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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pr 26. 2024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애런슨 지음

〈나이듦을 재정의하고 의료 서비스를 혁신하여 우리 삶을 재구상하다.〉

이 책의 부제목은 〈나이듦을 재정의하고 의료 서비스를 혁신하여 우리 삶을 재구상하다.〉 이다.   

  

저자는 미국 노인의학전문의 이다. 미국 아놀드 P. 골드 재단이 수여하는 인본주의 교수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저자는 “인생은 젊어서 죽거나 나이가 드는 것, 두 가지 가능성만 제공한다.”라고 말한다. 책 내용은 임상과 진료,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 다이애나 애실이 아흔 나이에 자신의 젊은 노인 시절을 추억하며 “60대 때는 내가 아직 중년기에서 그리 멀리 밀려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중년이라는 육지에 더 이상 상륙은 못 해도 여전히 연안을 맴도는 중이라는 느낌이랄까. 70대가 되니 진짜 늙었다는 게 피부로 다가왔다. 이 사실에 압도되자 번뜩 든 깨달음은 이제는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할 때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놓고 떠들진 않지만, 노년층 대부분은 70년을 살든 80년을 살든 몸뚱이만 변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늙어 가는 껍데기에만 주목하는 이 세태이다.     


인간 수명이 125세로 늘어나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본인의 유년기뿐만 아니라 2세를 낳아 또 그만큼 키우는 기간까지 더해야 고작 일생의 첫 3분의 1이 된다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과거 평균 연령의 세 배를 살게 되어 지구가 인간으로 그 어느 시대 보다 북적거린다면? 일자리, 식량, 집, 전쟁, 크고 작은 경쟁들, 인간의 탐욕을 생각해 보라. 지금도 이미 부족하거나 넘쳐나 탈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심각해질 것인가. 어느 동물 종이 큰 병치례 없이 홀로 번성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중대한 주제다.      


세상에 아이를 돌볼 줄 아는 식구가 한 명도 없는 가정은 드물다. 반면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길을 어떻게 배웅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이러지 않았다. 원래 인류에게는 제 집에서 숨을 거두는 게 당연한 운명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노화와 죽음이 몹쓸 병처럼 취급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면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죽음을 병원에서 맞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1974년 미국에서 최초로 문을 연 호스피스 전문 기관의 수는 2013년에 5,800개로 늘어났다. 요즘에는 세 명 중 한 명꼴로 자택에서 최후를 준비한다고 한다. 현재 호스피스에 등록된 미국인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죽음을 앞두고 어떤 것들을 대비해야 하는지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장례업 전문가의 말만 전적으로 믿고 따르게 된다.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험과 편안한 환경,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빛나는 것임을,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신체 장기가 필요 이상을 뛰어난 성능을 장착한 상태로 태어난다. 생물학에서는 이것을 ‘잉여’라고 한다. 잉여는 모든 신체 장기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눈, 귀, 폐, 콩팥, 난소 그리고 고환은 모두 잉여 장기다. 하나만으로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짝이 없는 장기들은 또 나름의 방식으로 잉여성을 갖는다. 설정된 최대 출력은 훨씬 높지만, 거기까지 달릴 일은 거의 없고 평상시에 적당한 수준만 맞추는 식이다. 이 ‘평상시의 적당한 수준’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노화란 스스로를 제어해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이 감퇴하는 것, 다시 말해 항상성을 잃는 것이다. 잉여성은 우리를 방만하게 만든다. 넘어져 뼈가 부러졌는데 어릴 때 였다면 며칠 만에 다 붙었을 것을 몇 주를 고생해 봐야만 뼈가 많이 약해졌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심장도 나이 먹을수록 두꺼워지고 뻣뻣해진 탓에 펌프 성능이 예전만 못하지만 앉아 있거나 평지를 느긋하게 걸을 때는 전혀 모른다. 계단을 올라야 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해서 심장이 좀 더 부지런히 일해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제야 비로소 얼마나 나빠졌는지 실감한다.     


젊음과 늙음을 구분 짓는 나이는 몇 살일까. 다양한 보기가 있을 수 있다. 모두 정답인 동시에 어느 하나 절대적인 답은 되지 못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이 더 이상 마냥 젊지 않음을 자각하는 때가 온다. 그렇게 복잡하게 뒤얽힌 심정으로 충분한 세월을 더 살고 나서야 비로소 누가 봐도 확실한 노인이 된다. 이 충분한 세월의 개념은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따라 또 달라진다.     


초고령자가 노인인 것은 누구나 한눈에 딱 알아본다. 그런데 중년과 젊은 노인 사이는 좀 헷갈린다. 어떨 땐 전혀 구분이 안 가는 경우도 있다. 인종적 성향 혹은 타고난 체질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개개인의 생활 습관 등에 따라서도 겉보기 나이의 오차 범위가 종잡을 수 없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노년기는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게다가 노년기 건강의 질 역시 높아지고 있다. 아직 중장년인 현대인이 노년기에 들어가면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 하던 활동을 그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새로운 취미를 추가로 갖게 될 수도 있다. 전통, 과거, 종교 안에서 자아가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생의 시작은 성스러운 태곳적과 더 가깝고 생의 끝자락은 권위와 지혜가 신과 선조들의 경지에 이른 연장자일수록 온 사회구성원의 신망을 받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노인이 왕년에 어땠는지 같은 이미 지난 얘기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죽음은 신과 조우할 기회는커녕 모든 것의 종말 혹은 영원한 심연으로만 비친다.      


엄밀히 노화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청년기가 되면 사회 경력을 쌓느라 바빠서 내가 늙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생의 첫 단계를 시작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비슷하다. 성장 단계별로 인간을 정의하는 특징적 변화들이 20대부터 정체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변화는 숨이 붙어 있는 한 평생 계속된다. 신체 구조, 기능, 내면 싦리 등 모든 면에서 일어난다.


중년의 울타리를 넘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노화가 머지않은 현실을 깨닫는다. 노년기에는 자아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자신감이 한껏 높아지고 열심히 살아온 과거와 그렇게 이룬현재에 어느 때보다 큰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몸뚱이 여기저기가 하나 둘씩 녹슬고 고장 날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삶 자체가 고되고 궁핍해진다. 한 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사람이 늙으면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온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힘겹게 만드는 여러가지 요인 중 일부일 뿐이다. 노인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우리는 자연의 시계와 사회의 가르침 양쪽에 모두 동시에 순응하며 나이를 먹어 간다.      


책 소개.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애런슨 지음. 최가영 옮김. 2020.02.05. (주)로크미디어. 843쪽. 28,000원.

   

루이즈 애런슨 Louise Aronson. 노인의학전문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의과대학 교수.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워런 윌슨 칼리지에서 문예창작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의료차트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환자들의 이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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