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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l 20. 2022

무진기행

김승옥의 단편소설 모음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무진기행”등 총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가 살아온 연대가 나와 비슷해서인가, 책을 읽는 동안 6, 70년대로 회귀한 느낌이었다. 버스, 차장, 다방, 데모, 선술집, 하숙, 무전여행, 진로소주, 감색 양복, 교통순경 등 모두 60, 70년대에 존재했던 단어이고 나에게 친숙한 말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산업화 시대에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과 우연한 연애가 “무진기행”의 내용이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고향과 서울에서 온 사람을 대하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오래된 영화처럼 펼쳐진다.     


  “서울, 1964년 겨울”은 월부 책값과 통행금지, 포장마차, 여관, 학생증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통행금지와 순경 선술집-오뎅, 군참새와 진로, 삼학소주, 전차, 택시 합승 등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인데 아득히 먼 옛날 있었던 말들 같다. 통행금지로 집에 못 가게 된 세 남자의 이야기는 나를 70년대로 회귀하게 한다. 지금도 기억은 선명한데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친구들과 어울려 탁구장과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던 기억이 새롭다.     


  “그와 나”에서는 ‘입영장정’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입영 환송식을 동회 앞마당에서 성대하게 거행하는 풍속, 만세삼창을 하는 행사 의례가 먼 기억에서 소환된다. 대학입시와 데모, 시골에서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는 하숙생의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내가 입영 영장을 받고 집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입영 환송식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버스를 타고 제주항에 정박한 LST 함정에 올라 동기들과 항해 끝에 도착한 진해 해군 훈련소가 어제 일 같다. 군에 간다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군에 갔다가 제대하고 돌아와서 취직을 하고 살다 보니 초로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억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젊은 날의 추억을 소환할 일이 없는데 오랜만에 나의 젊음을 회상하게 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나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해본다. 한편으로 드는 서늘한 느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더 아련하다. 잠깐이나마 책을 읽는 동안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책 중에서

  그 무렵까지도 나의 고향에서는 소집 영장을 받고 입대하는 장정들에게 동네마다 제법 성대한 환송식을 차려주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의 풍속인지, 또는 입대라는 것이 곧 전사나 부상을 의미하던 6.25 때 생긴 풍속인지 알 수 없으나, 태극기를 그린 수건을 두른 입영 장정들은 출발 며칠 전부터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별의별 난장판을 다 벌이곤 했다. 그 정도가 지나쳐도 경찰은 못 본 체해줬고 주민들도 입영 장정들의 특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책 소개     

무진기행, 김승옥 저, 2021.03.01. ㈜미르북컴퍼니. 13,800원.

 

김승옥 –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성장, 순천고 졸,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 1962년 [생명 연습]으로 등단.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엮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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