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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l 11. 2023

손원평 지음. 『프리즘』

‘프리즘’은 초등학교 시절 자연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준 삼각 유리막대로 기억한다. 

프리즘에 빛을 투과시키면 일곱 가지 무지개색으로 나타난다. 


이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4명의 주인공이 성장 과정부터 사랑과 이별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소설에서 풍경은 좋은 소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연애와 사랑에 연관하여 표현한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한다. 이야기가 강렬하면 영상으로 나타난다. 종이책 만 줄 수 있는 맛이다. 사랑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다. 한동안 TV에 미혼남녀가 나와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짝이 맞으면 데이트를 주선하는 프로그램이 유행한 적이 있다. 네 사람의 남, 녀가 나와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지명하라고 하면, 일대일로 지명이 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 한 여자가 혹은 한 남자가 다수의 이성에게 선택받는다. 그래서 인기가 있었나 보다.     


 현실에서도 사랑은 이렇게 엇나가기 마련이다. 네 명의 남녀가 운명처럼 만났다가 운명처럼 헤어진다. 그 사이에 누군가 개입한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이 남녀의 만남을 주선한다. 현재 위치를 공유하면 주위에 외로운 사람이 점으로 표시된다. 그 점으로 표시된 누군가와 접속하여 현실 세계에서 만난다. 그리고 마음이 맞으면 이어지지만 서로 스타일이 다르면 그냥 헤어지면 된다. “만난 지 몇 분 만에 별로 흥미롭지 않은 상대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술잔이 넘어가는 속도에 가속이 붙기 시작할 때쯤, 먼저 가볼께요.”라고 작별을 고한다.     


  “음악은 우연히 들어선 길목에 놓인 운 좋은 탈출구 내지는 해방구였다. 막연히 음악을 좋아했지만, 음악으로 인해 영혼이 차오를 수 있다는 경험은 경이에 가까웠다. 자신에게 스스로가 알지 못했던 낯선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목소리와 음악에 호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세상과 천천히 화해해나가는 기분이었다. 음악은 정녕 태초의 마법이었다.” 알 수 없는 외로움이 가슴 깊이 가득 찬 사람에게 음악은 이런 것이다. “술을 마시면 내가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잃어갔던 기운을 되찾는 거 같아. 어딘가에 피처럼 흘려버린 활기를 다시 마시는 거지.” 청바지를 입던 시절 만났던 연인은 새치가 머리에 내려앉을 무렵 만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행복의 시간은 짧다. 알코올은 몸을 기분 좋게 위로하다가도 임계점을 넘는 순간 돌변하여 정신을 희롱한다. 몸은 의지를 떠나 제멋대로 움직여지거나 움직여지지 않게 되고, 기억의 방은 무작위로 헤집어진다. 결국 웃어야 할 기억 앞에서 울고 울어야 할, 기억 앞에서 웃고 만다. 실연의 아픔은 술이 달래 준다. 그러나 술은 해법이 아니다. 더 아픈 곳으로 이끌어 주는 안내자일 뿐이다.     


  스스로 외면하고 살았던 삶에서 파생하는 여러 고민을 한 번이라도 내재화해 성숙시킨 적이 있던가. 언제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궁리했을 뿐, 스스로 얼굴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이별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게 한다. 여름은 마법 같다. 단순히 열기와 습기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여름의 본질은 작열감과 윤기다.      


  기다린다. 기대하고 고대한다. 갈망하고 염원한다. 아름다워도 상처받아도, 아파서 후회해도 사랑이란 건 멈춰지지 않는다. 사랑의 속성이 있다면 시작한다는 것, 끝난다는 것, 불타오르고 희미해져 꺼진다는 것. 그리고 또다시 다른 얼굴로 시작된다는 것. 그 끊임없는 사이클을 살아 있는 내내 오간다는 것. 그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 뜨거운 도시의 거리 위에서, 한겨울에도 늘 여름인 마음속에서, 태양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우주가 점이 되어 소멸하는 그날까지.     


책 소개


손원평 지음. 『프리즘』  2020.09.15. ㈜은행나무. 261쪽. 13,500원. 


손원평 : 서울 생,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 철학을 공부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 수상, 등단작인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아몬드”는 16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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