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by 안서조

요즘 일본 여행이 대세다. 일본과 가까이하는 것은 ‘친일이다. 매국노다’라고 비판하던 시대는 가고, 엔화가 급락하면서 요즘 젊은 세대는 저렴하게 일본 여행을 하면서, 외국 문화도 접하고 해외여행이라는 실속도 챙긴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에 많은 사람이 여행하면서 일본 문화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본 여성과 한국 남성이 국제결혼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일본에 여행할 때, 이 책을 읽고 일본의 소설가 중에서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으면, 일본 사람에게 지식인이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일본어로 작품 내용을 소개하고, 필사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일본어를 전공하거나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의 부제목은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이다. ‘비참함을 아름답게, 고독을 따뜻하게’라는 카피가 있다. 박예진 작가는 「~문장의 기억」 시리즈로 알게 됐다.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외 두 편의 문장의 기억을 읽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이다. 내가 다자이 오사무를 알게 된 것은 2019년 4월에 읽은 『인간 실격』이다

박예진 작가는 이 책에서 오사무의 소설 12편을 1부, ‘부서진 마음의 언어들’에서 『사양』, 『인간 실격』, 『어쩔 수 없구나』 2부,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깨지기 쉽다’에서 『여학생』, 『직소』, 『달려라 메로스』 3부, ‘나를 만든,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서 『앵두』, 『어머니』, 『사양』, 『셋째 형 이야기』 4부, ‘희망은 때론 가장 잔인한 거짓말이 된다’에서 『사랑과 미에 대하여』, 『비용의 아내』, 『늙은 하이델베르크』를 소개한다.


『사양』에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주인공 가즈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즈코는 귀족의 장녀로 태어나 고귀하고 우아한 삶을 누렸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일본이 패전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고 마침내 시골로 이사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로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아마 오사무의 대학 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혁명을 꿈꾸던 시절을 표현한 것 같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 자전적 소설이라는 소개가 있다. 첫 번째 수기 어린 시절, 두 번째 수기 학창 시절, 세 번째 수기 사회생활로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한 저자의 인생을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입을 빌어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의 의지대로 말하고 살 수만은 없다. 주위와 상대하는 사람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 요조는 사람과의 관계를 제일 두려워한다. 그래서 싫어도 좋은 것처럼 연기하는 삶을 산다. 어릴 때 배고프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사람들이 “배고프지?” 하면, “배고파”하면서 먹는다. 이런 가식적인 행태가 몸에 배어 성장하면서 점점 자기 자신을 속과 같이 다르게 위장하는 인간이 된다. 주위의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는다.


어쩌면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도 있다. 좌절감을 느낄 때 술에 의지한다. 나중에는 마약에 중독되는 모습은 나약한 의지의 소산이면서 힘들다는 구실로 술을 찾는 내 모습이 투영된다. 1930년대 소설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외로움, 고독감이 느꼈던 기억이 있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어쩔 수 없구나』 전쟁으로 피난민이 시골로 몰려드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가가 그 지역 의사의 초대를 받고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소설가는 자리가 불편하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마침내 자리를 뜨는데 큰 호박 세 개를 묶어 등에 짊어진 채 땀투성이로 걸어가는 여성이 보였고 그는 의사에게 “대부분의 사람은 저렇게 비참하게 살면서도 창의력과 노력 없이 살아갑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여자가 의사의 집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의사의 아내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다 엎질러진 물이다. 소설가는 자신의 무례함과 섣부른 판단에 무안해져 말을 잇지 못한다. 이때, “어쩔 수 없구나”라며 체념한다.


