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박기진. 작성한 입사지원서만 한 트럭은 될 터였다. 면접은커녕 서류 통과도 쉽지 않았다. 대기업, 중소기업, 목표를 바꿔봤지만 어느 하나 되는 게 없이 시간만 무심코 흘러갔다.
그러던 그에게 취직의 기회가 왔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약속 전당포]
전당포라 그런가? 이름이 참 클래식하다고 생각하는 박기진이었다.
'약속 전당포라... 하긴 물건을 맡겼으면 약속한 데로 다시 찾아가야지. '
그는 상호명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전당포로 향했다.
전당포는 골목 안의 낡은 건물 3층,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된 목재로 만들어진 문짝에는 시간이 새겨낸 깊은 주름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문짝에는 눈에 띄는 큰 자물쇠나 보안 장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약간은 기괴한 느낌의 조각들이 문 전체에 퍼져 있었다.
문 손잡이는 놋쇠로 만들어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생긴 녹이 손잡이의 본래 모습을 거의 가려버린 듯했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잠깐 주위를 둘러보니, 이 문이 있는 건물 자체가 이미 많이 낡아 벽돌 사이로 풀이 자라나고, 창문은 먼지로 덮여 있어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문은 조용히, 그리고 너무나도 부드럽게 열렸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무뚝뚝한 여자 사무원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누가 들어오는 것에 관심 없는 듯, 컴퓨터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예상외로 넓고 어둡게 느껴졌다. 벽면은 낡은 서류 캐비닛과 책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사이로 먼지가 쌓인 오래된 책들과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다.
바닥은 낡은 목재로 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발걸음을 따라다녔다. 사무실 한가운데에는 큰 책상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서류 더미와 오래된 전화기, 그리고 희미하게 빛나는 탁상 램프가 놓여 있었다. 책상 뒤편으로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지만, 창문 너머로는 불투명한 유리 때문에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무원은 여전히 나를 무시한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사무실의 고요한 분위기는 무언가 말을 걸기 전까지 계속될 것만 같았다.
말을 걸려던 순간, 뒤편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을 입은 노인이 조심스레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옷차림은 시간과 환경의 힘든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삶의 역경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둘러보다가, 사무실 한쪽에 앉아 있는 사무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자신의 낡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여노인은 허름한 천으로 싸인 뭉치를 꺼내어 사무원 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돈과 낡은 종이 한 장이었다. 사무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노인의 눈빛은 기대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제가 맡긴 약속을 돌려받으러 왔는데요...
' 약속?? 약속을 돌려받는 다니 무슨 말이지?'
박기진은 속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사무원은 잠시 후, 컴퓨터와 종이에 적힌 무언가를 확인한 뒤, 노인에게 무언가를 적어서 내밀었다.
필요금액 : 5억 원
금액을 듣자, 노인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놀람과 절망이 교차했다. 그녀는 소극적으로 사무원에게 다가가며, 목소리에 간절함을 담아 부탁했다.
- 이 금액은 너무 터무니없는데... 제발, 제 약속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
노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무원은 냉정하게 노인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었지만 표정에서 그 단호함을 읽을 수 있었다.
노인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 차올랐고, 다시 한번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정했지만, 사무원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사무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박기진의 마음까지 무겁게 만들었다. 노인의 간절한 부탁과 사무원의 무뚝뚝한 거절 사이에서, 사무실 안에는 애절한 정적만이 흘렀다.
이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중년남성이 들어섰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중년 남성으로, 그의 분위기에서는 사무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의 등장은 그 자체로 사무실 안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는 박기진과 사무원, 그리고 노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듯했다.
사무원은 간단한 몸짓과 짧은 메모로 상황을 전달했고, 사장은 그 내용을 이해한 뒤 노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장의 태도는 진지했으며, 무엇보다 눈빛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있었다.
- 정미숙 고객님, 준비하신 금액으로는 약속을 돌려받으실 수 없습니다.
사무원과 같은 대답을 한 그에게 박기진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그는 노인과 눈을 마주친 채로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 계약한 약속은 돌려드릴 수 없지만 아얘 처음부터 계약을 안 한 것처럼 파기할 수는 있습니다. 계약을 파기하시겠습니까?
노인은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그렇게 하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