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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pr 23. 2024

『나우: 시간의 물리학』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리처드 A. 뮬러 지음

이 책의 부제목은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이 많다. 과거에 시간에 미쳐 시간 관련 책을 섭렵한 적이 있다. 시간은 언제부터 생겼나? 인간은 왜 1년을 365일로 정했나? 1분은 왜 60초 일까? 초는 누가 정했나? 등 시간에 관한 의문점이 끊이지 않았던 적이 있다. 다시 ‘시간 병’이 도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실험 물리학의 대가로 많은 과학적 실험과 이론을 발표했다. 지은이의 관심과 내가 알고 싶어하는 ‘시간’이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책 서두에 “의미가 잘 잡히지 않는 ‘지금’이라는 개념은 줄곧 물리학 발전의 걸림돌이었다. 우리는 상대성이론에 따른 속도와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심지어 사건 순서의 역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시간의 가장 놀라운 성질인 그 흐름과 ‘지금’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서는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라고 실토한다.     


흔히 시간을 말할 때 과거, 현재(지금), 미래로 분류한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다가올 시간이다. 현재 즉, ‘지금’은 이 순간 현실이다. ‘현재’는 이 순간이 과거로 변하고 미래는 현재가 된다. 그러면 ‘현재’는 언제인가? 이 순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1초를 수억 만 분의 1로 쪼개어 수억 만분의 1이 지난 시간은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되는 순간 과거가 되는 것일까?     


‘지금’은 특정한 시각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시각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계를 이용한다. 시계는 현재 시각이라고 부르는 ‘지금’에 관한 숫자를 알려준다. 시계는 보통 초 단위로 지속적으로 숫자를 갱신한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우리는 공간상으로는 멈춰 서있을 수 있지만 시간상으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시간 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시간의 움직임에 대한 통제력은 없다.   

   

시간은 흘러가는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시간은 바뀌지 않는다. 움직이고 흘러가는 것, 그것이 ‘지금’이 의미하는 바다. ‘지금’은 진행하고, 바뀌고, 시간 축을 따라 전진한다. 시간은 ‘지금’을 거쳐 흘러간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차가 움직인다고 할 때는 위치의 변동이라고 말한다. 속도는 움직인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시속 몇 킬로미터 하는 식으로 ‘지금’을 설명하려면 완전히 꼬인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잠시 뒤에도 ‘지금’은 여전히 지금이 순간이다. 그것은 움직이는가? 물론이다. 시간의 움직임은 ‘지금’의 의미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는 사실로 나타낼 수있다. 시간의 변화율은 얼마일까? 초당 1초다.     

시간이 멈췄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그것을 알아챌 수 있을까? 어떻게? 가다 서다 하면서 불규칙하게 흐르거나, 아예 다른 속도로 흐른다면 그 차이를 감지할 수 있을까? 인간이 느끼는 ‘지금’의 움직임,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은 눈이나 귀, 손끝에서 뇌까지 신호가 전달되고 기록, 인지, 기억하는 데 몇 밀리초가 걸리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보통 수십 분의 1초이지만 광각기능이 인간의 수 천배인 파리에게는 수천 분의 1초다. 그래서 파리가 볼 때 인간이 파리를 잡으려는 손동작은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이나 마찬가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을 한탄했다. “시간은 대체 무엇인가? 만약 누가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설명하려고 한다면, 나는 모른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안다’ 그럼 왜 설명할 수 없는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허블 팽창에 의해 공간이 생성되고 있는 것처럼 시간 역시 생성되고 있다. 새로운 시간이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은 시간의 방향과 진행 속도를 결정한다. 매 순간 우주는 조금씩 커지고 시간은 좀 더 많아지며, 이처럼 확장되는 시간의 앞 모서리를 우리는 ‘지금’이라 부른다. 매 순간 새로운 시간이 나타난다. 새로운 시간이 바로 ‘지금’ 생성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우주의 엔트로피에 의해서가 아니라 빅뱅 그 차제에 의해서 설정된다. 미래는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계속 생성되고 있다. ‘지금’은 경계선이자 충돌의 전방이며, 무로부터 생성되는 새로운 시간이자 시간의 앞 모서리다.     


