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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남주 Oct 27. 2024

0화. 프롤로그

-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하셨는거죠?

- 네...역시 이걸로는... 안 되겠죠?

 예상한 답변인 듯 의자에서 등을 떼며 일어서려는 남자였다.

- 아니요... 계약 가능합니다. 다만 추가로 검토할 건이 있으니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오세요.


 요리사가 되겠다 남자는 살짝 어리둥절하면서도 들뜬 마음으로 전당포를 나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어.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봐. 내일 알려줄게.

그는 다음날 같은 시간에 다시 전당포를 찾았다.


- 채석현 씨, 약속을 맡기겠다는 것은 결정하신 거죠?

- 네...

- 그럼 여기 서류 보시고 서명하세요.


[계약서]

. 본인은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된다"는 약속을 맡기고 금액 3천만원을 대출 받는다.

.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된다"는 기준은 ㅇㅇ 요리대회 우승을 의미한다.

. 약속에 관련한 담보가 부족하므로 '미각'을 담보로 추가한다.


- 미...각?

채석현은 나머지 조항을 다 읽기 전에 미각이라는 단어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더듬더듬 두려움에 말을 이었다.

- 혀를..... 


전당포의 남자는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미각을 담보로 맡기는 거고, 돈을 갚으시면 미각은 다시 돌려드릴 겁니다.

- 미각을 어떻게...


답을 들은 채석현이었지만 아직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그건 저희 영업비밀이니 계약서에 서명을 할지 말지만 결정하시죠.


꺼림칙한 느낌은 남아있었지만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는 펜을 들어 본인 이름 3글자를 또박또박 적었다.


- 이로써 계약은 완료되었습니다. 돈은 여기 있고요.


전당포 남자는 5만원짜리 현금다발을 주며, 동그란 간이 의자를 가져와 채석현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 자. 담보 받아갑니다.


남자는 능숙한 솜씨로 채석현의 목 뒤쪽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 억...


너무 재빠른 동작에 거부할 새도 없이 채석현은 주사를 맞.


- 자.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나가셔도 됩니다.


채석현은 주사를 맞은 목을 어루만지며, 재빨리 돈을 챙겨 전당포를 빠져나왔다.


- '미각을 담보로 한다니...'


미각에 대한 생각도 잠시, 손에 든 돈봉투를 보며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짓는 채석현이었다.


- 어, 나 돈 구했어. 오늘 맛있는 거 먹자.


채석현은 어제 전화를 나눴던 그녀를 만나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 앞에는 그녀가 채석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석현을 만난 그녀는 차가운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 오빠, 그냥 돈만 주면 되는데 무슨 저녁이야.


- 어... 그래도 오랜만에 같이 밥 먹으면 어떨까 해서.

여기 비싸긴 한데, 오늘 만큼은 우리 맛있는 거 먹자.


- 오빠, 밥은 다음에 먹고 우선 돈부터 줘봐

- 어... 어


채석현은 백팩 안쪽에 넣어둔 돈뭉치를 꺼내 그녀에게 건다.


- 3천이라고 했지?

- 어... 3천... 이것도 겨우... 그리고 오늘 저녁 같이 먹으려고 5만원 한 장은 뺐어.

- 알았어. 그걸로 오빠 저녁 먹어. 나는 갈게

- 아... 아니. 랜만에 같이...

- 아니야. 나 바빠. 간다.


돈을 받은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채석현으로부터 멀어졌다.

5만원 한 장을 손에 쥔 채 채석현은 레스토랑에서 발을 돌려 근처 편의점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컵라면과 소시지 하나를 계산해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컵라면이 익는 동안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는 그였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어 뭉치째 입으로 가져갔다.


- 어? 스프를 안 넣었나

평소 그렇게 많이 먹었던 컵라면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였다.

미각...

진짜였나... 그 주사가...


여자는 채석현의 연락을 계속해서 피했다.

여자와 돈은 함께 멀어져 갔다.


초점을 잃은 거리를 걷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채석현.

횡단보도 앞에 멍하니 서있던 그는 무슨 결심을 한 듯

차도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채석현의 허리를 낚아채서 인도로 잡아당기는 누군가가 있었다.


- 채석현 씨. 본인 몸을 함부로 다루시면 안 됩니다.  

- 누...누구시죠?

- 저는 약속전당포 이도영라고 합니다.

    돈을 안 갚으셨는데 이러시면 계약위반입니다.


- 저... 정말 죄송합니다.

채석현은 엉엉 울며 그에게 매달렸다.

- 저는 그 약속을 찾을 돈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돈을 못 갚아서 정말 죄송하지만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 그건 전 모르겠습니다. 저는 고객이 직접 채무를 변제하고 약속을 받아갈 때까지

고객의 안전을 지키는 일만 합니다.


 고개를 들어 자세히 올려다본 도영의 모습은 누구보다 자신감에 차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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