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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Nov 21. 2023

백온유 소설. 『 경우 없는 세계』

가출청소년 이야기

백온유 장편소설 『유원』을 읽고 두 번째로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작가의 소설은 치밀한 묘사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간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할 정도로 몰입된다.     


이 소설은 가출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가출 이유는 대부분 가정불화 폭력, 결손가정 등 다양하다. 주인공 ‘나’ 정인수는 그림자 같은 아이다.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없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이름을 외우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 없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심하고 존재감 없는 ‘나’는 아버지에게 순종적인 엄마가 아버지에게 무차별 구타하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맞다가는 엄마가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 덩치가 큰 ‘나’가 아버지를 붙잡고 껴안는다. 아버지는 힘에 부쳐 꼼짝하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는 코뼈가 부러진다. 그래서 가출한다.     


가출은 왜 할까? 家出, 집에서 나가는 것. 좋은 뜻에서 집에서 나가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입신양명의 뜻을 품고 출세하기 위해서 타지로 간다. 그러나 가출은 집에서 살 수 없어서, 살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결론은, 속마음은 집을 살기 좋은 곳, 편안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 가정! 유명한 호텔에서는 최상급 서비스를 ‘내 집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영어 표현은 “Make yourself at home”이다. 직영하면 당신의 집같이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편안해야 할 집이 불편하고 지옥 같을 때 가출한다. 그러나 그런 속뜻을 알면서 가족끼리 이해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곳이 가정이다.     


우리 사회에 가출 청소년이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결국 도둑질, 범죄에 노출된다. 재혼한 엄마, 의붓아버지, 이복형과 살던 성연이를 만난다. 소년원에 갔다 온 영철이와 세준이도 만난다. 가출 여학생 지민이와 정희도 합세한다.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주영은 어릴 때 엄마가 죽고 고아가 된다. 엄마가 살던 반지하 집을 상속했지만, 노숙인이 되었다. 가출 청소년에게 그 집을 제공한다. 집 현관문 앞에 ‘WELCOME! 행복한 우리집’이라고 적힌 구름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어느 날 A라는 가출 청소년이 ‘행복한 우리집’에 찾아오고, 잠을 자다가 죽는다. ‘A’는 몸도 약하고 말도 어눌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자동차 사고 자해 공갈로 살아가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가족도 없고 찾을 사람도 없다. 결국 시체를 야산에 암매장한다. 경찰에 신고하자는 ‘경우’의 의견은 무시되고 시간은 흘러갔다. ‘경우’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경찰에 자수한다. ‘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사서 무죄로 석방된다. 이 일을 계기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것 같았지만, 재판이 끝나는 날, 법원 앞 분식집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기대한 ‘나’는 여전히 자기를 무시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다시 가출한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나’는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인이 된다. 옥탑방에서 살아가는데 우연히 가출 청소년 ‘이호’가 자동차 사고를 위장해서 돈을 뜯어내는 장면을 보고, 자기 집에 데려다가 재워주고 같이 살아간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가출 청소년을 인터뷰했다. “청소년기에 가출한 경험이 있거나 소년원에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편견에 가득 찬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질문이 무례한 건 아닐까,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그들이 내게 반감을 가져서 솔직한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인터뷰에 나온 그들은 미리 준비해 간 내 질문에 성의껏 대답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마음은 후련하기는커녕 매번 답답했고 그래서 자책하게 됐다.”라고 고백한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고, 집 밖에 나가서 언제면 엄마가 나를 찾아올 것인가 하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거다.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찾아온다.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하고 일은 마무리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요즘같이 오락실도 없고, 24시 편의점도 없었다. 요즘은 빈집도 많고 갈 곳도 많다. 단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출 청소년을 범죄 환경에 쉽게 노출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화목한 부부 사이에 자식들도 원만한 인격이 형성되고,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이 책을 읽고 세상 모든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성연의 행동을 목격하고 내가 보였던 태도는 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었다. 부도덕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언제나, 나름대로 선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변명하며 상황에 휩쓸리는 것 말이다. 그날도 나는 주도적으로 죄를 짓지는 않았으며 나의 죄를 굳이 꼽자면 방관하는 것 정도라고, 큰돈을 탐낸 적이 없으니 이건 생계형 범죄라고 손쉽게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죽은 후에도 아픔이 이어진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된 삶은 줄곧 아득하고 막막했으니까. 남들이 모르는 것을 감지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나는 나이를 먹어도 지혜나 연륜 같은 건 터득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아득함만 깨닫고 있었다.          


책 소개

백온유 소설. 『 경우 없는 세계』 2023.03.30. ㈜창비. 279쪽. 15,000원.

     

백온유. 1993년 경북 영덕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장편 동화 『정교』로 2017년 제24회 MBC 창작동화대상 수상, 2019년 『유원』으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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