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의 소설
이 소설은 제주도 출신 작가 현기영의 소설이다. 제주 4·3사건에 관한 내용이다. 제목 『제주도우다』 는 제주어로 ‘제주도 사람입니다’이다. 제주 방언은 줄임말과 센말이 많이 들어간다. 자연환경이 척박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이 해양성기후의 특성으로 습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게 불 때가 많아서 가까이 있어도 의사소통하려면 큰소리로 짧은 어휘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기영은 제주 4·3사건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다. 대표적으로 『순이 삼춘』이 있다.
이 책의 주제도 1945년 광복에서 1948년 대한민국 수립까지 해방공간이라고 하는 폭력의 시기에 관한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5월 10일 남한 정부 단독으로 정부수립을 위한 제헌의회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1947년 3월 1일 제주도 제주시 북국민학교에서 삼일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제주도에서는 최대의 인파가 몰려 혼잡한 상황에서 기마경찰에 어린아이가 다치고 ‘경찰이 사람 죽였다’라는 선동 구호에 왓샤부대(좌익데모대)가 스크럼을 짜고 제주경찰서 앞으로 행진했다. 경찰서 망루에서 보초를 서던 경찰관이 발포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데모가 연일 발생하고,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유인물이 뿌려지고 남조선로동당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새벽을 기해 경찰관서와 관공서를 습격하고, 방화와 우익 인사를 살해하며 발생한 사건이 제주도 4.3 사건이다. 1958년 4월 3일까지 10년 동안 제주도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당시 제주도 인구 3분의 2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제주도의 비극적인 사건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 차원에서 사상자를 둘러싼 진상규명과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보상을 떠나 제주 4·3사건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 연극, 소설, 음악, 미술 등 예술계에서 소재로 삼고 있다. 좌측에서 또는 우측에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의사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을 위한 진실인가? 어떤 진실인가? 개별적인 물음에 정답이 없다. 왜? 보는 관점에서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로 될 수 있는 것이 제주 4·3사건이다. 정치 이념도 모르고 오늘과 내일을 평범하게 살아가던 도민들은 갑자기 발생한 난리에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때그때 아는 사람 혹은 가족의 말을 듣고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부역자가 되고 토벌대가 된 것이 제주 4·3사건이다. 정확한 기록도 없고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만 난무했다. 내가 본 것이 전부 인양 맞다고 우기면 할 말이 없다.
소설 중 일부를 인용하면
5·10 총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반대 투쟁이 일어났다. 한민당을 제외하고 좌우를 막론한 모든 정당이 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상황은 내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으니. 무력 충돌로 쌍방간에 백오십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제주도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산부대는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선거인명부를 탈취했고, 선거위원들에게 사표를 제출하도록 강하게 압박하면서 죽창을 휘둘렀다. 어느 마을에서는 선거위원장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그러한 무력 충돌에서는 당연하게도 죽창이 미제 카빈총을 당해낼 수 없어 산부대 쪽 사망자가 세배나 많았다.
미군정 장관 딘 소장을 둘러싼 최고 수뇌부가 항공편으로 날아들어 비밀회의를 열었는데, 딘 소장을 대변한 경무부장 조병옥이 화평 정책을 내세운 김익렬 연대장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 무섭게 몰아붙였다. 김익렬이 모처럼 얻어낸 산부대와 약속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군정 당국에 의해 파기되었다. 정책은 화평이 아닌 강경 무력 진압을 급선회했다. 남쪽만의 단독선거인 5·10선거가 코앞으로 닥쳐왔으므로 그전에 군대를 투입해 저항 세력을 속전속결로 진압해 버리자는 것이 미군정의 의도였다.
순식간에 경비대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온건파 김익렬이 해임되고 11연대를 불러들였다. 갑자기 교체된 11연대는 미제 카빈총으로 무장하고 군비 일체를 미제로 일신했다. 일본군 출신 중령 박진경이 연대장이었다. 강경 무력 진압 명령을 받은 박진경은 취임사에서 말했다.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삼십만 명이 희생되더라도 무방하다. 제주 백성이 아니라도 나라가 선다.”
제주 4·3사건에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이유 중 하나는 ‘서북청년단’이라는 명칭의 북한 피난민으로 구성된 민간 토벌대였다. 이들은 군부대와 경찰관서에 준 병력으로 상주했다. 보수도 없고, 공식 직책도 없이 주민들에게 행패 부리고 약탈을 일삼았다.
소설의 내용 중
군경 토벌대의 무자비한 파괴 공작은 그때까지 한 몸 같았던 도민 공동체를 두 쪽으로 찢어놓았다. 두 쪽으로 찢겼을 뿐만 아니라 서로 적대 관계가 되도록 내몰렸다. 모든 사람이 좌냐 우냐, 산이냐 해변이냐, 철저하게 양분되어 찢겨나갔다. 저항 세력을 산부대, 산군 혹은 산사람이라고 부르던 것이 토벌대가 시키는 대로 차츰 폭도 혹은 산폭도로 변해갔다. 폭도놈, 폭도 년이라고 흔히 불렀다. 처음에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했으나 차츰 그렇게 부르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산사람은 이제 두렵고 낯선 대상이 되었다.
산부대는 점점 과격해져서 피에는 피, 너희가 죽이면 우리도 죽인다는 식이 되었다. 죽음을 죽음으로 갚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경찰 가족을 납치하여 짐꾼으로 한라산 기슭까지 데리고 갔다가 훈계만 하고 하산시키던 것이 이제는 병아리를 바구니에 담아 오일장에 팔러 가는 순경 어머니를 잡아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경차과 대청 간부의 집을 화염병으로 공격하고, 당사자가없으면 가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전향자에 대한 응징도 가차 없었다. 궐석재판을 통해 숙청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죽여라! 배신자의 말로가 무엇인지 보여주어라!” 입산자들 가운데는 무고한 인민 살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분노한 산부대를 말릴 수는 없었다.
좌우 양쪽이 번갈아 서로를 죽이고, 그 가족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복수심에 눈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가 친구를 잡아먹고, 친척이 친척을 잡아먹었다. 천년의 공동체,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던 끈끈한 우애와 혈연의 공동체,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인 그 돈독한 공동체가 무참히 찢겨나가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노래 불렀다. “위에 붙어라, 아래 붙어라, 산에 붙어라, 해변에 붙어라.”
제주 4·3사건 이야기는 읽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제주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이라서 읽었다. 너무 비참한 내용이 많아서 다시 읽고 싶지 않다.
요즘 대한민국의 상태가 과거 해방 시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이 문제다. 제주 4·3사건 때도 그랬다.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온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되면 만민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무지렁이 도민들은 배운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까 맞는 말이겠지 했다.
4·3사건이 터지자, 중앙정부 사람들은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경무부장 조병옥은 대놓고 제주도는 ‘빨간 섬’이라고 했다. 조상 대대로 이 땅에서 자급자족하던 평범한 사람들은 소수의 정치세력에 휩쓸려 낮에는 경찰 편에, 밤에는 좌익 편에 서는 줄타기 생활이 반복되었다. 가족을 잃고 미풍양속도 사라졌다. 서로 의심하고 원수가 되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알량한 지식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정치세력 몇 명이 70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나쁜 인간들! 지금도 정치하는 인간들의 행태는 똑같다. 정말 나쁜 사람들! 여의도에서 호의호식하며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인들이 원망스럽다.
책 소개
『제주도우다』 현기영 지음. 2023.07.03. (주)창비. 363쪽, 17,000원.
현기영.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순이 삼촌』 등. 민족문학작가회 이사장, 한국문화에술진흥원장을 역임했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