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아홉 단계』

「나이 듦과 삶의 완성」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나이 듦과 삶의 완성」이다.


이 책은 저자 에릭슨이 80세에 쓴 인생의 여덟 단계에서 심리사회적 발달 연구 방법이 처음에 예측하지 못한 생애 주기의 아홉 번째 단계 요소들을 설정하여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하였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인생의 일곱 단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온 세상이 무대이며

모든 남녀는 한낱 배우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겐 등장과 퇴장의 때가 있으며

저마다 주어진 시간에 많은 역할을 맡습니다.

일곱 단계를 연기하면서, 맨 처음 갓난아기는

유모의 품에서 힘없이 울며 젖을 토합니다.

이어서 책가방을 어깨에 멘 학생은 투덜대며

빛나는 아침의 얼굴로 달팽이처럼 꼬물꼬물

마지못해 학교에 갑니다. 이어 사랑에 빠진 청년은

지옥처럼 한숨을 내쉬며 연인의 눈썹을 찬미하는

애처로운 시를 노래합니다. 다음으로 군인은

표범처럼 수염을 기르고 이상한 확신에 차서

명예를 구하려 안달하다가 거품 같은 명성을 좇아

싸움 속으로, 심지어 대포의 아가리 속으로 득달같이 뛰어듭니다.

이어서 엄격한 눈빛과 점잖은 턱수염의 재판관은

얼굴엔 주름이 깊고 배는 불룩하지만

온갖 금언과 최신의 소송 절차로 무장한 채

자신의 배역을 연기합니다. 여섯 번째 시기는

실내화를 신은 깡마른 노인으로 넘어갑니다.

불룩해진 눈두덩에 코끝에는 안경을 걸치고

이제 앙상해진 다리에

젊은 시절 입던 바지는 헐렁하기만 합니다.

남자답던 우렁찬 목소리는 아이의 새된 목소리로 돌아가

피리나 휘파람처럼 삑삑거리고

별스럽고 파란만장한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이도 없고 보지도 못하면 미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망각이 되어버립니다. -《뜻대로 하세요》 제2막 7장, 139


저자 에릭이 91세가 되던 해에 부부는 결혼 64주년을 맞았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에릭은 집 안에만 머무르며 조용히 은퇴했다. 그는 우울하지도 않고 혼란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관찰하며 조용히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지혜롭고 품위 있게 노년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노년기에 제공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을 펼쳐놓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의 아름다움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과거의 기억은 기분 좋게 또렷하고 현재는 자연스러우며 작은 기쁨과 큰 즐거움과 많은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노년기는 우리가 새로운 우아함으로 깨어 있음과 창의성을 유지하고 과거의 모든 경험을 모아 그 경험에 의지하기를 요구한다.


많은 노인에게는 꺾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을 ‘변치 않는 핵심’ 즉 과거, 현재, 미래가 통합된 ‘실존적 정체성’이라고 한다. 이 정체성은 자기를 초월하며 세대 간의 연결을 강조한다. 이 정체성은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인간의 조건에는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다는 점도 포함된다.


인생의 아홉 단계

1단계, 유아기- 모성, 구강 호흡기.

2단계, 유년기 초기- 부성, 항문, 요도.

3단계, 놀이기- 보행 이동, 핵가족.

4단계, 학령기- 잠복기, 이웃과 학교.

5단계, 청소년기- 성숙기, 정체성, 또래 집단과 외집단.

6단계, 청년기- 우정, 성, 경쟁, 협력 동반자.

7단계, 성인기- 생산력, 노동 계급과 대가족.

8단계, 초기노년기- 자아 완성, 인류, 동류 집단.

9단계, 노년기- 생애 주기의 마지막 단계, 재평가. 일상의 여러 난관.


좋은 유전자와 다정한 부모와 공감하며 함께 놀아줄 조부모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운이 좋다. 우리는 기본적 신롸가 없는 유아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기본적 신뢰와 희망의 힘을 지니고 있다. 기본적 신뢰는 희망을 굳건하게 해주고 세상의 모든 시련과 고난에 맞서는버팀목이 되어 준다. 불신은 삶의 모든 측면에 악영향을 끼치고 우리에게서 사랑과 우정을 앗아갈 수 있다.

제9단계에 접어든 모든 노인은 그동안 익숙했던 관계 맺기의 방식에 더는 의지하지 못할 수 있다. 신체 능력의 저하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이제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접촉하던 방식에 그늘이 드리울 수 있다. 많은 노인에게서 잠재적인 관계와 친밀한 교류를 앗아간다.

80대나 90대가 되면 개인은 기력을 잃기 시작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돌연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능력도 줄어든다. 아무런 요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쓸모가 없어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할 일이 주어지지 않을 때 침체감은 커진다. 한 개인이 생산력과 창의성 그리고 타인으르 돌보는 책무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비참할 것이다.


어쩌면 노인들은 오로지 고독 가운데에서 자신의 존재 양태를 돌아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어떤 환경에서 시간이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겠는가? 질주와 경쟁은 끝이 났다. 분주함과 긴장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은 노년기에 꼭 필요한 일이다. 어떤 이는 이런 사실을 일찍 깨닫고 어떤 이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일상적 삶에서 의도적으로 물러나는 ‘은거’는 의식적으로 선택한 은거다. 은거를 선택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다. 많은 노인이 은거를 강요받는다. 눈, 귀, 치아, 뼈 그리고 모든 신체 기능의 약화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어렵게 한다. 신체 기능의 약화에 대한 정서적, 심리적 반응 또한 노인의 접촉 범위를 축소시킨다.


늙는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그것은 회상 속에 떠올리는 긴 생애에 대한 피드백을 허락해 준다. 세월이 지날수록 회상은 점점 포괄적이되고 지나간 장면과 행동들은 더욱 생생해진다. 때로는 아득했던 일들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지고, 기억 속에 떠 오른 과거의 장면과 경험이 우리를 압도하기도 한다. 마음과 정신이 과거에 고착되는 제9단계에서는 흔히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일출과 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사방이 바위와 덤불로 뒤덮인 좁은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그렇게 더 높은 곳에 이르게 된다. 내딛는 걸음마다 풍경은 더 넓게 트이고 천천히 변하는 하늘과 구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9단계에서는 소유물, 특히 감독과 관리가 필요한 짐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한다. 그 목적이 산을 오르고자 한다면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서야 한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평생의 훈련이 필요하다. 실패하고 뒷걸음질 치는 이유로 지형과 햇빛과 바람을 탓하기는 쉽다. 휴식 시간은 꼭 필요하지만 자기 연민에 허비할 시간이나 목적의식이 흔들릴 여유는 없다. 낮은 짧고 길은 쉽게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어스름 속에서 노래는 즐거움을 준다. 어둠은 위안을 주고 사랑하는 소중한 이들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책 소개

『인생의 아홉 단계』 에릭 에릭슨, 조앤 에릭슨 공저. 송제훈 옮김. 2019.09.05. 교양인. 207쪽. 12,000원.

에릭 에릭슨 Erik H, Erikson(1902~1994)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 정신분석가. 인간 발달 이론과 ‘정체성 위기’ 개념을 정립했다.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 예일대학을 거쳐 1960년부터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 『간디의 진리』 등.

조앤 에릭슨 Joan M. Erikson(1903~1997)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에릭 에릭슨과 1930년 결혼했다. 에릭슨이 인간 발달 이론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ㅇ르 주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교육학 학사,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사이자 작가로 활동했다.

송재훈. 서울출생. 한양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서울 불암고등학교 교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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