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조 Aug 06. 2024

『아노말리』

프랑스 소설가 텔리에의 장편소설

이 책은 프랑스 소설가 텔리에의 장편소설이다. ‘아노말리 anomaly는 이상異常, 변칙’이라는 뜻으로 주로 기상학이나 데이터 과학에서 ‘이상 현상’, ‘차이 값’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책 속표지에 “그대가 꿈을 꾼다고 말하는 나 또한 꿈속에 있네.”라는 장자의 말을 소개한다.     


소설은 3부로 되어있다. 1부 하늘처럼 검은(2021년 3월~6월), 2부 삶은 한낱 꿈이라고들 하네(2021년 6월 24일~6월 26일), 3부 무의 노래(2021년 6월 26일 이후) 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 고전 『옹고집전』이 떠올랐다. 작가가 혹시 ‘옹고집전’을 읽고 이 작품을 구상했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옹고집전은 조선시대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인색하고, 악행을 일삼는 것을 도승이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어느 날 자기 집에 자기와 꼭 같은 가짜 옹고집이 나타나서 진짜라고 주장한다. 아내도, 자식도 구분이 못 한다. 고을 원님에게 갔지만 가짜가 진짜라는 판단을 받고 진짜 옹고집은 쫓겨난다. 진짜 옹고집은 온갖 고생을 하고 후회한다. 착하게 살기로 다짐하여 도승의 도움으로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에어 프랑스 006 보잉 787기는 2021년 3월 10일 17시 17분 미국 JFK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똑같은 항공기가 같은 승무원, 같은 승객이 타고 석 달 뒤 6월 24일 19시 3분에 JFK 공항 관제탑과 착륙 교신을 한다. 3월에 도착한 항공기 복제판이 나타난 것이다. 초유의 사태에 미국 정부는 즉각 프로토콜 42를 발동한다. 비행기는 뉴저지 트렌턴 맥과이어 공군 기지로 유도 착륙 된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예상하여 대응 지침을 만들었다. 프로토콜 42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상황을 가상해서 만든 대응 지침이다.     


이 책에서 에어 프랑스 006호는 3월에 도착하였는데 꼭 같은 비행기, 조종사, 승무원, 승객 243명이 6월에 다시 착륙을 시도하고 지구에 하나만 있어야 할 비행기와, 243명의 사람이 또 하나 존재한다는 가설이 우리나라 ‘옹고집전’과 비슷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법칙과 종교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이지만 해법은 없다. 미국 정부는 복제된 사람들을 원래 사람과 만나게 한다. 작가는 특징인물 13명을 등장시킨다. 프로 살인자, 건축가, 영화편집자, 미군과 그 가족, 작가, 가수, 항공기 조종사, 변호사 등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일상과 발생 후에 모습을 실감 나게 그린다.      


조종사 데이비드(3월에 도착한.)는 5월 29일 의사인 형으로부터 췌장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는다. 입원하여 치료 받는 6월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가 있는데, 다른 데이비드(6월 도착.)가 나타난다. 그러나 6월에 도착한 데이비드도 췌장암 말기다. 아내와 가족은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가 두 번 죽는 모습을 봐야한다.     

작가 미첼은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3월에 자살한다. 그런데 6월의 미첼이 나타난다. 3월의 미첼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냥 미첼로 살아간다. 갑자기 내가 두 명이 된다면, 나부터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두 명이 된 ‘나’ 중 누구를 상대해야 할까? 책 중에 아들을 혼자 키우는 미혼모의 이야기가 있다. 아들은 두 명이 된 엄마 중 누구를 선택할까? 게임 ‘던전 앤드 드래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주사위를 던져서 일주일마다 엄마를 선택하면 공평하다. 두 엄마도 동의한다. 결국 ‘나’가 두 명이 되었을 때 종교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종교도 결론을 내지 못한다.      


