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는 한국계 미국인, 1.5 세대 재미교포이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기업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간염에 걸려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 소설 후기에서 작가는 1996년 초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거의 30년에 걸쳐서 썼다고 회고한다. 소설은 약 80년에 걸친 긴 세월(1910년부터 1989년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일가족이 경계인으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좇는다.
나에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여건에서 산 친족이 있다. 고모부와 고종사촌 형이다. 고모부는 해방 전에 일본으로 가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파친코를 경영했다는 말을 들었다. 야쿠자라는 말도 들었다. 고종사촌 형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 소설이 더욱 실감 났던 이유다. 지금 후회스러운 것은 고종사촌 형이 해마다 고향을 방문했을 때 우리에게 특별히 친근감을 보였던 것도 일본에서 겪는 외로움, 애환 때문이었던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다.
소설은 “역사는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1910년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한다. 훈이는 윗입술이 갈라지는 유전병, 속칭 언청이로 태어난 데다가 한쪽 발이 뒤틀린 기형아로 태어났지만, 체격이 좋고 어부인 아버지를 닮아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 시절은 모두가 못살았다. 아이는 많고 먹을 것은 없었다. 특히 여자애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훈이는 더 작은 섬에 사는 홀아비의 넷째 딸 양진과 중매로 결혼한다. 그리고 딸 선자를 낳는다. 선자가 10살 때 결핵으로 죽는다. 양진과 선자는 하숙집을 하며 살아간다.
선자가 열다섯 살 되던 해 시장에서 알게 된 제주도 출신 고한수를 만난다. 고한수는 선자가 일본인 고등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구해준다. 고한수의 나이는 선자 엄마 양진과 비슷한 나이다. 이미 일본에 결혼한 아내와 딸도 있다. 선자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사귄다. 그리고 임신한다. 고한수는 자기에게 아내와 딸이 있지만 선자와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한다. 선자는 자기는 첩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한수를 떠난다.
일본 오사카에 사는 백요셉은 동생 이삭에게 평양을 떠나 일본으로 오라고 한다. 평양보다 따뜻한 오사카에서 건강을 돌보고 목사직을 할 교회도 알아놨다며 재촉한다. 일본으로 가기 위해 부산에 온 백이삭 목사는 선자의 하숙집에 체류한다. 선자의 임신 사실을 알고 선자를 구하기 위해 결혼한다. 그리고 둘은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에서 백이삭과 선자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형 요셉의 집에 같이 살면서 선자는 아들을 낳는다. 이름을 노아라고 짓는다. 그리고 노아의 동생 모자수도 낳는다. 이삭이 목사로 있는 교회 사람이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고 구금된다. 2년 후 풀려났지만 얼마 못 살고 죽는다. 선자는 어린 노아와 모자수를 데리고 일본에서 살아간다. 노아의 친아버지 고한수는 일본에서 파친코와 야쿠자로 살고 있다. 선자와 가족들이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농촌으로 피신시킨다. 요셉은 나가사키에 일자리를 구해 갔다가 원자폭탄이 투하될 때 화상을 입고 고한수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만난다. 고한수는 선자의 엄마 양진도 일본에 데려다준다. 양진과 요셉, 요셉의 처 경희, 선자, 아들 노아, 모지수의 삶은 일본에서 이어진다.
노아는 공부를 잘한다. 가정을 돕기 위해 직장에 들어가서 일하며 공부하고 명문 와세다대학에 합격한다. 그러나 학자금이 없다. 한수는 노아의 학자금과 동경에 하숙집과 용돈을 보내주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모지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파친코 사업을 하는 조선인 고로를 만난다. 파친코에 취업하고 성실하게 일한다. 사장 고로는 모지수를 후계자로 키운다. 노아가 대학 3학년 평소와 같이 고한수를 만나는 데 여자친구가 끼어들면서 인생이 어긋난다. 여자친구는 고한수가 노아와 닮았다며 친아버지 같다고 말한다. 노아는 선자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잠적한다. 백이삭 목사의 아들이 아니고 친아버지가 야쿠자라는 충격 때문이다.
