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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Oct 18. 2024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지음

『수레바퀴 이후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이 책의 온전한 제목은 『수레바퀴 이후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이다.

책 제목만 보면 미래 과학에 관한 책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으로 제3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지리문학상’은 사계절출판사에서 2020년에 시작한 문학상 공모이다. 미등단 신인 및 단행본 출간 5년 이내의 기성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2010년 『합체』로 사계절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2016년 31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 박지리 작가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대상 1편에 창작지원금 500만 원과 후원금 200만 원을 준다.     


소설은 어느 날 인간의 정수리에서 50센티가량 떠올라 있는 원판이 생겼다. 라는 가상으로 시작한다.     

 

원판은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나뉜다. 두 영역의 비율은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강도와 같은 중범죄는 초범의 경우 평균적으로 5에서 15퍼센트 사이의 변동을 보이고 살인은 그보다 더 크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천국행이 예정된 것도 아니다. 수레바퀴가 요구하는 것은 타인을 용서하고, 자신에 잘못을 직시하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려 하는 태도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다.     

수레바퀴의 출현은 진짜 바퀴의 발명만큼이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에 갈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자기계발서를 읽고, 유망한 주식 종목 대신 도덕의 토대에 대한 이론들을 공부한다. 그런데 천국에 줄 선 사람들이 딱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나’를 내세워 수레바퀴의 출현에 따른 사람들이 생각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돈은 크게 두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다. 하나는 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바로잡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판이 규칙과 보정치를 역산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이다. 사회학과 철학 분야는 유례없는 활황에 접어들었다. 데이터공학 및 통계학과 접목된 새로운 시도들이 매 순간 나타나고 있다.     


수레바퀴의 출현으로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사람이 생겼다. 수레바퀴 추적 관리 애플리케이션은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에서 관련 분야 1위를 기록했다. 애플리케이션은 기록, 빅데이터 분석,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 타 서비스와 연계를 제공한다. 비영리 오픈소스도 등장했다.     


인간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전에 읽었던 일본소설이 생각났다. 사람 머리 위에 수명이, 생명이 남은 날 숫자로 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우연히 얻게 된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다. 사람을 보고 언제 죽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이야기도 비슷한 것 같다.     

‘완벽한 창조는 없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방과 창작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이 책의 작가는 소설 전반에 걸쳐 많은 사회 현상과 과학적 지식을 보여준다.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읽었다고 추정되는 내용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사는 삶을 상상한다. 현생 인류는 죽는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평상시에 잊고 산다. 이 소설처럼 확실하게 죽는다.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보장된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를 자기 자신이 알 수 있다. 라면 어떻게 살까? 소설에서 인터뷰를 가상으로 여러 인간상을 구현한다. 청소년, 전문가, 자선 사업자, 교수, 자원봉사자, 악당 등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을 보여준다.     


전기차가 경유 승용차의 친환경적 대안으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에 관해 전기차는 실제로 더 작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하지만, 생산과정마저 정의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전기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LCO(리튬, 코발트, 옥사이드) 혹은 NCM(니켈, 코발트, 망간)을 사용한다. 리튬은 대량으로 퍼 올린 지하수에서 해당 광물을 추출하여 생산한다. 이런 채굴 방식은 환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주변 농경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리튬의 주요 산지는 칠레와 페루 같은 남미 국가들이다. 선진국의 땅은 환경오염과 정화에 대한 비용은 너무 비싸다. 반면, 남미의 개발 업자들은 약탈적 채굴을 할 수 있다. 결국 전기차는 희토류 채굴로 인한 환경오염을 제3세계에 떠넘기는 동안만 온전히 친환경적인 셈이다.     


지금 당장 덜 만들고 덜 써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 선진국 시민으로서 누리는 모든 과잉을 없애거나 멀리해야 한다. 모든 과잉은 일회용 컵 이상이다. 생수 자가용, 여행, 오락용 영상물과 sns 게시글로 가득한 데이터 센터, 5억 대의 아폴로 11호를 달까지 보낼 수 있는 컴퓨터, 전기가 통하는 모든 물관과 공간에 LED 조명을 붙이려는 경향, 물류 배송 체계, 다양한 옷과 음식.     


절제력은 명백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계와 재계가 서로 다른 두 침이 되어서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작업이 그 위에 있다. 자발적 기업 책임제, 협의체 구성, 지침 제정, 법안 발의, 행정명령, 국가종합계획 수립, 시위대의 의견을 경청할지라도 결국에는 닫힌 문 너머에서 도장이 찍히는 과업들. 총선마다 누군가는 국회의사당에서 쫓겨나고 누군가는 배지를 받지만, 선거구 자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에도 변함이 없다. 인간이 교체될 뿐이다.     


공평한 분배의 문제는 경제의 문제이며 윤리학의 주된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독교 전통은 깊은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경제, 즉 이코노미Economy라는 단어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에서 유래했다. 이는 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와 관리를 의미하는 노모스의 합성어로 국가와 가정의 재무를 관리하고 필요한 것이 온전히 분배되게끔 하는 책임이자 수행을 의미하며,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사회학자인 자끄 엘륄은 돈에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분석한다. 하나는 거래의 수단인 돈이고, 다른 하나는 권세로서의 돈, 즉 자율성을 지닌 의지로서의 돈이다. 예수가 ‘불의한 재물’이라고 일컬은 돈은 후자다. 돈의 권세는 욕망을 부추기고,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며, 모든 것에 즉시 값을 매긴다. 쉼 없이 매매가 이루어진다.     


돈에는 불가분의 관계이면서도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이로인해 균형을 잃을 위험이 상존한다. 예수가 일찍이 경고했고 현대 사회가 사로잡혔던 위험, 그러면서도 막대한 풍요를 가능케 했던 위험이다.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의견을 가지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또 다른 문제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정확한 표현을 선택하지 않으면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말에 신중하라는 격언이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것도 당연하다.     


집단에는 규칙이 존재한다. 규칙으로부터 엇나간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무리 동물의 필연이다. 피해만큼의 징벌을 내림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것을 응보적 정의라 하고, 피해를 복구하고 용서와 반성을 통해 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을 회복적 정의라고 한다. 전자가 피해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사회의 재건을 목적으로 삼는 셈이다.     


기한이 얼마나 될까? 20년? 30년? 죽음 이후의 영원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지만 나는 인간이고, 내가 아는 것은 오직 인간의 시간이고, 거기에서 30년은 상당히 길다.     


토마스 네이글은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일인청적, 주관적, 실천가적, 행위자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네이글이 ‘영원의 관점’이라고 명명한 삼인칭적, 객관적, 이론가적, 관찰자적 입장이다. 네이글은 두 관점이 서로 구분된다는 사실보다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존재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 두 구분되는 관점을 동시에 취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인간성의 본성을 포착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인간이 뇌파를 쉽게 검색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세상을 그려본다. 재미있게 읽었다.     


책 소개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지음. 2023.09.05. (주)사계절출판사. 222쪽. 15,000원. 

     

단요. 2022년부터 작품 활동 시작. 청소년 성장소설 『다이브』와 』, 『마녀가 되는 주문』을 썼다. 『개의 설계사』로 2023년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 이 책으로 3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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