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속의 영원』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by 안서조

작가는 스페인의 문헌학자다. 이 책의 부제목은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이다.

이 책에서 서양의 문자, 책, 도서관, 박물관의 생성과 변천 과정, 철학, 역사, 종교, 문화적 관점에서 다양한 사건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인간이 지닌 모든 도구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도구는 책이다. 그 외의 것은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인간의 시각을 확장한 것이고,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이며, 쟁기와 검劍은 팔의 확장이다. 하지만 책은 기억과 상상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사물이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책을 사고파는 국제적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책을 사는 일은 가능했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직 책을 살 수 없었다. 자료에 따르면 왕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갖추려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살 수 없는 책은 몰수했다. 탐나는 책을 손에 넣으려면 목을 자르거나 수확물을 쓸어버렸고 나라의 숭고함이 사소한 양심의 가책보다 중요하다며 명을 내렸다.


목적 달성을 위해 사기 치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연극이 공연된 때부터 아테네에 보관돼 있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정본을 욕심냈다. 파라오의 대사들은 필사하여 사본을 만들겠다며 책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아테네는 지금 같으면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증금으로 요구했다. 이집트인들은 돈을 내고 열두 달이 지나기 전에 되돌려주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보증금을 포기하고 책을 수중에 넣어버렸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핵심 항구였고 새로운 삶의 중심지였다. 어디에서 오든 상관 없이 도서관의 수도에 온 모든 배는 즉각 등록해야 했다. 세관원들은 글로 쓰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로운 파피루스에 복사한 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취했다. 이렇게 얻은 책들은 ‘배에서 찾은 자산’으로 등록되어 도서관의 책장에 비치되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이끌던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상당수가 이란인이거나 인도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야만인’의 입대를 허락했으며 심지어 그중 몇몇은 귀족의 반열에 올라 엘리트 부대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는 인종에 상관없이 뛰어난 자를 뽑고자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전설을 갖는 것, 이억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책에 기록되는 것. 그는 그렇게 했다. 그의 짧은 생은 동서양에서 신화로 남았다. 코란과 성서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명백한 증거는 없으나, 알렉산드로스가 보편적인 도서관을 세우려고 했다. 알렉산드로스 야망의 크기에 비례한 그 계획은 총체화에 대한 갈증을 보여준다. 그가 공포한 첫 번째 칙령은 “지구는 나의 것이다.”였다. 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는 일은 세상을 소유하는 또 다른 상징적, 정신적, 평화적 형식이었다.


책 수집가의 열정은 여행의 열정과 비슷하다. 모든 도서관은 여행이며, 모든 책은 유효 기간이 없는 여권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리카에 가든, 아시아에 가든, 늘 『일리아스』를 가지고 다니면서 조언과 통찰력을 구했다. 독서는 마치 나침반처럼 그에게 미지의 길을 열어주었다.


웹이 개념을 고안한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는 공공도서관의 질서정연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다. 도서관의 구조를 모방해 모든 자료에 주소를 부여하고 다른 컴퓨터로부터의 접근을 허용했다. URL은 도서관의 등록번호처럼 작동한다. 이후 버너스리는 우리가 http로 알고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이동 프로토콜을 고안했다. http는 우리가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고 사서에게 써내는 요청서에 해당한다.


독서는 표정, 태도, 대상, 공간, 재료, 움직임, 빛의 변화를 포함한 일종의 제의적 행위다. 두루마리 책을 다루는 건 요즘 책의 페이지를 다루는 것과 다르다. 두루마리를 펼치면 종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인 텍스트 뭉치들이 연이어 눈앞에 나타난다. 독자가 이를 읽어가면서 새로운 글을 보려면 오른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쳐가고 왼손으로는 읽은 부분이 두루마리를 말아야 한다. 리듬을 요하는 느린 춤과 같다. 고대에는 눈으로 문자를 인식하면 그 문자를 읽으며 텍스트의 리듬을 탔다. 발로는 메트로놈처럼 바닥을 두드렸다. 읽기는 듣기였다.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인류의 언어가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 로제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로제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언어학자, 고고학자, 공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니켈을 주원료로 삼은 디스크를 통해 한 가지

