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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l 19. 2022

리처드 테일러 저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나이가 들어감에도 아직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재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적합한 것 같고, 블로그 인터넷 서평에 많이 올려져 있는 책 중에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주장은 기독교의 출현이 고대 아테네에서 이뤄낸 철학적 사고를 억눌려 유럽의 중세 암흑기가 왔다고 한다. 일견 동의한다. 평등과 자애만이 선(善)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정신이 진정한 인간의 삶에 왜곡을 가져왔다는 것. ‘좋은 사람’의 의미가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인적 성취, 식견, 창조력이 우월하다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박애정신만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은 ‘자부심’을 강조한다. ‘자부심’이란 “모든 사람에 공통된 것이 아니라 군중 속에서 두드러지는 개인의 강점이나 탁월성을 바탕으로 한 自己愛”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자기 속에 있는 자질을 찾아내어 개발하고 창조에 힘을 쓰라고 주장한다.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고 있는 나도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을 사는 것인가? 봉사활동도 하고 취미생활로 악기도 연주하고, 그림도 그려서 개인전을 하고 코로나 이전이지만 해외여행도 부지런히 했던 것 이것이 “탁월한 삶”인지 의문이다.      


  육체는 점점 노화가 되어가고 신체활동도 완만해지고 있다. 

약도 먹는 것이 많아져 가고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간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부에서는 자부심과 자신의 능력 개발을 주장하고 2부에서는 ‘예의’를 주장한다. 

예의의 핵심은 ‘신중하라.’라고 한다. 삶의 해답을 얻으려 읽었지만 아직도 '무엇이 탁월한 삶'인지 모르겠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부모는 누구나 될 수 있으며, 부모가 된다는 것이 독창적이거나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월등한 존재로 두드러진다. 이런 사람은 남들과 똑같은 말, 똑같은 소리를 듣고 똑같은 광경을 보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한 점까지, 의미의 미묘한 차이나 숨겨진 모순, 어감의 세세한 차이까지 어렵지 않게 꿰뚫어 보기에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지각 능력을 자랑한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좋은 자질은 그사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닌 그가 남을 어떻게 대하는지로 정의 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간단히 말해 그가 우월하다는 말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성취, 식견, 창조력이 우월하다는 말이었다.     


당신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자. 우선 당신에겐 자기 자신이 있고, 자신을 가꾸어갈 얼마나 될지 모를 시간이 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꽤 만족하고 있다고...

당신 자신을 바라보라. 세상 속 자신의 위치나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라. 눈앞에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이 만족스러운가? 자부심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삶의 재창조

  맬컴 엑스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엄청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채 한낱 절도범으로 수년을 보낸 뒤 감옥에서 다시 태어났고,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20세기의 가장 활동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고타마 붓다는 호화롭고 안락한 왕궁을 떠나 탁발승이 된 뒤로 명상과 사색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구했고, 그로써 인간 삶의 적절한 목표를 찾았다.     


  고대 로마의 노예였던 에픽테토스는 세속의 영예가 아닌 개인적 탁월성을 기준으로 볼 때 자신에게 세계의 황제들을 능가할 능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간디의 삶 역시 높은 교육 수준 덕에 누린 비교적 안정된 생활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해 전혀 다른 뜻을 품고 이를 따른 끝에 대영제국에 항거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하루하루는 평소처럼 의미 없이 흘러가고, 시간이 쌓이는 것 외에 당신에게 쌓이는 것은 전혀 없다. 쉬운 길은 이런 하루하루에 그저 만족하면서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일상을 기분 전환 거리와 쾌락으로 채우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해도 당신만은 언제나 원했던 일이 있지 않은가? 이제 그 일에 뛰어들어라.     


  결혼 생활을 애정 없이, 익숙한 습관으로만 이어나가고 있는가? 그럼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라. 용기는 미덕이지만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에 바보처럼 비칠지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에게 중요한 유일한 심판관은 당신 자신뿐이다.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세상이 존경하는 것은 자부심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부심을 가지려면 먼저 자부심을 느낄 만한 무언가를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 세상은 스스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으며, 진정한 개인적 강점에 근거를 두지 않은 거짓된 자부심을 뽐내는 사람에게 역시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모범적인 진정성

  대부분 사람에게는 두 모습이 있다. 한편에는 실제 자신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고픈 또 다른 자신이 있다. 진실한 사람은 이 두 모습이 동일하다.

