 풍향이 바뀌어도 바람은 늘 물위를 달려가서, 물은 제자리에서 출렁거렸다. 더위와 추위는 사람의 것이었고 계절은 더위나 추위와 상관없이 한데 붙어서 흘러갔다. 아버지의 죽음이나 자식들의 출생도 그렇게 구획되지 않은 채 이어져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손」 “거울 속의 나는 나이 보다 늙어 보였다. 아주 오래 산 느낌이었다.” 이혼한 여자가 아들을 혼자서 키운다. 그 아들은 자라서 군에 입대하기 전에 여자를 강간하고 강간당한 여자는 자살한다. 부모의 이혼이 자식이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식은 결손가정의 아이가 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하는 장난이 범죄가 된다.     


작가는 신참 소방대원의 글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물에 빠진 여자가 구조하는 소방대원의 손을 잡았던 느낌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손”을 소설에서 연결하려 했지만, 글은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라고 전한다.     


「저녁 내기 장기」 작가는 일산에 산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의 개발 과정을 보면서 옛것의 향수를 느껴보려고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사업가에서 부도처리 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년의 이야기다. 저녁 내기 장기를 두는 두 초로의 남자와 임무를 상실한 맹도견 한 마리가 서로 사회에 잉여물이란 것을 확인하며 살아간다. 이춘갑은 부채 때문에 이혼한 아내의 부고를 받고 문상을 간다. “아버님이라는 말은 아무런 경로심을 포함하지 않는 무인칭의 늙은이를 부르는 호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칠십 대 이혼한 남자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간다.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일당을 주고 사람을 산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     


대장 내시경 검사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종합검진 프로그램의 선택 사항이었다. 검진 때가 다가오면 나는 밀린 일들을 서둘러 처리했다. 검진 결과 암 같은 난치병의 중증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에 대비하려는 심사였는데.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되었다.”     


작가는 “몸에 탈 나서 병원에 가고 죽은 친구들의 빈소에 문상 가는 일은 요즘 나의 중요한 일과이다. 문상가면 친구들을 만나서 소주 마시고 노닥거리는데, 문상 왔던 사람이 몇 달 후에 죽어서 문상받는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모르고, 산 자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모른다. 빈소에서 노닥거릴 때, 인간은 무엇을 아는가? 라는 의문이 떠오르면 난감하다. 죽지 않은 사람들은 이웃집에 마실 가듯이 죽은 사람의 빈소에 모인다. 슬픔과 고통이 세월에 의해 풍화되면 마음속에는 환영이 남는다. 환영은 무력하지만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김훈 작가의 글은 간단명료하다. 이해하기 쉽다. 말과 글은 이해하기 수월해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만치 혼자서」에 “김루시아 수녀는 재처럼 조용했고, 마음속에서도 말이 들끓지 않았다. 김루시아 수녀는 기도할 때도 말이 태어나지 않는 저편에서 장궤長跪했다.”라는 글귀를 읽고 ‘장궤長跪’라는 단어 뜻을 몰랐다. 사전을 찾아보니 ‘인도와 서역인 들의 무릎을 꿇는 예법. 두 무릎을 땅에 대고 허리를 세우는 자세’라고 불교사전에 나와 있다.     


세상에 말과 글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데, 평범한 나는 이 세상의 말과 글에 사용되는 단어를 몇 개나 사용하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책 소개

김훈 소설. 《저만치 혼자서》 2022.06.01. ㈜문학동네. 263쪽. 13,000원.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칼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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