언어를 1,000개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 해냈다. 그 1,000가지 언어 중에 한 언어를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사람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번역을 통해 잃어버린 소리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피부는 종이와 마찬가지다. 몸은 하나의 책이다. 시간은 제 역사를 얼굴에, 팔에, 배에, 성기에, 다리에 써 내려간다. 세상에 나온 인간의 배에는 커다란 ‘0’인 배꼽이 있다. 그 이후 다른 문자들이 천천히 나타난다. 손금, 마침표 같은 주근깨, 의사들이 살을 갈랐다고 꿰맨 뒤에 남는 흔적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 주름, 몸의 반점, 혈관이 모양 등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을 엮어간다.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최초의 문자가 나타났다. 세월이 흘러 이집트, 인도, 중국에서 문자가 생겨났다. 문자 탄생은 소유물 목록을 작성해야 하는 실용적 목적에 근원을 두고 있다. 첫 번째 기록은 도식적인 그림이었다. 그림은 쉽게 이해하고 해독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동일해야 했다. 그 뒤엔 추상적인 생각을 그려냈다. 수메르의 원시적 서판에는 서로 교차하는 두 개의 선이 있는데 그건 적대성을 의미했고, 평행으로 그려진 두 개의 선은 친구를 의미했다. 무한한 사물과 생각을 그리는 것에서 아주 제한적인 말소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 단순화를 거쳐 마침내 문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자가 그림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D’는 어원적으로 ‘문’을 재현한 것이며, ‘M’은 물의 움직임, ‘N’은 뱀, ‘O’는 눈을 재현한 것이다.

책과 불은 공포스럽고도 매혹적인 역사를 만들어왔다. 갈레노스에 따르면 지진과 화재가 책이 사라지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책을 태우는 행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옛 질서의 잿더미 위에 새로운 질서의 토대를 마련하거나 작들이 더럽힌 세계를 재상하고 정화한다는 명목이다.


약 38억 년 전, 지구에서 특정 분자가 모여서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가 생성됐다. 현생 인류와 매우 유사한 동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250만 년 전이다. 30만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불을 길들였다. 그리고 인류가 말을 정복한 건 10만 년 전이다. 기원전 3500년에서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익명의 수메르인 천재들이 점토에 기호를 씀으로써 음성의 시간적, 공간적 장벽을 극복하며 지속적인 언어의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로부터 5000년 이상이 지난 20세기가 되어서야 글쓰기가 대부분의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이 되었다.


책의 발명은 파괴에 저항한 끈질긴 투쟁에서 가장 큰 승리이다. 우리는 잃지 않고 싶은 지혜를 갈대, 가죽, 천, 나무, 빛에 맡겼다. 그것들의 도움으로 인류는 발전과 진보라는 경이로운 역사를 경험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책은 우리의 숨결을 초월하여 인간을 하나로 묶어내고 무상과 망각에 맞서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책은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기도 했지만, 과거에 인류가 건설한 최고의 이야기, 상징, 지식, 발명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우리는 한 노인과 그의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 사이의 가슴 아픈 퐈해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다. 사포의 시에서 우리는 욕망이 저항의 한 형태임을 발견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우리는 타자의 관점을 배우게 되고, 『안티고네』에서 우리는 국제법의 존재를 엿본다. 『트로이아 여인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닌 야만성에 직면하며, 호라티우스의 글에서 우리는 “감히 알려고 하라.”라는 문장을 만난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에서 쾌락을 엿보고, 타키투스의 책을 통해 독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며, 세네카의 목소리에서 최초의 평화주의자의 외침을 듣는다.


책은 우리에게 시들지 않는 선례를 물려주었다. 인간의 평등, 지도자 선택의 가능성, 아이들에게 노동보다 교육이 낫다는 직감, 병자와 약자와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등, 이 모든 발명은 고대의 발견, 즉 불확실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고전을 통해 가능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문헌에 근거하여 책과 글, 문화의 발전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재미있다.


책 소개

『갈대 속의 영원』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2023.03.20. 반비. 557쪽. 26,000원.

이레네 바예호 Irene Vallejo.

사라고사 대학교와 피렌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스페인 국립에세이상, 스페인공영라디오의 엘오호크리티코 내러티브상, 스페인 서점조합상, 인문학 수호를 위한 시민참여상 등 수상. 저서. 『묻힌 빛』, 『궁수의 휘파람』 등


이경민. 조선대학교 유럽언어문화학부(스페인어전공)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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