우리는 왜 스스로가 현재 속에 존재한다고 느끼는가? 실제로 나는 과거 속에도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아주 잘 안다. 내가 막 태어난 순간까지 시간을 되돌려도 나는 존재한다. 내가 현재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크게 보자면 과거와 달리 현재가 나의 자유의지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미래를 완전히 결정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미 그렇게 된 것은 그렇게 된 것이다. 아직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물리학 법칙들은 미래 예측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파운드-레브카 낙하 감마선 실험에서 시계 비율의 작은 차이가 탐지되었다. 이 실험에서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이 최초로 관측되었다. 높은 고도의 시계는 땅 위에 있는 시계보다 더 빨리 가고, 속도 효과 때문에 더 느려지는 것이 관측되었다. 시간에 대한 중력의 효과는 백색왜성 표면의 스펙트럼선을 측정할 때도 관측된다. 스펙트럼선은 시간 지연에 의한 진동수 이동을 보여주는데, 이는 강한 중력장이 백색왜성 표면의 시간을 느리게 하기 때문이다.      


거리에 대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개념은 우리의 시간 속도에 의존한다. 우리는 ‘1미터의 길이’가 빛이 진공 속에서 299,792,458분의 1초 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는 만큼 과거에도 살고 있었지만, 우리는 과거를 바꾸지는 못한다. ‘지금’은 시간의 ‘흐름’으로 우리는 새로운 순간들이 계속적으로 추가됨을 의미한다. 이 순간들이 우리에게 시간이 앞으로 움직인다고 새로운 ‘지금’들이 연속적으로 생성된다고 지각하게 해준다. ‘지금’은 우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며, 우리가 스스로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을 틀어서 국소적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도록 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국소적 감소는 확장된 생명과 문명의 원천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엔트로피를 방향 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자유의지를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는 항상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보고 있다. 1 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50억 분의 1초 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빛이 1미터를 움직이는 데 대략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달을 바라볼 때 달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1.3초 전의 모습을 본다. 태양을 바라 볼때 8.3초 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만약 태양이 7분 전에 폭발했다면 이를 모를 것이며 이에 대한 어떤 단서도 갖지 못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측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오래된 신호는 우주마이크로파라는 원시 신호다. 우리는 이 신호가 140억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시간을 되돌아본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140억 년 전의 우주에 해당하는 먼 우주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그 시기의 우주와 매우 비슷했다는 가정을 해야만 한다.     


만약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여행자가 가지고 있는 ‘지금’이라는 개념이 현재로부터 과거로 가야 한다. 타임머신 논문은 이 경로상의 운동이 여행자의 ‘지금’이라는 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하고 있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살해한다는 ‘할아버지 역설’이 있다. 할아버지가 없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과거에서 할아버지를 살해할 수 있는가? 시간을 거슬러 이동한다고 해도 할아버지를 살해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할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로 여행은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양자물리학이 ‘얽힘’ 이론을 말하고 있다. ‘얽힘’ 현상은 현재 고전물리학으로 성립할 수 없는 현상, 양자의 진동이 수백 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양자물리학에서 시간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부록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시간 지연, 길이 수축, 동시성, 속도와 광속, 뒤집히는 시간, 로렌츠 변환 방정식-창고 안의 장대 역설의 수학, 메리의 시간 지연-쌍둥이 역설의 수학, 타키온 살인의 수학, 중력 시간 효과의 수학, 루트 2가 무리수라는 것의 증명 등 수학 이론을 게재하고 있다. 수학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소개     

『나우: 시간의 물리학』 리처드 A. 뮬러 지음. 강형구, 장종훈 옮김. 2019.06.14. (주)바다출판사. 466쪽. 25,000원.

     

리처드 뮬러 Richard A. Muller.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UC 버클리 물리학과 교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수석과학자.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을 거쳐 UC 버클리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1978년부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혁신적인 연구 공로로 앨런 워터만 상, 맥아더 펠로우십 등을 수상했다. 저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 등.     


강형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서울대학교 이학석사.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근무.


장종훈. 카이스트 물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레이저 광학 전공, 삼성전자 근무, 네덜란드로 이주 ASML에서 반도체 노광장비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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