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신욱은 몽골에서의 기이한 경험을 떨쳐낼 수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의 안내 방송조차 한국어로만 흘러나왔고, 옆자리의 외국인 승객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여행의 해프닝이 아니야. 세계가 변하고 있어.”
언어의 붕괴, 첫 번째 충격
서울에 도착하자, 그는 곧바로 도심의 변화를 체감했다.
명동 거리의 간판은 여전히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쓰여 있었지만, 사람들의 입에서는 오직 한국어만 흘러나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로 대화하는 소리도, 택시 기사와 승객의 대화도 모두 한국어였다.
신문은 이 현상을 “언어 붕괴”라 불렀다.
방송국은 긴급 특집을 편성했고, 앵커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모국어를 잃고 한국어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전례 없는 현상이라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크라우드 박사와의 만남
며칠 뒤, 신욱은 독일에서 온 언어학자 크라우드 박사를 만났다.
그는 세계 언어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학자였지만, 지금은 깊은 상실감에 잠겨 있었다.
“신욱 씨,” 박사는 완벽한 한국어로 말했다.
“나도 겪었어. 독일어가 사라졌어. 내 머릿속엔 오직 한국어만 남아 있어.”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평생 독일어의 뿌리를 연구해 왔어. 고대 게르만어, 방언, 시의 리듬…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내 모국어가, 내 정체성이 사라진 거야.”
신욱은 충격에 빠졌다.
“그럼… 세계 전체가 한국어로 바뀌고 있다는 건가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언어를 배우지 않은 아이들조차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 언어만 알고 있었던 것처럼.”
며칠 후, UN 긴급회의가 열렸다.
뉴욕의 회의장은 전 세계 대표들로 가득했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모두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통역 장비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통역사들은 절망에 빠져 고개를 떨궜다.
“이건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사무총장이 선언했다.
“우리는 언어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우리의 문화와 기억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표는 분노에 차 외쳤다.
“프랑스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학, 철학,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읽을 수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중국 대표는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사서오경은 이제 해석 불가능한 유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사상은 침묵 속에 묻히고 있습니다.”
회의장은 혼란에 빠졌다. 모두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엔 깊은 상실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신욱과 크라우드 박사는 뉴욕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거리의 간판은 여전히 영어로 쓰여 있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모두 한국어였다.
박사가 조용히 물었다.
“신욱 씨,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도 사라지는 걸까?”
신욱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언어는 기억이에요. 언어가 사라지면, 그 기억도 함께 사라지겠죠.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면 전쟁은 줄어들지도 몰라요.”
박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평화를 위해 다양성을 버린다… 그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그들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문화의 근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근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세계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프랑스의 시인은 더 이상 프랑스어로 시를 쓸 수 없었고, 독일의 철학자는 모국어로 사고할 수 없었다.
중국의 고전 문학은 해석 불가능한 유물이 되었고, 아프리카의 수많은 토착 언어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거리의 소음은 여전히 가득했지만, 그 속엔 단 하나의 언어만이 울려 퍼졌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세계는 하나의 목소리로만 말하고 있었다.
신욱은 점점 불안해졌다.
“이건 단순한 현상이 아니야.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언어를 지우고 있어.”
그는 몽골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