『여학생』, 삶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것. 주인공 여학생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숨바꼭질 중 어둡고 좁은 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발견된 순간 같은 어색함을 느낀다. 침대 밖으로 나온 여학생은 거울 앞에 앉아 흐릿하게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고 흐릿하게 사물을 인지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반면, 안경을 쓰면 세상이 너무 날카롭고 투명하게 다가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조차 실망스럽게 보인다. 소설에서 여학생이 주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이 가득하다. 인간의 삶은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직소』 뒤틀린 사랑이 향하는 곳. 성경에 나오는 유다의 이야기다. 유다는 참을 만큼 참아왔다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더 누를 수 없다. 예수는 유다와 동갑이었다. 그런데도 유다의 위에 군림했고,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처럼 모든 주목을 받았다. 유다가 빵을구해 오고, 숙소를 마련하고, 사람들과 흥정을 해도 예수는 마치 스스로 기적을 베푼 것처럼 행동했다. 유다는 그런 예수를 위해 모든 수고를 감내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말하고 싶다고 한다. 예수는 거짓된 자이며 저를 모욕한 자이다. 살려두어서는 안 될 자이다.


이 작품은 신약성경 속 ‘가룟 유다’의 시선을 빌려 애증이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다자이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유다의 배신을 통해 말하고 있다.


『달려라 메로스』 가장 인간다운 것, 신뢰와 신념. 시골 양치기 메로스는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의 결혼 준비를 위해 도시 시라쿠스에 갔다. 도시를 둘러보는데 분위기가 과거와 많이 달랐다. 밤이라서 어두운 탓만은 아니었다. 그건 악함에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민감한 메로스의 느낌이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두려움에 차 있었으며,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이라도 왕궁에서 멀리 떨어지려 애썼다. 메로스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왕은 왜 이렇게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듭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몸을 피했다. 사형 명령을 받은 메로스가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올 동안 친구 셀리누티우스가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처형 직전 메로스는 도착한다. 이 작품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시 〈인질〉에서 영감을 받아 재구성하였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조용히 나를 믿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믿음을 받고 있다. 내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으로 속죄하겠다는 따위의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앵두』 무더운 여름 저녁, 좁은 방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세 아이는 제각기 떠들고 장난치며 소란스럽지만, 아버지는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불평한다. “밥 먹으면서 땀 흘리는 게 얼마나 천박한 일인지 예 사람들도 비웃었다”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는 아이들의 끊임없는 소란에 결국 체념한 듯 농담을 던진다.


평소 아버지는 집에서 항상 농담을 던지며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식사 중 아이들의 시끄러운 장난에도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넘기고 “아버지는 유쾌한 사람이니까,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지”라고 자기를 다독이며, 웃음을 가장한 일종의 방어막을 세운다. 그러나 속으로는 돈 문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둘째 아들의 건강 상태로 인해 늘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곤 했다.


술집에 아버지 앞에 술잔과 앵두 한 접시가 놓여있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잔을 비운다. 가족 안에서 느끼는 책임감과 압박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이 모두 뒤섞여 술을 마시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쪽에 놓인 앵두를 본 아버지는 집에 남을 아이들을 떠올린다. 앵두를 손에 들고 집에 가져가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술잔에 의지하여 현실을 잊기에는 아이들과 가족의 얼굴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결국 그는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약하다”라는 말을 되뇌며 술잔을 내려놓는다. 오사무는 이 작품을 죽기 한 달 전에 발표했다.


『어머니』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1945년 8월, 전쟁이 끝난 직후 주인공은 혼슈 북단의 쓰가루 지방으로 피난 간다. 약 1년 3개월간 이어진 이 피난 생활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집에 틀어박혀 외부와 단절된 시간을 보내다가, 단 한 번 짧은 외출한다. 그곳은 쓰가루반도의 한 항구 마을, 기차로 3~4시간이 걸렸다. 하룻밤을 여관에서 묵고 돌아오는 소박한 외출이었지만, 그곳에서 주인공은 슬프고도 기묘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짧은 생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작품은 오래도록 여전히 많은 독자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인간 실격』, 『사양』 등의 작품은 지금도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해석되어 사랑받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오사무의 작품,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결국,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회복해 나간다.


책 소개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박예진 엮음. 2026.01.02. 리텍콘텐츠. 231쪽. 19,400원.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199.06.19~1948.06.13.)

본명은 쓰시마 슈지.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군에서 7남 4녀 중 열째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불어불문과에 입학, 공산주의 영향을 받아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 1930년 연인 다나베 시메코와 투신자살 기도했지만 혼자 살아났다. 1935년 소설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1948년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탈고한 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강에 투신 사망.


박예진. 북 큐레이터. 고전문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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