노예란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 자신만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남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추상적인 소유의 개념이 아닌 바로 이것이 노예제의 핵심이다.     


자부심과 진실성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거짓말을 한마디 내뱉는 즉시 그 거짓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 더욱이 뒤이은 말들도 앞선 거짓과 앞뒤가 맞아야 하는데 그러면 더 큰 거짓이 끝없이 날조되고, 이 모든 거짓을 지속하려면 초인간적인 기억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생명체는 대부분 오로지 자기 종의 존속을 위해 존재한다. 종의 존속이 최우선이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체가 고난과 시련을 겪는 궁극적인 이유다. 어떤 새는 단지 둥지를 틀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거대한 거북은 고정된 장소에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며 연어 역시 알을 낳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한 후 산란 장소 근방에 다다르면 알을 낳겠다는 단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강한 물살과 폭포를 거슬러 오른다. 이것이 살아 있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 풍경이다. 존재하는 것, 적어도 자기 종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사는 것이 생명체의 변함없는 주제다.     


  인간은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 다르다. 인간은 종을 존속시키는 것이, 똑같은 세대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중 누군가는 삶을 통해, 삶의 목표와 업적을 통해 차이를 만들어 낸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창조적이며, 적어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상상과 노력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긴 인생의 끝자락에서 길게 이어진 공허한 순간들을, 고통과 불행은 피하고 쾌락만을 추구한 지난날을, 진정한 목표 없이 보낸 숱한 날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간 살아온 인생이라면 당신은 내게도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날려버렸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부심의 반대가 수치심이라면, 그렇게 허비한 삶을 돌아본 뒤 느끼게 될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다.     


귀중한 시간

  하루하루가 생의 첫날인 것처럼, 즉 스스로 갈망하는 새로운 자신으로서 보내는 첫날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남은 인생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 당신 자신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 볼 시간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갈망하던 그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신 자신뿐이다. 그것은 당신 외에 누구도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당신의 성격이 될 수도 있다.     


자부심과 예의 규범

  자부심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의 문제인 반면, 예의는 남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의 문제다. 이 둘은 매우 다르지만 모두 사람과의 관계, 즉 전자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후자는 남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세련된 예의의 기반이 되는 단 하나의 규범이란, ‘신중하라.’는 것이다. 신중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규범이고 뭐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의 욕구가 모든 생각과 동기를 잠식한 나머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사실상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겠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 누구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이는 호의와 동지애는 가식이다. 대화는 입에서 나와 귀로 들어가지만 무엇 하나 마음에 스며들지 않고 오로지 그다음에 나올 말을 자극할 뿐이다. 사람들은 최대한 에둘러서 자기 얘기만을,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만 건넬 뿐이다. 상대를 향한 그들의 관심은 간접적이다. 그들은 상대의 욕구나 욕망, 생각, 열망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단지 그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또는 그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지에만 신경을 쏟는다. 이는 아주 솜씨 좋게 예의를 가장한 행동이다.     


죽음과 죽어감

  죽음의 공포 중 큰 부분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것들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니 남겨진 것들이 정리되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주는 것도 당사자에게는 아주 소중하다.

상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의 깊이 모를 고통을,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당신도 이해한다고 알려라.   

   

사과의 힘

  상대에게 저지른 자신의 행동에 시급히 사과하거나 후회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은 “정말 미안해.”인데, 그것도 ‘미안해’가 아닌 ‘정말’을 강조한 것이다. 그 효과는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책 소개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리처드 테일러 저, 홍선영 옮김, 2014. 12. 17. 미르인쇄, 14,000원.      

리처드 테일러(Richard Taylor, 1919~2003.)

  미국의 철학자. 브라운 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로체스터 대학교 교수 엮임. 덕 윤리 옹호자. 진정한 자신의 발견을 가로막는 종교와 관습을 비판했다. 저서“결혼하면 사랑일까”,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형이상학”, “행위와 목적”, “선과 악” 등 한때 양봉가로 생활.     


홍선영 -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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