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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May 30. 2022

스티븐슨 저.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기'를 읽고

프랑스 남부 “GR(장거리 올레길) 70” 여행기

이 책은 1879년 6월에 출판되었다.

저자 스티븐슨은 프랑스 남부의 블레, 마라즈리드, 로제르 제보당 지방 등 12일 동안 230킬로미터를 걷는다. 그의 동반자는 메데스틴이라는 이름의 나귀뿐이다.


그가 걸은 230킬로미터는 오늘날 ‘스티븐슨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 길은 “GR(장거리 올레길) 70”으로 불린다. 매년 5천 명 정도가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을 읽으며 이 길을 걷는다. 이 책은 저자가 걸은 이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     


  삶이 그렇듯이 여행도 만남과 갈등, 소통, 이해, 배려, 화해, 공존, 헤어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19세기 후반에 폐 질환을 앓는 허약한 몸으로 노숙을 하며 여행을 했다.

“나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기 위해 여행한다. 여행 그 자체를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과 장애가 되는 것을 더 가까이서 느끼는 것,

문명의 포근한 침대를 박차고 나와 날카로운 부싯돌이 박혀 있는 둥근 화강암을 발밑에서 느껴보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남보다 앞서가려고 일에 더 몰두하다 보면 심지어 휴가 때도 일을 해야만 한다.

안장에 올려놓은 짐을 붙잡고 살을 에듯 차가운 북풍을 맞으며 걸어가는 건 금전적으로 아무런 이익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마음을 사로잡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가 이렇게 힘든데 도대체 누가 미래에 대해서까지 짜증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여행길에 머물게 된 수도원에서 저자는 “나는 침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엄숙하고 쓸쓸한 고독을 견뎌내는지 놀랍기만 했다.

그렇지만 여성을 배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침묵 서약까지 하는 것은 고행이라는 관점 외에 어떤 정책으로도 느껴진다. 무방비 상태의 남자들이 만든 단체는 여자들이 옆에 있으면 언제 어느 때 해체될지 모른다.

더 강한 전류가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와 겨우 10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소년 시절의 꿈이라든가 젊을 때의 계획을 포기하기도 하고, 여자들의 맑은 두 눈과 부드러운 억양은 예술과 과학, 남자들의 직업적인 즐거움을 단숨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혀는 가장 큰 분열자다”라고 한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굳센 의지도 여성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만다는 경고다.     


  형벌에 사형 말고도 다른 등급의 벌이 있는 것처럼, 운에도 여러 정도가 있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저자는 나귀와 자주 심각한 상태가 된다.

풀밭으로 뛰어들려고 한다거나, 천천히 걷는 일이 다반사다. 그로 인해 일정의 차질은 다른 사건을 만든다. 인생의 항로도 이와 같다.

“밤은 지붕 아래서는 죽음처럼 따분한 시간이지만, 열려 있는 세계에서는 별과 이슬, 향기와 더불어 가볍게 지나간다. 자연의 얼굴이 바뀌는 것을 보면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벽과 커튼 사이에서 숨 막힘을 느끼는 사람에게 일종의 일시적인 죽음처럼 느껴지는 잠이 야외에서 자는 사람에게는 가볍고 활기찬 잠이 된다. 거기서 그 사람은 밤새도록 자연이 깊고 자유롭게 내쉬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130여 년 전에 쓴 여행기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실감 나게 느껴진다.

나귀와 호젓하게 오솔길과 산길, 평원과 강가를 걷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나귀에 짐을 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생생하다.

맞춤형 침낭 하나에 의지해 야외에서 잠을 자고 그곳에 숙박비로 선행을 베푸는 모습 또한 순수하다.


나도 저자처럼 여행하고 싶다. 하지만, 야외 노숙 체험을 하기 위해 침낭 하나에 의지해서 야외에 잠을 청하기에는 나이가 들었다. 100년이 넘은 과거의 여행기인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저. 이재형 옮김. 2020.12.15. ㈜뮤진트리. 261쪽. 15,000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 :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남태평양에 있는 사모아의 발리마라는 마을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등이 있다.     


이재형-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여대 강사를 지냈다. 지금은 프랑스에 머무르면서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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