모자수는 파친코 사업을 충실하게 해서 사장으로 승진하고 거래처 양복점 아가씨 유미와 결혼한다. 노아는 일본 외딴곳에서 일본인으로 살아간다. 그곳 파친코에 취업하고 경리 아가씨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고 살아간다. 노아를 찾던 선자는 한수로부터 노아가 있는 곳을 알았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노아를 찾아간다. 한수의 만류에도 선자는 노아를 만난다. 노아는 선자를 돌려보내고 사무실에서 자결한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을 낳는다. 솔로몬이 세 살 때 유치원에서 유미와 나오다 음주운전 차에 치어 유미는 사망한다. 모자수는 솔로몬을 혼자 키우며 재혼하지 않는다. 일본인 여자와 사귀지만, 결혼은 불가능한 일이다. 선자는 엄마 없는 솔로몬을 돌본다. 솔로몬은 성장하여 미국 콜롬비아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영국계 은행에 입사한다. 그러나 상사의 농간에 휘말리고 파면당한다. 모자수는 솔로몬이 버젓한 외국계 은행원으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솔로몬은 모자수에게 파친코를 하겠다고 한다. 결국 모자수는 솔로몬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양진은 나이가 들어 병으로 죽는다. 선자도 나이가 많다. 남편 이삭의 묘지를 찾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태어나고 자란 일본은 재일 한국인을 외국인으로 등록한다. 여권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한국 여권을 갖고 외국에 나간다. 한국에서 재일동포는 일본 사람으로 대한다. 이들은 어디에서 설 수 없는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소설의 시작에서 “역사는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말처럼 살아간다.
책 중에서
아이들은 모두 축복입니다. 성경에 나오다시피 남자와 여자는 자녀를 갖기 위해 꾸준히 기도해야 했지요. 불임은 곧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는다면, 저는 그저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가여운 남자일 뿐입니다.
상실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들은 그저 어리석고 입에 발린 말들이었다. 실제로 가족을 잃고서야 겨우 상실이 주는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자식은 모두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하나님과 신학에 관해 그가 배운 모든 것들은 훨씬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그의 믿음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마치 따뜻했던 방이 차갑게 식었어도 여전히 같은 방인 것은 틀림없는 것처럼 말이다.
“니집은 인자 니남편 곁이데이.” 이것은 그녀가 훈이와 결혼했을 때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이었다. “다시는 집에 오면 안된데이.” 아버지가 양진에게 했던 말이었다. “얼라하고 남편을 위해 아늑한 가정을 꾸며야 한데이 그기 니 할 일인기다. 남편하고 자식이 고통받게 해서는 안 된 데이.”
애국주의는 신념일 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신념에 빠지면 자신의 이익을 앚어버릴 수 있어. 책임자들은 신념에 지나치게 빠져든 사람들을 지나치게 착취할 거고. 넌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너 같은 사람이나 나같은 사람은 백 명이 모여도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이제는 소련과 중국, 미국이 엉망진창인 작은 우리나라를 놓고 싸우고 있어. 네가 그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선은 잊어버려.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그 유부녀를 원한다고. 좋아. 그럼 그 여자의 남편을 제거해 버리거나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그게 바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었지만,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용서 없이 사는 삶이란 숨을 쉬고 살아도 죽은 것고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남자들에게 느꼈던 사랑보다 훨씬 더 컸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자신의 생명이자 죽음이었다. 노아가 떠난 후, 선자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떤 엄마라도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선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전 오늘 태어났어요. 자기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순간에 누가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웃기지 않아요? 그냥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죠.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모른다. 나도 오랜 세월 아내와 살았지만, 아내의 마음을 모르겠다. 아니 내 생각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다 그런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면서, 나는 너를 위해 내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극찬받았다. 재미있다.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을 만든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책 소개
『파친코 1,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2018.03.09. (주)문학사상. 366, 399쪽. 각 권 14,500원.
이미진. 한국계 미국인. 1.5 세대로서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명성이 자자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민했다. 예일대 역사학과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기업변호사로 일했다. 2004년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백만장자들을 위한 공짜 음식』은 미국 픽션 부문 ‘비치상’, 신인작가를 위한 ‘래러티브상’ 등을 받았다. 저서. 『행복의 축』
이미정.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전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