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조 May 19. 2022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중동 출신 라비 칸은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커스틴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가 죽고 새엄마와 살았던 라비는 건축가다.

커스틴은 어렸을 때 아빠가 아무런 말 없이 집을 떠나 교사인 엄마와 편모슬하에서 성장한 시청 공무원이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아파트를 구매하고 평범한 삶을 살며 첫 딸 에스터를 낳고, 둘째 아들 윌리엄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 날 라비는 독일 베를린에서 콘퍼런스에 발표하기 위해 참석했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며 UCLA에서 ‘이민이 샌버너디노 밸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서른한 살의 로런과 원나잇 외도를 한다.     


그 후 가정은 부부간 사소한 일로 마찰이 시작되고 결혼 16년 차가 되던 어느 날 심리치료사 페어베언 여사를 찾아간다.

치료를 받으며 서로 알아 가던 어느 날 라비는 퇴근길에 꽃을 아내에게 선물하면서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커스틴의 생일에 맞춰 라비는 일랜드에 있는 대단히 호화스럽고 비싼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평상 속으로 돌아간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중년의 유혹자가 보이는 솔직함이란 자신감이나 오만함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처량한 인식에서 나오는 일종의 조급한 절망감이다. 이 일은 아내를 존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아내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성숙해지면 소유욕을 초월하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질투는 아기들에게나 어울린다.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현명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온 교훈이다.


잭이 네 소방차를 갖고 놀게 해 주렴. 그 아이가 한 번 갖고 논다고 해서 남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화가 난다고 바닥을 뒹굴면서 네 작은 주먹으로 카펫을 내리치지 마라, 네 여동생이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이듯 너도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사랑은 케이크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줄어들진 않는다. 사랑은 집안에 아기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계속 커진다.     


진실을 말하면 그로 인해 훨씬 더 큰 거짓, 즉 그가 더 이상 커스틴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그가 더 이상 삶의 어떤 영역에서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 발아할 수 있어, 진실이 거짓보다 그들의 관계를 훨씬 더 왜곡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스스로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내용이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겸양과 실망을 다룰 줄 아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 묘책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덜 물리고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오래 함께한 사람을 새롭게 보기 위함이다.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역자의 말

  그와 커스틴은 결혼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예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수단이다. 예술은 복잡성을 편집하여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측면들에 빠른 시간에 점을 맞출 수 있게 해 준다.     


영원한 사랑처럼 완전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순간은 있어도 완전한 인생은 없다. 서로 영혼의 짝이라 믿고 혼인 서약을 한 라비와 커스틴, 하지만 유년의 상처 때문에 한 사람은 불안 애착으로 치닫고 한 사람은 회피 애착으로 도피한다.      


어쩌면 이 책은 나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느낀다. 사람이 눈에 콩깍지가 씌워서 서로의 과거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과거의 상처가 장점으로 돋보일 때 용감한(?) 열정이 발동된다고 생각한다.


낭만적인 생각과 느낌이 전부일 때와 일상적인 생활의 연속이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 혼란을 느끼고, 화장실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벽 쪽으로 넣느냐, 바깥쪽으로 넣느냐를 놓고 의견의 충돌이 생기고 상대를 할퀴고 생채기를 후벼대고 파탄을 생각하고 지겨워하고, 일탈을 생각하는 것이 결혼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타협하고 또 상처를 주고 또 타협하면서 주위에 서로 등 돌린 커플을 부러워하면서 처음 콩깍지 때 서약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영웅적 행위를 훈장처럼 걸고 다닌다. 이렇게 결혼을 지켜가는 나도 영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잔과 세이버가 최초로 고안한 이 설문조사(1987)는 애착 유형을 평가하는 데에 널리 이용된다.      

1. 나는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상대방이 종종 뚜렷한 이유도 없이 실망스럽거나 이기적으로 나온다. 나는 스스로 타인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용인하면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나는 혼자 지내도 괜찮다.(회피 애착)      

2. 나는 정서적으로 친밀해지기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바라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소중히 여길까 하고 걱정한다. 그 때문에 아주 속이 상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불안정 애착)      

3. 나는 비교적 쉽게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진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데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안정 애착)     


조애나 페어베언 박사, [부부 관계에서의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 ;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     


  불안정 애착의 징후는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즉시 모욕이나 악의적인 공격과 같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 경솔한 말, 부주의를 파탄의 전조라도 되는 양 불길하고 강력한 위협으로 느낀다. 좀 더 객관적인 설명은 와닿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그들이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은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약함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심술궂다거나 성마르다거나 잔인하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회피 애착 유형은 정서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회피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쉽게 가정한다. 자리를 피해 도개교를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유감스럽게도 회피적인 사람은 두려움에 찬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파트너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이 소원하고 무덤덤한 행동들 에 숨어 있는 이유는 안갯속에 싸인 채 진실과는 정반대로 무정하고 무심하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킨다. 회피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뿐,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깊이 염려한다.    

 


결혼할 준비가 되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 ~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 ~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 ~ 커스틴이 까다로운 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 ~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 ~ 항상 섹스는 사랑과 불편하게 동거하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 ~ 이제 행복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 ~ 대부분의 러브스토리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고, 영화와 소설에 묘사된 사랑이 그가 삶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랑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소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 알랭 드 보통, 김한영 옮김, 2016. 8. 24. (주)은행나무, 13,500원.


알랭 드 보통 ;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철학 석사를 받았다. 하버드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물셋에 발표한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 낭만적... 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논의를 펼친다.    

  

김한영-서울대 미학과를 졸,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전문번역가로 활약 중, 제45회 한국백상출한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토 신이치 저, '나이 든 나와 살아가는 법'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