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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Nov 19. 2023

강화길 소설 『풀업』

이 책의 제목 〈풀업〉은 쉬운 말로 철봉 ‘턱걸이’를 말한다. 양손으로 철봉을 잡고 몸을 끌어올리(풀업)는 운동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60을 넘어 70세를 바라보는 엄마(박영애)와 같이 사는 큰딸(지수)와 결혼해서 따로 사는 둘째 딸(미수)의 이야기다. 지수는 동생 미수보다 모든 면에서 뒤처졌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미수는 그네를 잘 타는데 지수는 무서워서 타지 못한다. 공부도, 취업도, 결혼도 동생보다 못하다.     


지수는 늦게 작은 회사에 취직해서 독립한다. 전세를 사는데 사기를 당해 전 재산 천만 원을 날린다. 엄마와 동생의 도움으로 빚을 갚고 엄마가 살고 있는 빌라로 들어와 산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어느 날 헬스장을 찾는다. 운동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고 참고 억눌리며 살던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엄마의 생일을 맞아 동생 미수가 지수에게 “엄마 생일날 잊지마”라는 문자를 받는다. 집안 행사는 언제나 동생이 주도적으로 지수는 끌려간다. 그렇다고 경비 부담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생일날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지수는 “나, 다시 독립한다”라는 선언을 하고, 이 일을 계기로 지수와 미수는 다툰다.     


“엄마가 너만 보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라고. 지수는 동생에게 도움받았던 돈 500만 원을 돌려주며 마지막으로 말한다. 며칠 후 새로 이사 간 동네에 있는 헬스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풀업’을 시도한다.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언니보다 똑똑한 동생, 형보다 나은 동생으로 인해 가족 간에 일어나는 불균형은 마찰이 생긴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결혼하면 또 상황이 바뀐다. 형수, 제수, 제부, 형부라는 객관적인 외부인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지수’는 운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재미있게 읽었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미수의 눈을 마주하며 지수는 말을 삼켰다. 어쩌면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 아니, 어쩌면 줄곧 해 왔을지도 모르는 말. 너는 툭하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캐시미어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외제 차를 타고 다니잖아. 너는 그 셔츠를 입잖아. 입을 수 있잖아. 나는 뭘 좀 배우면 안 되니? 변화를 원하면 안 되는 거야? 네가 원하는 나의 삶은 뭐야? 언제나 너보다 못난 언니로 살아가는 것. 나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비루하게 나이 먹어가는 것. 네가 계속 한심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런 기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거야?     


영애 씨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수의 말을 들으면서, 살아온 세월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헤어졌던가. 누군가를 지독하게 신뢰해본 적도 있었고, 걷잡을 수 없는 실망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녀 역시 누군가를 배신했다.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고 다시는 보지 않은 일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관계는 참 쉽게 변했다. 상황이 달라지면서, 그냥 연락이 드문드문해지면서, 찰나의 순간에 의견이 부딪치면서.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냥 싫증이 났을 뿐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너무 길고 지겨워서, 그렇게 자주 변덕을 부리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자식과 관계라고 해서 다를까. 내가 낳았다고 해서 내 것은 아니다.      


책 소개     

『풀업』 강화길 지음. 2023.08.25. ㈜현대문학. 127쪽. 14,000원.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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