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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ug 01. 2023

병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것

상처와 고통에 관한 의학, 문학, 법학의 이야기

2019.5.9.~6.27.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도서관에서 개설한 “2019년 인문독서아카데미 호모 파티엔스의 인간학 - 상처와 고통에 관한 의학, 문학, 법학의 이야기”를 수강했다. 지난 4월 8일 아내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왼쪽 콩팥에 생긴 혹을 수술하였는데 조직검사 결과 1기 암으로 판명이 났다. 지금까지 암이란 병에 대해 TV보험 상품 광고에서나 보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내 곁에 온 것이다. 조기에 발견하여 완전히 제거되고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는 때 “상처와 고통”에 관한 주제로 인문학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내와 같이 수강 신청을 하게 되었다.     


  통증과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못 이루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깊은 밤중에 깨어 온갖 상념으로 다시 잠을 못 자는 경험을 의사가 알까? “수술은 잘 된 것인가. 전이는 안 됐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될까?” 하는 환자의 불안감, 스마트폰에 떠도는 온갖 정보들…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것을 이번 강의를 받으면 궁금증이 해결될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제주대 황임경 교수의 의료인문학 강의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의과에 ‘의료인문학’이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아내가 수술하고 입원하였을 때 간호 하면서 환자와 가족이 느끼는 심정을 의사를 포함한 간호사 등 의료진은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치료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이 고통에 대해 인문학적인 고민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 인생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생노병사”라고 하였다. 출생과 사망 사이에 ‘나이 듦과 병’이 함께 한다. 어쩔 수 없이 동반해야 하는 과정이지만 “병”은 피하고 싶다. 병에 걸린 당사자도 힘들지만, 주위의 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또 다른 병이다. 순조롭게 반복되던 일상은 어깃장이 나고 병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안 되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런 것은 질병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이다. 아내가 열이 계속되어 병원 응급실에 갔다. 


요로감염 증상이 있다며 신장 내과에서 진료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신장내과 의사는 아내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서 먹는 약으로는 안 되고 주사로 치료해야 한다며 10일간 수액을 처방하였다. 항생제를 맞는 동안 아내는 입맛도 떨어지고 힘들어했다. 그러자 의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내 병이 어떤 상태인지 환자만 모르는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의사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다.     


  강의받으면서 일본 영화 ‘이키루’에서 위암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신경과 의사에서 환자복을 입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고, 질병으로 인한 몸, 시간, 자아의 변화와 권리를 갖지 못하는 ‘입원한 자’가 되었다는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는 인간이 질병 앞에서 무기력함을 잘 나타낸다. 의학에 인문학이 조속히 정착하여 질병의 고통과 그로 인한 고민, 갈등이 인간적으로 다뤄질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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