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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n 24. 2022

나형수 지음, '마지막 마음'을 읽고

-어느 죽음의 성찰-

죽음을 앞둔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 를 느끼면서 요사이 별세한 지인(사촌 처남, 과거 동료 직원)을 문상하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알아보고 싶었다.   

   

작가가 주장하는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또 누구에게나 가차 없이 찾아오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죽음에 반드시 한 번 직면해야 한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죽음의 필연성과 소멸성에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의 존재가 지워지고, 그러므로 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남긴 흔적들은 내가 없어져도 이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며 영원성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자손, 나의 글, 나의 그림, 그리고 나의 영상들…

작가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신의 내부만을 성찰한 좋은 글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작가의 생각을 빌어 다른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면 두 가지 형태일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속한 세계는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가? 우주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실재(reality)의 본질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보통 죽음을 잊고 산다. 죽을 고비를 한번 겪고 나면 죽음에 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절박하게 죽음과 대면했다면 죽음 논의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은 시골 생활에서 느낀 자연의 의미 등을 생각하면서 암에 걸려 죽음을 사색하게 된 전말을 기록했다.

본론은 3장부터 시작된다. 죽음의 공포와 죽음의 속성에 관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주로 반영한 것이다.

4장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반전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했다.

5장은 우리의 마음에 관해 생각한 부분을 다루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마음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6장은 죽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혜와 마음공부에 관해 다루었다.

이장에서 특별히 환우들을 위한 제언을 실었는데 환우들을 위로하자는 뜻에서 쓴 것이다.     


우리는 보통 죽음을 잊고 사는 전략을 선택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처럼 끈질긴 불안과 번민으로 죽음을 응시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계속 잊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또 누구에게나 가차 없이 찾아오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죽음에 반드시 한 번 직면해야 한다.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태어나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 자연법칙은 비정하리만치 어김없이 진행된다.

이러한 자연 앞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은 순응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자는 道의 속성을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 Self so)이라고 밝히고 있다.     

“人法地 地法地 天法道 道法自然(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자연이 道 위에 있는 궁극적인 실재로 보인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은 어쩔 수 없는 것 이기에 그저 바라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사람의 입장, 즉 그저 바라보는 것이 무위(無爲)인 것이다.     

노자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나는 또한 죽음에 대해 더욱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죽음은 슬픈 것일 뿐 아니라 내 우주의 마감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죽음은 실로 절박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자연의 질서라면 어찌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절박하지만 나의 죽음 또한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똑같은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저 바라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망연히 ‘무’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의 무한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나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비우지 않고 죽음과 ‘무’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죽는 날까지 비우고 던져야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그의 첫 저서 “On Death and Dying”(Simon & Schuster/Touchstone. 1969. 인간의 죽음. 분도출판사)에서 ‘비탄의 다섯 단계(the Five Stages of Grief)’를 제시했다.      

1)거부(denial) : 내가 그 병에 걸리다니 그럴 리 없어, 의사의 오진일 거야.

2)분노(anger) : 왜 하필 내가 선택되어야 해, 하나님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3)거래(bargaining) : 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살 수 있다면…

4)우울(depression) : 방법이 없구나, 절망이구나.

5)수용(acceptance) : 죽을 수밖에 없구나, 그래 죽자.     


나는 죽음의 공포를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생명체의 본능은 생명의 유지와 자손의 번식을 목적으로 한다.

생명 현상은 본능을 자연적으로 유발한다. 그러므로 본능은 오로지 생명 유지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본능은 무조건 죽는 것을 배척한다.     

둘째, 비본질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과 관련된 자각 가능한 현상들을 무서워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예를 들어 죽을 때의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셋째, 본질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지각 불가능한 죽음의 성격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죽은 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미지성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 조지대학 알폰스 디켄 교수는 죽음에 대한 아홉 가지 두려움을 분석했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 외롭게 혼자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고독), 죽을 때의 추한 모습에 대한 두려움, 가족 사회에 짐이 된다는 두려움(부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무지), 늙어가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늙음), 미완성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후회),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멸절), 죽은 후의 심판과 죄에 대한 두려움(사후 심판)     


나는 죽음의 거울을 통해 삶의 모습을 보고 난 뒤, 그동안의 삶고 완전히 다른 삶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과 명예, 업적 같은 것은 허무하고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걸었던 인생의 길은 철저히 폐기되어야 했다. 새로 선택해야 할 새로운 삶이란 죽음을 수용하고 죽음에 순응한 삶, 즉 ‘순응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응자의 삶이란     

첫째, 욕망을 버리고 초연하게 사는 삶이다.