책 중에서     

시간이라는 연속선 어딘가에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존재할 것이다. 형국이 끝내 뒤집히는 시점이 있고, 그 시점을 지나면 무슨 짓을 해도 고무나무를 살릴 수 없다. 목요일 오후 5시 35분에 물을 주면 고무나무는 살겠지만, 목요일 오후 5시 36분에는 누가 물병을 들고 나타나 봤자 소용없다. 고맙지만 이제 틀렸어, 친구, 삼십 초가 지나서 안 될 것 같아. 어쩌면 그래, 생체를 다시 가동할 유일한 세포, 이웃들을 깨울 마지막 용감한 진핵생물이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지. 얘들아, 힘내, 우리 다시 기운을 내 보자, 반응을 해 보자, 물을 흠뻑 머금어 보자, 이렇게 지면 안 돼. 그런데 이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미 떠나 버렸군. 당신이 그 처연한 물병을 너무 늦게 가지고 왔어. 그러니 이만 안녕. 그렇다, 시간의 연속선 어디쯤 그 시점이 존재하겠지.   

  

신경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신체 접촉은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물리학의 ‘현실적’ 법칙을 적용할 때 우주 광선의 100% 시뮬레이션은 불가능하다. 우주 광선에서의 이상(異常, anomaly)은 현실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이 문제는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풀리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가장 단순한 설명이 답일 확률이 높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마음 불편한 설명. 이 비행기의 출현이 시뮬레이션의 작동 오류일 리는 없다. 앞으로 약간 돌려 ‘삭제’하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할 리가. 그렇다, 이건 테스트가 틀림없다. 수십억일 가상 존재들이 자기가 가상임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의 시간이 착각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한 세기도 거대한 컴퓨터 프로세서에게는 찰나에 불과할까? 그러면 죽음은 뭐죠? 그냥 한 줄 코드상의 ‘앤드end’?     


시뮬레이션된 것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살고, 느끼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창조하고, 죽는다. 저마다 미미한 흔적을 시뮬레이션에 남기면서. 앎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과학보다는 미스터리를 귀히 여겨야 한다. 무지는 좋은 길동무지만 진리는 결코 행복을 낳지 않는다. 시뮬레이션된 행복한 자로 사는 편이 좋다.    

 

수수께끼 하나, “가난한 사람은 있고, 부자는 필요하고, 먹으면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안”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안’ 있고, 부자는 ‘아무것도 안’ 필요하고, ‘아무것도 안’ 먹으면 죽어요.     


수수께끼 둘, “우리는 같은 엄마한테서 한날한시에 태어났다. 그런데 우리는 쌍둥이가 아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세쌍둥이”     


헛되고 헛되다. 코헬렛(다윗의 아들, 전도자)이 말한다. 

하벨 하발림, 

하벨, 코헬렛이 가로되,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은 어디로 흐르든 

다시 그곳을 흐른다.

이미 있던 것이 장차 있을 것이요. 

이미 이루어졌던 일이 장차 이루어지리니

해 아래 새것은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의 불을 훔쳤고, 제우스는 그와 불경한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제우스는 선물이라면서 이 여인의 짐꾸러미 속에 수수께끼의 상자를 하나 넣어 주고,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는 결국 상자를 열어 본다. 상자 안에 갇혀 있던 인간의 모든 불행이 풀려났다. 노년, 질병, 전쟁, 기근, 광기, 가난…. 그런데 한 가지 불행만은 꾸물거리느라 밖을 나오지 못했다. 그 불행의 이름은 ‘엘피스(Elpis)’ 즉 희망이다. 온갖 나쁜 것 중에 가장 나쁜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희망, 인간의 불행을 오래 끄는 것도 희망이다. 상황이 명백한데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한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침대 머리맡에 권총을 숨겨 두면 차츰 공간 전체를 차지하고 강박 관념이 되어 버린다. 권총이 계속 자기를 써주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총을 산 사람은 결국 살인자 아니면 자살자가 되고 만다.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는 여자는 세계를 해체해야 한다.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이다. 영화로 나오면 봐야겠다.     


책 소개

『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2022.05.26. (주)민음사. 479쪽. 

    

에르베 르 텔리에 Herve Le Tellier. 

1957년 파리에 태어났다. 소설, 희곡, 시를 쓰는 작가. 수학자, 기자, 언어학 박사. 1960년대 프랑스에서 문인과 수학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학적 실험 집단 울리포 회장. 『아노말리』는 2020 공쿠르상 수상, 프랑스에서 110만 부 이상 베스트 셀러. 전 세계 45개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저서. 『사랑에 대해 실컷 말한』 등.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가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