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의 장편 소설

by 안서조

이 책은 일본 아사다 지로의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이 죽는 것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수상태, 의식이 없다고 하는데 환자는 정작 주변의 소리를 다 듣는다. 그리고 과거에 관해 꿈을 꾸듯 회상하고 다닌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다시 깨어난다는 이야기의 구성을 보면서 진짜로 한 번의 죽음을 겪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제1장 정년퇴직, 제2장 마담 네즈와 시즈카, 제3장 병원의 얼굴, 제4장 미네코, 제5장 가족, 제6장 흔적으로 구성되었다. 정년퇴임 행사를 마치고 지하철로 귀가 중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다케와키의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일본 종합상사를 거느린 대기업 사장 훗타 노리오, 훗타의 친구이며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 정년퇴직하는 날 지하철에서 쓰러진 다케와키 마사카즈, 아내 세쓰코, 딸 아카네, 사위 오노 다케시, 다케와키와 보육원 친구이며 대목수 나가야마 도오루, 다케와키가 입원한 병원 간호사 고지마 등 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훗타 노리오가 다케와키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장면이다. 땅거미가 내리자 눈이 찾아왔다. 흩날리는 것도 아니고 춤추는 것도 아닌 함박눈이었다. 유리창에 닿자마자 물로 변하고 와이퍼에 의해 즉시 사라지는 함박눈이 부질없는 생명을 연상시켰다.


다케와키 마사카즈는 일본의 유명 브랜드 의류회사의 중역이다. 60세가 넘어 연장근무로 65세로 정년퇴직한다. 정년퇴직 행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리고 의식 불명인 상태로 지내는 사이 친구이며 회사 사장인 훗타 노리오가 병원을 찾아온다. 그리고 사위 오노, 친구 다케시 등이 병원을 찾으며 각자 다케와키와 맺은 사연을 풀어간다.


다케와키는 의식 불명인 상태에서 꿈을 꾼다. 꿈에 마담 네즈가 나타난다. 마담 네즈는 아내가 다니는 헬스클럽 멤버인가 아니면 사신(죽은 사람을 데리러 오는 신)인가, 꿈이지만 선명하다. 마담 네즈와 함께 신주쿠 고층 빌딩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만찬을 하고 병실로 돌아온다.


꿈은 계속 이어진다. 소나무가 무성하고 풍요로운 바다가 있는 아담한 해변 찻집에서 새하얀 선드레스를 입은 낮선 여인을 만난다. 여인의 이름은 ‘시즈카’이다. 장면이 바뀌고 네 살에 물에 빠져 죽은 아들과 아내가 나타났다. 그리고 괴로웠던 과거가 꿈으로 재현된다.


다케와키의 사위 오노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엄마는 이 남자 저 남자를 계속 바꾸면 살았다. 오노는 불량소년으로 어렸을 때부터 소년원에서 생활한다. 열여섯이 되었을 때 보호관찰관의 소개로 다케와키의 친구 대목수인 나가야마를 만났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원 출신 불량소년을 자기 집에 살게 해 주고 월급도 주며 평생 성실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다케와키가 입원한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고지마는 다케와키와 같은 시간에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서로 인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열차를 타고 이십 년 동안 출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20년이 넘게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던 사람. 단지 그것뿐이다. 하지만 고지마에게는 다케와키 마사카즈가 자기 인생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이성으로 의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도 구급차에서 운반된 환자의 얼굴을 언뜻 본 순간, 다른 간호사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같은 지하철로 출근했을 뿐인 사람. 다만 그것뿐인 타인. 그런데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스스로 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케와키는 혼수상태에서 계속 현실 같은 꿈을 꾼다. 옆 침대에서 사경을 헤매는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와 외출한다. 옛날 공중목욕탕에서 목욕도 하고 포장마차에서 정종도 한잔한다. 지하철도 타보고 사카키바라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사카키바라가 좋아했던 여인 미네코에 관한 말도 듣는다.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무의식 속에서 갈망하는 상황을 꿈으로 꾸는 것이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으로. 다음날 사카키바라는 죽는다. 그의 영혼이 떠나가는 길에 같이 간다.


다케와키는 다시 꿈을 꾼다. 사카키바라가 좋아했던 여인 미네코다. 미네코에게 대학 시절 사귀었던 첫사랑 후즈키에 관한 말도 한다. 그러다가 혼수상태에 빠진다. 의사와 간호사는 긴급조치를 하고 다케와키는 꿈을 꾼다. 네 살 때 죽은 아들 하루야를 만난다. 하루야와 같이 가려는데 하루야가 “아빠 엄마하고 더 있다가 와, 엄마 혼자 있으면 외로워.”라고 말한다.


다케와키는 개찰구를 빠져나와 칙칙한 타일 벽을 짚으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더러움이 하나도 없는 바람이 나를 밀어 올리고 겨울 하늘의 새하얀 빛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흔적을 가슴 가득히 안고, 나는 지하철에서 다시 태어났다. 로 소설은 끝난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의료보험조합에서 건강 진단을 받을 때마다 고콜레스테롤이라는 등 고지혈증이라는 등 하면서 약을 줬지만 그 약도 즉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나가야마와 똑같은 말을 듣고 똑같은 약을 먹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다들 증상이 똑같다면 그것은 병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제는 병원이나 의사라고 그는 생각했다. 쓸데없는 약을 먹다가 간이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다케시, 잘 들어. 한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전 세계에서 전쟁을 없애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야.

애초에 시간이란 것은 너무나 모호하지 않은가. 소년의 하루와 노인의 하루가 같을 리가 없다. 객관적으로는 똑같아도 주관적으로는 각각 다르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두고 육체가 쇠약해진 순간에는 각각의 정신, 다시 말해 주관적인 시간이 새로이 나타나고 사회가 정한 객관적인 시간은 무의미해지는 게 아닐까? 약속된 영원한 낙원은 천국이자 정토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빈사 상태의 나를 둘러싼 여인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지만 타입은 모두 다르다. 마담 네즈는 현대의 귀족이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고,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낸 뒤 귀국해서 우아하게 살고 있다. 우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이리에 시즈카라는 이름이 여성은 비밀주의자로 자신의 인생에 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인생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즉, 과거의 기척까지 깨끗이 지울 수 있는 보기 드문 여인이다.

그녀들에 비해 미네코는 대범하고 화통한 여성이다. 부랑아들의 우두머리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스폰서가 있다고 하는 걸 보면 물론 독신일 것이다.


‘무엇을 해도 된다’라고 생각하면 풍요로운 시간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면 빈곤한 시간이다. 노후는 그 두 가지가 상반되는 게 아니라 똑같은 뜻이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내는 ‘무엇을 해도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태해지고 아내는 집안일과 취미 생활로 분주하다.


책 소개

『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2021.01.19. 부키(주). 431쪽.


아사다 지로 淺田次郞. 1961년 도쿄 출생. 1990년 작가로 데뷔했다. 1995년 『지하철』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1997년 『철도원』으로 나오키상, 2000년에 『칼에 지다』로 시바타 렌지부로 상. 등 수상.

이선희.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교육대학원 수료. 나카타니 아키히로 한국사무소 소장. KBS 아카데미 일본어 영상번역과정 강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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