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걸작선 74
이 책은 청소년 걸작선 74이다. 알렉스 쉬어러의 소설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천상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내가 느낀 감정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물리학자 크리스토퍼가 쓴 내용을 소설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크리스토퍼도 소설 속의 인물이다.
크리스토퍼의 이야기를 소개한 화자는 유명 대기업의 사원이다. 그는 그 회사에서 특별하게 열심히 하지도 않고 가늘고 길게 가서 정년퇴직하고 연금을 받는 것이 목표이다. 어느 날 새로 입사한 크리스토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연구한다. 화자는 크리스토퍼가 오래 버텨 내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다. 어느 날 크리스토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가 사라진 방에는 스노볼과 공책 한 권이 남아있었다.
크리스토퍼가 연구하던 것은 감속장치이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되돌아올 수 없다. 그 총알이 발사 전으로 돌아오게 하는 장치를 만들려는 연구였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은 깨어진다. 그 깨어진 것을 다시 복구한다는 것은 즉 되돌리는 것은 현재 과학으로서는 불가능이다. 크리스토퍼는 떨어진 유리컵은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는 연구. 속도에 관한 감속장치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불가능이다. 화자는 크리스토퍼에게 그것은 현재의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한 이후 크리스토퍼는 사라진다. 그리고 그가 남긴 공책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크리스토퍼는 화가인 아버지와 같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로 크리스토퍼가 어렸을 때 떠났다.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마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크리스토퍼는 평소 알고 지내는 예술가 에크만과 함께 살아간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표를 받는 날 크리스토퍼를 돌봐주던 에크만이 심장마비로 죽는다.
크리스토퍼는 에크만이 자신에게 쓴 편지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에크만은 크리스토퍼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애인 파피를 마이크로화해서 작은 마을 속에 담아놓고 사육하고 있었다. 에크만이 크리스토퍼에게 남긴 재산은 많았다. 크리스토퍼는 대학을 졸업하고 물리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파피를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감속장치 연구에 골몰하다가 어느 날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나중에 화자가 발견한 노트에서 크리스토퍼는 스노볼 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파피, 그리고 새로 태어난 여동생이 있는 곳으로. 노트에 화자에게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부탁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상상의 이야기다. 사람을 축소해서 사육할 수 있다는 발상도 특이하다. 책을 읽으면서 조물주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든 세상을 관찰하며 매일 양식을 제공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보살핀다. 그러다가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이 변하면 손톱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화자가 나와 비슷한 성향이라고 느꼈다. 가늘고 길게…, 이 세상에서 화끈하게 무언가 한 획을 긋는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화자도 이런 부분에서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한 번 더 읽어야겠다.
책 중에서
예술가들은 때때로 심리적 불안감을 느낀다. 어떤 날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다가 바로 그다음 날에는 또 자신의 작품을 아무런 가치 없는 실패작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만심이 한순간에 악몽 같은 자기 의심으로 변하는 것이다. 예술 중개상은 예술가들의 이런 불안한 마음을 착취했다.
로버트는 자유를 믿었고, 자유에 따르는 위험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무얼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서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아기처럼 포대에 싸인 채 보호막 속에서만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과거 전족을 당했던 중국 여성들처럼 평생을 조그만 발로 불안정하게 종종거리며 걸어야 하고, 혼자서는 도망칠 수 없으니 다른 누군가에게 늘 의지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멋진 것들은 순식간에 평범해지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점점 그것들을 당연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걸 찾는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기적이지만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하늘의 달이나 별 그리고 해 보다 평범하다고 여겨지면 제대로 된 눈길도 받지 못했다.
뚜렷한 목적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삶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건 마치 소리도 대본도 없는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았다. 희한하게도 인생이란 오히려 무질서하고, 계획이나 목표 또는 의미 없이 디는 대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래도 그것이 인생이었다. 어쩌면 드라마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요크의 리처드는 헛된 싸움을 했다(Richard of York Gained Battles In Vain). 한번 배우면 절대 잊을 수 없다. 비록 이상하리만치 의미가 없는 문장이지만, 그래도 무지개의 색을 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빨강(R), 주황(O), 노랑(Y), 초록(G), 파랑(B), 남색(I), 보라(V).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빨주노초파남보’라고 외운다.
그 색들 사이사이에는 다른 색도 존재했다. 하지만 딱 일곱 개의 색만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사실 세상에는 7천 가지 이상의 색이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색은 무한한 것일지도 모른다. 숫자처럼 색도 끝없이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 단지 셀 수 있을 만큼만 셀 뿐, 끝까지 셀 수는 없는 것이다. 끝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프리즘에서 조각난 색채들이 이상한 각도로 뻗어 나갔다. 마치 관절이 많은 팔다리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했다. 결코 그럴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특히나 개인적인 일에 있어서는 독립적일 필요가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생활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서로에게 자유를 주고 개별적인 생활을 존중해 줌으로써 사이가 더 돈독해질 수도 있다. 계단에 둔 우유처럼 방치된 사랑은 상하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신선하게 보관해야 한다.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반드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이나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호두까기 인형〉의 소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답게 삶을 살아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은 알아서 흐를 것이다. 그게 성공 아닐까? 그게 바로 인생이다.
다이아몬드를 반짝이게 만드는 것은 빛의 속도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빛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진공 상태라면 그럴 테지만 다이아몬드 위에서는 아니었다. 광물 위에서 빛은 다양한 속도로 이동하고,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굴절되거나 반사됐다. 그게 바로 다이아몬드 마법의 비밀이었다. 다양한 빛의 속도.
안다는 것은 권력이었다. 사실 권력 그 이상의 무기였다. 아는 게 권력이고, 그 권력이 절대적 부패를 낳는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꽤나 원초적인 과정이었다. 삶이란 꽃은 어디서든 피어날 수 있다. 사막, 황무지, 툰드라, 황야에서도 말이다. 생명이란 놀라운 정도로 강인했고 섬세한 것이었다. 죽음에 항복하기보단 아주 가느다란 밧줄이라도 죽어라 움켜쥐고선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 나가려 한다.
삶은 어디에서도 삶이었다. 크든 작든, 거대하든 미세하든,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좋은 게 좋다라는 식의 사람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서두를 것 없이 묵묵히 할 일을 한다. 남에게 영감을 주진 못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토끼와 거북〉 이야기에서 결국 최종 승자가 누구인지는 다들 알 테니.
사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 아버지와 사이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요즘도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는 종종 이런 소원을 빌곤 했다. 제발 아버지와 다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생각을 해 보자. 여러분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이다. 동전을 던져서 어떤 면이 나오는지 보도록 하자.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모든 게 다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만 없는 이 세상에서 평생 사는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이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전혀 다른 세계에서 여러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지만 다시는 이 세계로 돌아오진 못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아요. 또한 우리가 살날은 한정적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날들을 어떻게 보낼지는 정하는 게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책 소개
『어둠의 속도』 알렉스 쉬어러 지음. 윤여림 옮김. 2022.10.20. 미래M&A. 335쪽. 15,000원.
알렉스 쉬어러 Alex Shearer.
영구 스코틀랜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경영학과 광고를 전공했다. 트럭 기사. 백과사전 외판원, 가구 운반원,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서른 가지 이상의 직업을 경험했다. 소설 『푸른 하늘 저편』, 『두근두근 체인지』는 KBS 한국어 능력 시험 선정 도서, 등.
윤어림. 한양대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불 번역을 공부했다. 전문통번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