둘째, 마음을 평안과 신생의 감격, 지안(至安)으로 채우며 사는 삶이다.

셋째, 상승의 정점에서 초월을 꿈꾸며 사는 삶이다.     


브라이언 조셉슨(1940~)은 양자론을 물리학의 마지막 이론이라고 보지 않으며, 양자론에서 파생한 끈이론 과 M이론 이후에도 새로운 이론이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한다.

조셉슨은 양자론 이후의 이론 전개에 준심리학이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준심리학은 프시 현상들, 예를 들어 초감각적 지각, 영력, 근사체험 등 과학적 방법으로 밝히려 하는 학문 분야이다.     


아마도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유(有)의 시공이라고 한다면 모름의 저 건너편은 무(無)의 시공일 것이다.

유의 시공이 유한이라고 한다면 무의 시공은 무한일 것이다. 나는 감히 무의 무한을 보고 싶다.

비록 그 시공이 어둡고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그 상승과 초월을 향한 목마름 같은 어떤 것이다.      

무(無)의 무한에 관한 생각은 나에게 또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한때 죽었다고 생각한 경험을 갖고 있다.      


순응의 지혜 1 - “삶은 곧 죽음이다.”     

내가 자살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살자는 죽음의 비밀스런 함의를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다.

둘째, 자살자는 무량심을 길어 올릴 수 없다.

셋째, 자살자는 ‘모름’에 대한 이해가 약하다.     

순응의 지혜2 - “삶은 잠정적이며, 그러므로 소중하다.”     

순응의 지혜3 - “여기, 지금 이순간의 시간만이 진정한 시간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현재뿐이다. 계략이 숨어 있든 그렇지 않든 결국 돈이 문제 된다.

지나친 위로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도 그 한 가지가 될 수 있다. 순응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붓다는 어린 시절이 자나(禪定)를 회상하면서 이 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해탈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하며 곰곰 생각했다. 붓다는 여기에 길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 실행 방법의 핵심적인 것만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1, 동정심으로 가득한 ‘유익한(쿠살라. 善巧)마음 상태를 키우며, 동시에 ’무익한(아쿠살라, 不善)마음과 행동을 세심하게 피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운데 길’(中道)을 찾아가는 것이다.     

2. ‘깨어있는 마음’(사티, 念)을 훈련한다. 매 순간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관찰하며, 이때 감각과 감정의 오고 감, 의식의 파동에 주목한다. 깨어 있는 마음의 훈련으로 모든 것이 ‘일시적’(아닉카, 無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3. 매일 명상하며 ‘가없는 마음’(암파마나, 無量)을 불러일으킨다. 매일 명상 가운데 의도적으로 자비의 감정, 즉 증오를 모르는 거대하고 가없는 느낌을 세계의 네 모퉁이를 향하게 확장한다.     

4. 여기에 프라나야마(呼吸法)을 병행하면 경험은 더 강렬해진다.     

5. 깨달음(아타부타, 眞如)에 이르는 길을 불교는‘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제, 苦集滅道)“로 정리했으며, 마지막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여덟 가지 길(八正道)”이라고 불렀다. 팔정도는 세 가지 행동 지침으로 정의되는데, ‘도덕(실라, 戒), ’명상‘(사마디, 定), ’지혜‘(판냐, 慧)가 그것이다.     


순응에 의한 마음공부 -마음공부의 시작은 우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1, 마음을 고요에 이르게 한다. 그 방법으로 하나는 수식관(隨息觀)이며, 하나는 만트라(mantra, 呪文)이다. 수식관은 호흡에 의식과 감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만트라는 동서양에서 전해오는 오랜 명상 전통의 하나로서 나는 이를 순응 이론에 알맞게 변형시켰다.

즉 “그래 이제 죽어야 한다.”라는 만트라를 반복하는 것이다.     

2, 포기를 수련한다. 모든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3, 죽음에의 순응을 명상한다.

4, 반전의 느낌을 명상한다.

5,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없이 따라간다.

6, 지안을 추구한다.

7, 무의 무한 위에 마음을 싣는다.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유(有)가 있으면 無가 있을 것이다. 자연의 순환, 그 틈 어느 사이에 우리가 존재한다. 언젠가 죽음의 無化가 찾아올 것이다.


책 소개

마지막 마음, 나형수, 경천 지음. 2012. 9. 1. 14,000원,     

나형수 :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졸업,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졸업, KBS워싱턴 특파원, 보도제작국장, 해설위원장, 문화사업단 사장, 심야토론 사회자, 방송위원회 사무총장 엮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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