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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May 02. 2023

채사장 지음『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2019년에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었다. 2년이 지난 뒤 2권을 읽게 되었다.


1권에서 현실적인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등을 주제로 다뤘다.


이 책에서는 진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 그리고 ‘신비’에서 죽음과 삶을 주제로 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넓고 얕은 지식’으로 누구와 대화를 해도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만들었다. 라고 한다.     


  “인생의 의미와 깊이는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비로소 빛을 낸다.” 저자가 책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의 속성은 ‘절대적, 보편적이고 불변함’이라고 알고 있다.


다만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시대에 따라 변해왔을 뿐이다. 절대적, 상대적, 불가지론,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철학, 과학, 예술에서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를 기반으로 논쟁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것은 ‘종교’일 것이다. 오랜 역사의 시간 동안 인류의 문화와 개인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쳐온 수많은 종교는 절대적 유일신교, 상대적 다신교로 대별 할 수 있다.     

 

깊이 있게 알기 위해 암기하려고 노력하지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 이름 하나만 알더라고 대화에 깊이는 달라질 것이다. 과학이 수학에 기반한다는 것은 진리다.      


수학이 이렇게 항상 유의미하게 진리를 내포할 수 있는 이유는 “수학이 동어 반복이기 때문”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동어 반복’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정의하는 말이 정의되는 것을 되풀이하는 특수한 문장’을 말한다.     

내가 관심 갖는 부분은 “신비” 편이다.


앞의 주제들은 대화를 위한 지식이다. 현대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예술의 아름다움이나 신앙의 경건함이나 삶의 의미나 죽음의 신비는 다른 누군가와 토론하거나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에 관해 물질과 정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라는 ‘물심이원론’, 물질만이 존재하고 정신은 허상이다. 라는 ‘물심일원론’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능성은

시간적 단절인 ‘없음(無)’과 죽은 후에도 지속된다는 ‘영생’, 삶이 반복된다는 ‘윤회’, 동일 반복이라는 ‘영원회귀’일 것이다.      


현대인은 죽음 이후에 관해 말하기를 꺼리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막연히 알고 있다.

그것은 지금 나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죽음이라는 예정된 사건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행위를 이해하게 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죽음의 문제는 항상 삶의 의미와 엮여 있다.     


왜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삶 속에 있을까?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통시적 측면(시간을 고려한 역사적 측면에서 개념을 파악하는 방법)에서의 ‘인생’의 의미와


공시적 측면(시간성을 배제하고 특정 시점의 현 상황을 기준으로 개념을 파악하는 방법)에서의 ‘의식’의 의미가 있다.      


삶은 시간 속에서 ‘인생’으로 드러나고, 시간을 벗어나 현재의 공간에서 ‘의식’으로 인지된다. 삶의 신비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발견되는 인생과 공간 안에서 발견되는 의식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이유와 의미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규정된다. 삶이 의미를 이해하는 죽음은 필수다. 죽음이라는 끝이 없다면 삶의 범위는 확정되지 않고, 그 의미는 이해되지 않는다.

죽음을 회피하고 모른 체하려는 현대인은 그래서 일상이 허전하고 불안하다.     


나의 의식에는 두 종류의 대상이 드러나는데,

하나는 외부로부터 오는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으로부터 오는 관념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나를 기준점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은 이러한 주관성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와 타인은 말 그대로 눈앞의 공간과 물리적 실체를 다르게 구성한다.

내 앞의 세계가 정말로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세계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진짜 외부에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외부 세계는 없다.

우리는 내 머릿속에 산다.     


그래서 살아 있음은 신비하다. 살아 있다는 건

그 개인이 온전히 하나의 내적 세계, 하나의 우주를 소유하고 그 안에 거주함을 의미한다.


실체라고 믿었던 눈앞의 세계가 사실은 나의 주관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그것은 단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진실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안개는 걷히고 가려져 있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책 소개     

채사장 지음.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2020.02.05. (주)웨일북. 16,000원. 381쪽     


채사장 -성균관 대학 졸, 글쓰기, 강연 등 활동, 팟캐스트 방송 ‘지대넓얕’의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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